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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몸으로 읽는 야훼의 말씀 (약 01: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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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의 마지막장을 바라보면 무언가 심상치 않은 마음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해마다 이맘 때쯤 되면 마음이 분주해 집니다. 어떤 식으로든 한 해를 정리해야 하고, 이미 한쪽벽에 걸어둔 새 달력이 가져오는 삶에 대한 무게가 마음에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떻게든 시간은 흐를 것이고,어느샌가 1992년 이라 불리우는 시간의 한 복판에 우리는 서게 될 것입니다. 사실상 해가 바뀌는 것이 무슨 특별히 커다란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마음을 정리하고 새롭게 다짐해야하는 이유는 우리가 더불어 살아내면서 함께 싸워내고 넘어서야 하는 일들이 내년에도 첩첩이 쌓여있고 심각한 형태로 도전을 해오는 까닭입니다. 한해의 끄트머리에 우리가 이렇게 둘러앉아서, 흔들림 없고 살아있는 움직임을 가져오는 원리들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야고보가 어느 신앙 공동체에 보낸 편지의 일부입니다. 그 공동체에는 부조리한 행실과 이기적인 축척과 약한 자들에 대한 착취, “행실이 따르지 않는 건조한 신앙생활”이 뒤엉킨 불미스런 난관에 놓여있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시간이 더해 갈수록 심각한 결과들을 가져 올것이 분명합니다. 이들에게는 어떠한 결정적인 계기가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계기를 만들어갈 좋은 조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그 당시의 같은 경우가 아닐찌라도 여전히 중요한 계기로 삼을 만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22절)입니다. 결정적으로 움직여야 할 시점에서 생각은 경직되어 버리고, 실천적 행동이 석고화 되어버린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며, 펄펄뛰는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논의를 하였고 움직임에 대하여 말을 나누었다해도 “그저 듣기만하는” 맹목의 가슴이 자리하고 있다면, 결국 자신을 속이는 셈이 되고 맙니다. 그것은“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물러나서는 곧 그것을 잊어버리는” 어리석음과 다를바가 없는 것입니다. 야훼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의로운 움직임”이며, 모든 역사 속에서 “푸른 생명의 사건”으로 솟아납니다. 이 척박한 땅에 태어나신 예수는 바로 심상치 않은 사건 자체였고, 그 말씀의 전부 였습니다. 오늘도 역시 그러합니다.
“살아있는 움직임”을 가능케하는 말씀을 경직된 법조문으로 만들어 버리거나,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장식 정도로 여긴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분명한 “몸의 언어”이 되도록 해야합니다. “자유를 주는 완전한 법을 잘 살피고 꾸준히 지켜 나가는 사람은 그것을 듣고 곧 잊어버리는 일이 없으며 들은 것을 실천에 옮깁니다”(25절).
오늘 우리에게 성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느슨해진 발걸음에 어떠한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말씀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움직임이 되도록 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자신을 속이지 아니하고”(22절),“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고 순수한 삶”을(27절)살아가는 것으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새로운 해를 시작할 수 있는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거창한 행사나 사업계획을 세우는 것 보다도 중요한 준비는 금년의 마지막주에 하나의 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서 석고화한 부분들을 도려내고, “자신을 속이지 아니하는” 실천력을 단련하는 기회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우리 낙골 신앙공동체가 목적하는 바는 서로가 서로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순수해 지고, 뜨겁게 사랑하면서 가슴벅찬 움직임의 계기를 함께 고민하며 만들어가는 것이되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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