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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하는 새해 (요 9;4, 신 0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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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다짐으로 정초에 재출발을 한다.

그러나 몇 날이 못되어 우리의 결심은 물거품처럼 살아지고 여전히 전과 다름 없는 생활을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다.

信仰生活에 열심히 하여야 하겠다고 다짐을 한다.-그래서 그간 한번도 새벽기도회에 출석 못한 게으른 신앙생활을 청산하고 출석 하기로 했다.-성경도 열심히 읽고-敎會奉仕도 잘해보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러나 信仰에 競走에는 運動競技에 못지 않게 피곤하고 규칙적인 노력이 필요 하기 때문에 우리는 중간에 抛棄하기가 쉬운 것이다.

값비싼 對價를 치르고 얻어지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고 일축하고, 모든 祝福은 저절로 얻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사

努力없이 잘되는 것을 바라고-모든 것이 努力이 없이 이루워 지기를 바라고 있 는데 이런 것은 성경을 잘 모르셔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에도 중한 勞動對價가 必要를 한 것이다.-.

"애쓰고 힘써야 한다"그리고 밤낮으로 懇求하여야한다.-쉬지 말고 祈禱해야 한다.

-선을 행하다가 落心하지 말아야한다.-담잠을 깨어야 한다.-앞만 보고 달려가야 한다.

이 모든 말씀은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말씀이다.

 금년 우리는 <일하는 해가> 되어야 한다..쉬지 말고 계속 달려가는 성도가 되셔야 한다.

 얼굴에 땀을 흘러야 먹을 것이 생기겠다고 하셨다.

 (창3: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에덴 동산에서 땀을 흘리지 않고 살아가게 하였 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죄의 對價로 얼굴에 땀이 흘러야 植物을 먹게 하신 것이다.-땀을 흘리지 않는 사람을 不汗黨이라고 한다.

 첫째로-安息日을 지키기 위해 엿새 동안 最善을 다하라

人生과 땀은 떨어질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땀을 흘려야 먹을 수 있는 것이 하늘의 理致로 되고 말았다.

더욱이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명에도 이 말씀은 强調되고 있다.

물론, 이 셋째 계명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조항이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이레 되는 날에 쉬셨으니, 너희도 安息日을 記憶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삶이란 반드시 상대적이며 조건부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먹기는 하지만 땀을 흘려 먹어야하고-安息日을 지켜야 하지만 반드시 엿새 동안에 네 모든 일들을 힘써 다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생살이에 있어서 반드시 정확하게 지켜야 할 법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敎會에서는 교인들을 가르칠 때 安息日을 지키라는 것만 强要 했지 엿새동안에 네 모든 일들을 힘써 다 하라는 義務를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말 하면 福받는 目的만을 敎育하고 强要했지 그 복을 받을 수 있는 秘訣과 方法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안식일도 내 것이요, 엿새도 다 내 것이라는 사고가 젖어 낮과 밤은 구분은 분명한데 우리가 사는 方法이 區分이 없다.-뒤범벅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되고 보니 힘써 일하기는 그만두고 마땅히 자기가 해야 될 일마저 하지 않고 태만에 빠져 버리게 된 것이다.

 계약 적인 계명에 있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이나 엿새 동안 자기 일을 힘써 일하지 않는 것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꼭 같은 일인 것이다.

그러나 安息日을 지키라고, 主日을 지키라고는 귀가 닳도록 강조했지만 일하라는 말은 전연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기 때문에 교인들 중에 자기 집안일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도 부흥을 찾아 가고 집회마다 은혜 받으러 간다고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생기는 것이 무엇인가.가난히 찾아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일성수를 위해서 엿새 동안은 불신자들보다도 더 열심히 일해서 집안 일을 다 정리해놓고 가벼운 맘으로 주님께 나아와 예배를 드려야 한다.

집안 일도 다 못해놓고 예배당에 와서 안즌다면 그 마음이 어찌 평안하고 그가 드리는 예배가 어찌 경건된 예배가 되겠는가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들은 불신자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며 언제나 하나님 만날 날을 예비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요4:23)-"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고하였다.

神靈과 眞情의 禮拜는 자기 마음과 환경을 깨끗이 정돈한 사람이라야 드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둘째로 주님이 주신 健康으로 <하나님>께 奉仕해야 한다.

 우리 나라 국민들이 근자에 와서 누구나 자기 건강을 지키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생활 수준도 많이 향상되었고 삶의 여유도 생기고 보지, 이제는 자기 몸도 귀한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가난하고 못살 때에 우선 먹고 살기가 바쁘니까 자기 몸의 건강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의.식.주의 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몸의 건강도 장수의 소망도 걱정할 수 있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자기 몸의 귀중성을 지나치게 생각하여 분에 지나치도록 신경을 쓰는 일들이 많이 있다. 음식을 먹어도 건강 식품을 골라 먹으려 하고 운동을 해도 지나치게 사치성 운동을 선호하고 있다.

 그래서 몸에 좋은 음식이라면 굼벴이도 좋고 지렁이 탕도 좋아한다.

뱀도 개구리도 무엇이 되었든 몸에만 좋다면 상관없다.

그래서 외국까지 나가서 코브라의 쓸개도,곰 발바닥도 가격이야 어떻든 마구 먹었다.

 옛날 중국의 만한 요리나 팔진 요리도 가격이 고하간에 찾아 다닌다.

그러나 약대 발목을 먹든지 제비 혀를 먹든지 원숭이 골을 먹든지 코끼리 코를 먹든지 그런 것을 먹었던 사람들이 영생 불사했다는 말이 있는가 말이다.

공연이 돈 자랑이요 오명만 남길 뿐인 것이다.

그렇게 되는대로 좋은 것이라곤 다 먹고 몸에 살찌고 기름이 찌면 그때는 체 중 줄이기 운동을 한답시고 등산, 수영, 에어로빅, 사우나 등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벗고 흔들어 댄다.

 옛날 동의보감을 저술한 명의 허준 선생의 이야기도 보면 그가 왕의 어의로 있을 때 정승들의 자식들이 모여들었다.

건강을 위해서다.

 그러나 허준선생은 그 귀공자 아이들을 아침마다 장작 쪼개기를 시켰다.

그때 부모들이 와서 내자식 건강하게 해달라했더니 장작을 쪼개게 일시키느냐고 항의를 했다.

이때 허준 선생이 하는 말 `이 아이는 영양 과다가 되어 기름이 많고 살이 너무 많은데 여기다 다시 보약을 먹이면 죽는 길밖에 없소이다.

그러니 우선 급한 것은 기름을 빼는 일이라고 하였다..

 세째는 나라 일에 외면해서는 안된다.

 제일 처음으로 우리 쉽게 할 수 있는 환경보호문제이다..

쓰레기 정량 제에 교인가정에서 적극 앞장을 서야 한다.

새해가 밝은 후 2번째 주일을 맞는다.

영원히 흐르는 시간에 무슨 매듭이 지어지는 것도 아니며 어제와 오늘 내일의 연속뿐인 세월 속에 별다른 意味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나라에서 새로운 일을 추진하는 것은 전부 부당한 것은 아니다.

새로 推進하는 일에는 敎人들이 率先垂範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新舊의 구획선을 그어놓고 新年이라 舊年이라 이름함에도 나름대로 어떤 뜻과 목적이 있는 것이다.

 時間의 制約을 받고 사는 무상한 인생으로서는 영원이란 시간을 생각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피로하고 지쳐서 습관에 얽매이는 권태로움을 느끼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 시작과 끝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살아온 길을 反省하고 悔改하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출발 해 보며 希望을 걸고 <하나님>의 引導하심을 구하면서 그 생각을 묶어보고 그 삶을 정리해 보자는 데 새해의 意味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는 국내적으로 세계사적인 대변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나갔다.

정치적인 어려움-稅務公務員들의 墮落과 經濟의 勤勞精神이 沈滯되면서 사회의 紀綱이 무너졌고 도덕과 윤리가 무너져 상급계층의 부패가 만 연되여 먹고 마시고 놀자는 풍조가 늘어만 가고 잇는 것이다.

 분명히 21세기는 우리 나라의 통일의 시대이기도 하다.

공산주의의 붕괴 와 통일문제는 서서히 가시 권에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통일과정은 결 국 통일비용이라는 돈의 문제에 귀착된다는 것을 독일과 같이-우리 나라의 형편은 빚덤이 올라앉아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분열과 혼 란, 폭력과 분쟁으로 일삼는 우리의 내채의 형편으로는 북쪽 못지않게 통일에 대하여 많은 불안요인을 안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이 때에 우리 나라는 우선 내치를 잘해서 사회질서와 기강을 바로 잡아 야 하며 각종 갈등구조의 해소와 쓸모없이 헛되이 낭비하는 사치와 과소 비풍조, 분수를 깨닫지 못하는 개인과 집단과 지역적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부도덕하고 방종한 국민정신을 혁신하지 못하면 이 민족이 어디로 흘러 떠내려갈지 예측할 수가 없다.

 이런 총체적 위기 속에 하나님의 생명을 지닌 그의 몸인 교회가 존재하고 있다.

이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악한 길에서 떠나라고 하였다.

 社會的으로 부덕한 일에 교인들이 끼여서 안되겠다.그래서 淸敎徒 訓練이 必要하다.-현대 敎人들이 信仰은 있는데 倫理성이 없다고 한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불신자와 다른 것이 없다.

 그리하여 몽땅 상실한 도덕성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사회에 정의가 실현되게 하라는 것이다.

물론 이일은 개인의 손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는 복음의 속죄의 은총을 힘입어 죄씻음을 받은 깨끗한 양심의 소유자인 거듭난 인격 안에서만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주변에서부터 깨끗한 빛을 발하는 거듭난 영혼의 소유자, 차분히 자신을 녹여 썩음을 막아내는 소금으로-그리고 거듭난 의로운 인격을 가진 세력으로 이 사회저변에 자리잡고 그 의의 세력으로 이 사회의 저력을 형성하는 일이 교회의 최우선적인 본래의 사명인 것이다.

 둘째로 '내 사랑하는 얼굴을 구하라"고하였다.

 오늘의 교회의 지상과제는 교회의 연합과 일치이다.

이것 없이 사회의 지도력 형성을 할 수 없으며 통일도 한낱 희망으로 그칠 것이다. 그런데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오직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사랑으로 만 가능하다.

社會는 그 밑바닥에 同情과 理解와 親愛로 사귀는 사랑의 종용한 대다수가 깔려있을 때 그 底力을 갖게 되며 그 活動이 健全하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이런 사랑의 實踐은 죄에서 속량받은 感激과 獻身에서 나아지는 聖徒의 交際가 아니고는 이를 구현할 길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百姓들이 주안에서 하나되어 聖徒의 交際를 再建하고 거룩한 사랑으로 理解關係없이 하나의 共同體를 이루어 이 사회의 사랑의 저력을 이룰 책임을 감당 해야한다.

 셋째로 節制와 倫理運動이다.

 이는 사람의 힘으로는 안된다. 사람의 힘이란 腕力이요 血氣력이요.

육력이요 情欲력이기 때문이다.

이는 죄를 낳는 힘밖에 더되지 못한다.<하나님>의 힘, 영력이 절대 필요하다.

그래 서 본문에 "스스로 겸비하여 기도하라" 하였다.

새해는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謙遜히 일해야 한다.

 祈禱란 <하나님>과의 사귐이요 <하나님>의 뜻에 服從하는 生活을 뜻한다.

여기에서만 <하나님>의 영력을 얻게 된다..

韓國敎會는 聖靈께 服從하는 祈禱와 生活運動이 絶對必要 하다.

<하나님>에의 順從이 없는 자기 所願成就는 일반통행의 밀어붙이기 식의 푸닥거리 祈禱가 되는 것이다.

意義 勢力으로 사랑의 共同體로, 能力을 소유한 <하나님>의 몸으로 이 地域社會 속에 자랑스럽게 存在하는 敎會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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