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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의 복음제시 (시 3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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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다윗은 비교적 하나님앞에서 흠이 없는 인생을 산 모범적인 신앙의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고 있다.

2.그러나 완벽한 사람이 있을 수 없어서 그에게도 작은 실수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은 사건이다.

3.다윗은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1년동안이나 뉘우침이 없었다.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있었음을 알게된 것은 나단 선지자의 방문을 받고난 후였다.

4.다윗은 자신의 행동이 대단히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시51편을 기록하였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며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렸던지 “침상을 적셨다”고 하였다.

5.통한의 회개를 하며 눈물을 흘린 다윗은 드디어 자신의 죄가 용서를 받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바로 이런 감격과 기쁨을 고백한 것이 본 시편32편이다.6.다윗은 하나님의 진정한 용서가 자신에게 주어졌음을 깨닫게 되었는데, 이것은 바로 성도가 예수 안에서 누리게 되는 용서의 기쁨이었다.

7.복음이 무엇인가 믿는 사람은 누구에게든지 언제나 복음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I.복중의 복은 용서받는 복이다(1-2).
A.용서는 가리우는 것이다.

1.가린다는 것은 보이지않게 한다는 말이다. 다윗은 이것을 복이라고 하였다. 잘알다시피 시 1편은 “복있는 사람”에 대하여 노래하였다.

2.그런데 다윗은 1편의 복과 용서받음의 복을 동등시 하였다. 자신의 허물을 용서받는 것이야말로 복중의 복이라는 것이다.

3.용서는 아예 죄를 백지화하는 것이다. 2절에 “여호와께서 죄를 묻지 않는 이 들”이 복되다고 하였다.

4.가리는 것은 흔적을 없애는 것이다. 눈에 보이면 그것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다 근원적인 해결을 위해서 근원을 가려버리신다는 것이다.

B.다른 사람의 허물을 가려주자.

1.단순히 어떤일에 대하여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일을 지워버려야 한다. 잊혀진 것은 다시금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이 다시 되살아나면 옛 앙금이 다시 떠오를 수 밖에 없고 그것은 다시금 시험에들게 한다.

2.어떤 허물을 가린다는 것은 새로운 출발의 시도다. 요셉의 형제들은 자신들의 과오가 되살아났다. 그래서 요셉이 두려워졌다. 하지만 요셉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이미 그 모든 일들을 잊어버린 후였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형들의 일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다.

II.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신다(3-5).
A.죄는 고통을 동반한다.

1.옛말에 “맞은 사람은 두발 쭉뻗고 잠을 자지만 때린 사람은 구푸리고 잔다”고 하였다. 죄는 사람의 양심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2.다윗은 자신의 실수에 대하여 1년 이라는 세월을 숨겨왔었다. 그러나 본문의 고백을 통해 볼 때 결코 그의 마음이 편치 못하였다는 사실이다.1)온종일 마음이 괴로웠다.

2)뼈마디가 녹는듯 하였다.
3)하나님이 짓누르셔서 가뭄에 풀타듯 하였다.
4)몸의 모든 힘이 전부 빠졌다.

3.이런 고통은 결국 다윗으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게 만들었다. 5절에 “하나도 빠짐없이”모두 고백하였노라고 말한다.

4.그 결과는 무엇인가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셨다.

B.하나님은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

1.그래서 이사야는 “너희 죄가 주홍 같이 붉을 지라도” 하나님은 너희 죄를 용서하신다고 하였다. 이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죄인들이다.

2.우리는 상식적으로 형법에서 말하는 것만이 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그렇지 않다. 세상에서는 그것이 명백한 잘못이라 할지라도 법에서 “죄”라고 선언하지 않으면 무죄다. 그러니 얼마나 모순된 제도인가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은 모든 것”이 죄라고 하신다.

3.죄는 사람을 꼼짝못하게 올가미를 씌운다. 그리고 고통하는 모습을 보면서 쾌재를 부른다.하지만 하나님은 그와 반대이시다. 죄지은 사람을 보시면서 안타까워 하신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구원하려고 애쓰신다. 그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4.죄사함의 감격을 느껴야 한다. 죄사함의 기쁨을 체험해야 한다. 그래야 참 신앙인이다. 교회는 다니지만 아직 까지 죄사함받았다는 확신이 없다면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이것은 “불행"이요 ”비극“이다.

III.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용서 받을 수 있다(6-11).
A.기도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6-7).

1.하나님은 성도에게 “기도”의 은혜를 허락하셨다. 기도는 용서받은 자만이 드릴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용서받은 자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

2.우리는 기도를 할 때마다 자신의 잘못을 회개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이다. 회개가 없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 회개하는 사람이 웅변을 할 수가 없는 것이고 다른 사람 들으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3.답답할 때 기도하는 것이고 기쁠 때 기도한다. 그런데 저자는 답답한 일을 만난 이들에게 기도하라고 권면하였다. 왜 답답한가 용서받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4.답답한 일은 누구나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연단받는 것과 답답한 것은 다르다. 그래서 야고보는 본인의 과실로 고난을 받는 것은 고통이라고 하였다. 믿음의 성장을 위한 연단인가 아니면 죄로 인한 답답한 고통인가

5.보기에는 같아 보이는 어려움이라도 믿음의 충만함 가운데 기쁨으로 이겨 내는 연단과 어찌할바를 모르고 쩔쩔매는 고난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B.하나님은 의지하는 자를 인도 하신다(8-9).

1.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마땅히 가야할 길을 “몸소”가르쳐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중요한 것은 “확신”이다.

2.더욱 종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두 눈”을 떼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점이다. 하나님도 인간들처럼 “눈”을 가지셨단 말인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살피신다는 점이다. 보호의 강력한 표현이다.

3.그러나 경고를 잊지 않으셨다. “노새나 말”처럼 하지 말라고 하셨다.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경거망동을 금하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믿는 이들 중에도 경거망동을 일삼는 자들이 있다.

C.하나님은 믿는 자의 소망이시다(10-11).

1.악인은 언제나 남을 괴롭힌다. 그래서 선한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다. 이 세상에는 선한 사람들보다 악한 사람이 더 많이 있다.

2.그래서 우리는 모두 하나의 소망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은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하는 소망이다. 속히 주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한다.

3.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전도해야 한다.

결론

1.다윗은 죄의 고통을 누구보다 심각하게 깨달은 사람이다. 그에게 남보다 더 큰 죄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가 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2.죄에 대하여, 혹은 쬐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면 그것은 복이다. 그도 다윗처럼 회개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게되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3.죄 용서받은 것 이상의 복은 없다. 죄 용서는 곧 새생명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생명을 잃는다면 그것은 소용이 없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자.

4.지금 내게는 죄사함의 감격과 기쁨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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