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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크리스천의 애족심 (출 32: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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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년 동안 강대국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해방과 자유를 얻었다는 것 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실로 감개무량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것도 이스라엘 백성의 자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초자연적 인 기적으로 된 것입니다. 저들은 사납고 간악한 애굽 사람에게 내린 하나님의 철퇴같은 재앙을 친히 목격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에 도전하다가 여지없이 부서지는 처참한 참극도 목도했을 것입니다.

 아론이 바로 왕 앞에서 지팡이를 던졌더니 뱀이 되었습니다. 그 때에 바로도 박사와 박수를 부르매, 그 애굽 술객들도 그 술법으로 그와같 이 행했습니다.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는데 아론의 지 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켰다고 하였습니다. 바로와 아론과의 대결 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싸움입니다. 또한 우상과 진신과의 대결이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불의와 진리와의 전쟁이라고도 볼 수가 있습니 다. 이 싸움에서 인간은 깨끗이 지고 말았습니다. 이 대결은 패배의 고배를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싸움은 연속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후 이 대결은 10가지 재앙으로 이어졌습니다. 사

그 지팡이로 하수를 치니 물이 다 바로와 그 신하의 목전에서 피로 변하여 하수의 고기가 죽고, 악취가 나서 물을 마실 수 없게 되었습니 다. 이런 놀라운 사건이 어디 있겠습니까 물을 마실 수가 없으니 사 람이 살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되었으면 깨끗이 하나님께 승복할 것 이지 간악한 인간은 자기들의 술법으로 흉내를 내서 대항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실패고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다음으로 개구리 재앙이 그랬습니다.

 다음 세번째 재앙에서는 "술객들이 자기 술법으로 이 같이 행하여 이 를 내려 하였으나 못 하였고 이는 사람과 생축에 있은지라. 술객이 바 로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나 바로외 마음이 강퍅 케 되어 그들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출 8:18-19)고 하였습니다. 이 후부터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재앙이 있을 뿐이었지만 종시 듣지 아니하다가 마지막 장자를 멸하는 재앙을 받고 서야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 주었습니다.

 애굽의 그 무서운 쇠사슬로부터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육 지와 같이 걸었습니다. 광야에서 목이 말랐을 때 반석을 쳐서 생수를 마셨습니다. 아침에는 만나요, 석양에는 메추라기로 연명을 했습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무려 40년 동안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 중에 하나인들 결여되었다면 저들이 생존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이스 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권능을 친히 본 자들입니다. 아니, 그 권능의 기적을 먹고, 마시고 산 사람들입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의 권능을 잘 안 백성임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런 백성이 시내 산에서 모세가 더디 하신다고 해서 우상을 만들 수가 있었겠습니까천하 인간이 다 하나님을 등진다 해도 이스라 엘 백성만은 그럴 수가 없는 일일 것입니다. 물론 저들도 처음에는 참 고 고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대한 대로 오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 님이 제일 싫어하는 우상을 만들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실제로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금송아지에게 제사드렸습니다.

 그리고 요한하게 숭배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

성이므로 모세의 후손만 남기시고 다 진멸하시기로 결심하신 것이었습 니다.

 이 사실을 안 모세는 세가지 이유를 들어서 애끓는 중보의 기도를 드 렸습니다. 첫째, 큰 권능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시고 선민으로 택하셨는데 이제 와서 멸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둘째, 이 백성이 진멸당한다면 애굽인의 승리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셋째,그렇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과 야 곱에게 약속하신 것이 무효로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하는 것이었습니 다.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 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그렇지 않사오면 주의 기록하신 책 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 32:31-32) 모세의 기도는 하 나님께 받아들여져서 경한 시벌로 끝이 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애족 애국심은 참된 크리스천이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있었습니 다. 복음을 배척했던 동족을 위해 구원을 절규하던 사도 바울도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 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 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율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 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1-3)고 하였습니다.

 우리 조국이 오래 전부터 부정부패로 국력이 쇠하여져서 있었습니다.

 게다가 지도자들은 단합하지 못하고 당쟁으로 소일을 하다가 무서운 일본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그 혹독한 탄압을 견디어 내지 못하고 중 국 서북간도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때 애끓는 동요가 유행했는데 눈물 없이는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간다, 간다, 동포들은 간도로 간다. 아 버지는 등에 봇짐을지고,어머니는 아기를 안고, 천만년 살던 조국을 떠나 꿈에도 못본 간도로 간다."라고 흥얼거리며 고국과 고향을 등지 고 갔습니다. 침략을 받은 지 10년 만인 1919년 3월 1일 기미 대한독 립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운동은 세계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 는 경이적인 대사건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순전히 거족적 인 거사로 모든 이념과 종파를 초월해서 오직 독립만을 민족의 살 길 임을 외쳤습니다. 기독교, 천도교, 불교의 지도자들이 합쳤어도 갈등 이 없었습니다. 순전히 애국 애족심의 자생적인 발로였습니다. 선교사 나 외부 인사가 전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순전히 민족적 양심에서 일어난 자발적인 운동이었습니다. 일경의 감시가 심했어도 감지되거나 발각되지 않았습니다. 수백명의 수개월 동안 비멸결사를 꾸미고 회의 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고하거나 배신한 자가 단 한 사람 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 운동이 정치적으로는 비록 성사되지 못했어도 우리는 자존심을 되 찾았습니다. 국가와 민족이 우리를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지 희생할 각 오가 되어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앞으로 독립할 수 있는 저력이 있 는 민족임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수난을 제일 많이 겪은 우리 크리스 챤들은 神 불신을 넘어서 이 민족과 운명을 같이하는 운명공동체임을 느끼게 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이질감을 말끔히 없애고 희망을 심었 습니다.

 이런 귀중한 교훈은 오늘 민주화와 통일을 지향해 가는 길목에서 먼 저 우리 사회의 불신을 없애고 부정부패를 일소하는데 우리가 앞장서 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정치적, 경제적 대형 부정 사건에는 소수이지만 반드시 크리스천들이 개입되어 있었는데, 다시는 이런 슬픈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소금과 빛의 역 하을 다해야겠습니다. 사회정의가 정착되도록 효과적으로 단합해서 다

시는 지난날의 비운이 되돌아오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민족 은 지난 올림픽게임에서 보였듯이, 또한 민주과정에서 과시하였듯이 저력 있는 백성임을 믿고 민족복음화에 총력을 경주해야 하겠습니다.

 튼튼한 국가가 되어야 민주화도,인권도,바른 선교활동도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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