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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부흥회와 자식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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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봉천에 있는 만조신학교에 부흥회가 열렸는데, 강사는 평양 장대현 교회 김화식 목사였다.

둘째 날 아침시간을 마친 후에 전보가 날아왔는데 셋째 아들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김 목사의 눈에서는 눈물이 고였다. 김화식 목사는 곁에 있던 안광국 목사에게 부탁했다.

'안 목사! 차표를 사 오시오. 돌아가야 되겠소.'
'목사님, 평양에서 국경을 넘어 봉천까지 왔는데 장로들이 장례식을 했을 줄 믿고 부흥회를 마치고 가십시오. 그리하면 신앙의 모범이 될 것입니다.'
'그럴까요?'

그런데 김 목사는 숙소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말했다.

'안 목사! 차표 사 오시오'
'마치고 가시지요'

이렇게 하기를 서너 차례하였다. 이 때 전재선 목사가 찾아왔다. 전 목사는 말을 다 듣더니 이렇게 충고했다.

'김 목사, 섭섭하시겠지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목사가 부흥회 하다가 가정 일로 돌아가면 됩니까? 나는 중지에 갔을 때 전쟁에서 죽은 내 아들의 뼈를 담은 상자를 내 여관방에 놓고 집회를 맡았습니다. 그리하였더니 많은 은혜가 있었습니다. 김 목사도 집회를 계속하면 강단에 서기만 해도 은혜가 될 것입니다.'

김 목사는 전 목사의 말을 듣고 신학교 부흥회와 봉천 제 2교회 부흥회까지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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