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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승리하는 믿음 (히 11: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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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필라델피아 근교 시골마을에 살던 폴 빌리아드라는 소년이 엄마가 가끔씩 전화기를 집어들고 교환원(operator)을 부르고 무엇을 가르쳐 달라고 하면 무엇이든 척척 가르쳐 주는 것이 너무 너무 신기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하루는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망치를 가지고 놀다가 손가락을 때려 피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어쩔 줄을 모르던 소년이 갑자기 전화 교환수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엄마처럼 전화를 집어들고 안내원! 하고 불렀습니다. "네, 안내원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폴은 "저 손가락을 다쳤어요"하고 말했습니다. "엄마가 집에 안 계시니" "네"하고 대답하자 "많이 다쳤니"하고 물어서 "조금요" 하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럼 혹시 너의 집에 얼음통이 있니" 그렇다고 대답하자 교환수는 얼음 한 조각을 손가락에 대고 있으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조금만 참으면 괜찮을 거야"고 말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시작해서 폴은 모르는 것이 있기만 하면 교환수에게 물었고 그때마다 교환수는 너무나 친절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숙제하다가 모르는 것까지 물었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하루에 두 번도 전화를 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집에서 기르는 카나리아가 죽어서 교환수에게 슬픈 소식을 전하자 그녀는 조용히 "폴, 하나님은 카나리아가 노래 부를 다른 세상을 준비하셨다고 나는 믿는단다. 난 네가 이 세상뿐 아니라 다음 세상을 믿게 되었으면 좋겠어. 거기서 네가 좋아한 카나리아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니까"라고 대답을 주었답니다.

이 소년이 더 성장한 후 어느 날 자기가 전화 교환수에게 일일이 이런 문제까지 그녀에게 대화의 소재로 삼은 것이 얼마나 업무상 지장을 주었을 것인가를 깨닫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한동안 전화를 끊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그가 대학을 진학하여 고향 마을을 떠날 무렵 그녀에게 사과할 마음으로 다시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아직도 변함없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폴은 "아직도 옛날의 당신이시군요. 제가 어렸을 때 당신은 저에게 정말 중요한 존재였어요. 아무도 없는 집에서 자주 혼자 있던 저는 세상이 무서웠는데 내 이야기를 들어줄 당신이 제 곁에 있는 것이 정말 기쁨이었지요. 하지만 커서 생각하니 철없이 당신을 괴롭혀 드린 것을 사과 드립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이 교환수가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폴, 내 이름은 샐리(Sally)란다. 내가 네게 중요했다고 했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넌 나에게 정말 중요한 존재였단다. 너와 대화하던 것이 그 시절 내게는 얼마나 기쁨이었는지 넌 모를꺼야. 내게는 아이가 없었거든. 언젠가부터 난 너를 내 동생처럼 아들처럼 사랑하기 시작했단다. 그런데 네게서 오랫동안 전화가 없어서 얼마나 걱정한지 아니 넌 나의 기쁨이었어. 넌 나의 기쁨이었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때로 기도할 때 시시콜콜 사사건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이 바쁘신 하나님께 폐가 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으셨습니까 그때 이렇게 하나님께서 대답하시는 모습이 혹시 상상이 되시는지요 "아들아, 딸아,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이야. 내가 너와 대화할 수 있는 것은 나의 기쁨이란다. 너는 나에게 무엇보다 누구보다 중요한 존재이거든. 네가 나를 믿고 믿음으로 내게 나아오는 것처럼 나에게 큰 기쁨은 없단다." 히브리서 11장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에게 나아와 그분의 도움을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입니다. 이들의 공통된 한 증언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11:6의 말씀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오늘의 본문에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이런 무수한 선배들의 인생 승리를 집합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승리의 패턴은 다시 두 가지 유형으로 관찰될 수 있습니다.
승리하는 믿음의 두 가지 유형-무엇일까요 그 하나가 능동적 믿음이라면, 또 하나는 수동적 믿음입니다.

1. 정복하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다른 말로 하면 능동적인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여러 경우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역사들을 이루어 놓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정복자의 믿음입니다. 32절부터 보십시오. 이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체험한 기적의 믿음들을 증언하고 싶어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저도 이 분들의 믿음에 대해 다 말하려면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저도 그냥 넘어 가겠습니다. 이제 33절입니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를 이기기도 하며--구체적으로 어떤 사건들입니까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전쟁들이 바로 믿음의 전쟁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는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다 너희에게 주었노라"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나아가 믿음으로 승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의를 행하기도 하며--엘리야 시대의 엘리야의 말씀 선포를 생각해 보십시오. 부패하고 악한 왕 앞에 나아가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감히 외칠 수 있었던 것-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약속을 받기도 하며--여호수아가 마침내 믿음으로 약속을 받지 않았습니까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다니엘이 생각나시지요. 그렇습니다. 그가 사자의 굴에 던지웠으나 목숨이 보존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다니엘 6:23을 보십시오.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믿음이 그를 살린 것입니다.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다니엘의 세 친구가 생각나시지요. 불 속에 그들을 던지겠다는 왕의 위협 앞에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당당히 대답합니다. 다니엘 3:17입니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믿음의 고백이 아닙니까 믿음이 불의 세력을 꺾은 것입니다. 불을 이긴 것은 물이 아니라 믿음이었습니다.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사울의 칼을 피해 목숨을 보존한 다윗이 생각나시지요. 하나님이 나의 방패요, 피난처라고 고백한 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며--전쟁에 용맹 되어--이방인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아브라함이, 모세가, 여호수아가, 다윗이 모두 하나님을 의뢰하고 전장에 나아가 승리했습니다.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려 냈습니다. 모두가 믿음이 가져온 기적들이었습니다. 지금도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을 통해 세상 도처에서 주께서는 기적을 행하시고 계십니다.

믿음의 사람 조지 뮬러는 기적의 사람으로 불리워 지기도 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불가능은 우리의 믿음의 부족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청년 시절부터 구원을 위해 기도한 다섯 친구가 있었습니다. 한 친구는 그가 기도를 시작한지 수개월만에 믿었습니다. 둘째와 셋째 친구는 10년내에 믿었습니다. 넷째 친구는 25년만에 믿었습니다. 그러나 다섯째 친구는 그의 52년간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은 이것을 가리켜 뮬러를 겸손케 하기 위해 주께서 주신 불가능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뮬러는 그를 위한 하나님의 때가 아직 되지 않았다고, 기도의 분량이 차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의 의식이 있을 때까지 그를 위해 기도했고 그의 구원을 믿었습니다. 그가 죽은 후 장례식장에서 친구는 회심하고 주께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은 뮬러의 믿음을 져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뮬러의 믿음은 마침내 친구의 영혼을 정복하고 말았습니다. 한번은 뮬러가 알코올 중독자를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친구는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뮬러는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당신들은 주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을 믿느냐고-그렇다고 대답하자-그러면 당신들은 포도주를 물로 만드실 수 있는 것을 믿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자, 그러면 그 하나님이 포도주 독 속에 빠진 인간을 침례의 물 속으로 옮겨 주실 것을 왜 믿지 못하느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정복하는 믿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인내하는 믿음입니다.

이것은 수동적인 믿음입니다. 이것은 순교자들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정복자의 믿음 못지 않게 순교자의 믿음도 존귀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께 기도했음에도 환경이 변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냥 참고 버텨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 가운데서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고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도 믿음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버틸 수 있는 능력, 참을 수 있는 능력, 믿음을 부인하지 않고 죽을 수 있는 능력-이 모두가 바로 믿음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35절 이하의 사건들이 바로 이런 믿음의 수동태적 능력을 증언합니다. "--어떤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이들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차히 살기 위해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더 좋은 부활을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믿음이 있습니다. 부활을 믿고 죽은 것입니다.
36절에 보면 희롱 당하고 채찍질 당하고 결박당하고 옥에 갇힘을 당했습니다. 선지자 미가야가, 예레미야가 바울이 채찍을 맞고 옥에 갇히었습니다. 37절에 보면 돌로 침을 당했습니다. 나봇이, 예레미야가 돌로 침을 당했습니다. 톱으로 켬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가 그렇게 죽었습니다. 칼에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침례 요한이 헤롯의 칼에 목 베임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더러는 박해를 피하여 양과 염소의 가죽을 쓰고 피해 다니며 광야를 떠돌아 다녀야 했습니다. 그들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을 지키며 버티고 인내했습니다.

우리는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만을 믿음의 사람으로 숭배하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를 조롱하던 자들은 "네가 메시야 이거든 십자가에서 뛰어 내려 오라"고 소리쳤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셨다면 그는 십자가를 부수고 내려와 그를 핍박하는 자들을 심판하실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무력한 자처럼 십자가에서 고통하며 죽어 가셨습니다. 사람들이 기대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나타내시고자 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죽어 가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실패자이십니까 누가 그를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죽음으로 승리하셨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기 보다 상황을 수용하며 사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위에 계신 그분이 판단하실 때 그는 기적대신에 인내하는 믿음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정복하는 믿음이 승리인 것처럼, 인내하는 믿음도 동일하게 승리하는 믿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수많은 선배들이 이 믿음으로 인내할 수 있었다면 여러분과 저도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과 저를 둘러싼 오늘의 삶의 장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내 형편이 기도해도 쉽게 달라지지 않아도 믿음으로 인내하는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38절에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그 의미를 이들에게는 세상이 적합한 곳이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어떤 주석가들은 이런 사람에 비하면 세상이 무가치하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간 이들의 존재가 너무 가치 있는 사람들이어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이들의 가치를 알아 줄 수 없습니다. 결국 이들은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 오는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들이 이 세상의 핍박과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저 세상 신앙 곧, 천국 신앙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의 메시지를 철없이 교환수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것을 묻기를 좋아했던 폴 빌리아드라는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자기 집 카나리아가 죽었을 때 자신의 슬픔조차 교환수 샐리에게 말했습니다. 그때 샐리는 "폴, 하나님은 카나리아가 노래할 또 다른 세상을 준비하신 것을 잊지 말라"고 말했었습니다. 폴이 대학에 진학한 후 한 학기가 끝나 샐리 생각이 나서 고향 마을로 전화했을 때 다른 교환수가 전화를 받아서 폴은 샐리를 바꾸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는 폴은 "샐리의 친구이신가요"라고 물어서 "예, 어려서 부터 오랜 친구이지요"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뜻밖에 그녀는 병으로 앓다가 5주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면서 혹시 전화하신 분이 폴 빌리아드가 아니냐고 묻더랍니다. "맞다"고 했더니 "샐리(Sally)가 당신에게 메시지를 남겼어요. 짤막한 메모예요."하더랍니다. 그는 얼른 알고 싶어서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적혀 있군요. 제가 읽어 드리지요.-(폴 빌리아드가 전화하면 이렇게 전해주세요. 나는 아직도 노래 부를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믿는다구요. 그렇게 말하면 폴은 무슨 뜻인지 알거에요.)이게 전부군요." 이때 폴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감사합니다. 저는 샐리가 한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어요. 샐리는 이 세상만 바라보고 살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여인이었지요. 샐리는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에 더 어울리는 여인이었으니까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그들은 오늘도 이 고통 많은 세상 도처에서 저 세상을 바라보며 인내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남은 인생이 이웃에게 축복이고 창조주에게 기쁨이기 위하여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오늘의 세상에서도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영웅들이요 믿음의 승리자들인 것입니다. 그들이 보여준 승리하는 믿음-이 믿음이 또한 여러분과 저의 믿음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설교 적용 질문>

1.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경험한 '정복하는 믿음'의 역사적 실례들에 대하여 말해 보시고 최근에 자신이 겪은 유사한 신앙경험들을 나누어 보십시오.

2. 본문에 나타난 '인내하는 믿음'의 실례들을 나누어 보시고 최근에 자신이 겪은 유사한 신앙경험들을 나누어 보십시오.

3. 본문 38절에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에 대하여 나누어 보십시오.

4. 히브리서 11장을 공부하며 특별히 자신에게 교훈을 준 믿음의 선배가 누구였는지에 대하여 나누어 보십시오, 그가 왜 나에게 교훈이 되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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