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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보물 (마 06: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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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들려 오는 흥미 있는 말들 중에 하나는 ‘보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개척 초기에 미국 캘리포니아는 사금(砂金)을 캐러 가는 사람들로 만원을 이룬 적이 있었습니다.
서부로 먼저 가서 구역만 정해 놓으면 그것이 모두 자기 땅이 되고, 또 그 땅에서 마음대로 사금을 캘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로 거부(巨富)가 되는 사례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 소문은 마침내 듣는 자들로 하여금 가족을 이끌고 서부로, 서부로 달려가게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남 보다 빨리 가서 많은 땅을(모래 밭) 확보하고, 많은 사금을 캐내어 부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곳 서부로 달리는 수다한 사람들 가운데 청교도들은 예외였습니다. 저들은 서부로 달려가는 도중에 일곱째 날 곧 주일이 되면 가던 길을 멈추고, 가족들과 가축 떼들도 모두 쉬어야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저들이 하나님이 명하신 계명을 좇아 예배를 드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부로 가던 수많은 사람들 보다, 청교도들의 걸음이 뒤떨어 졌습니다.
그러나 서부에 도착할 즈음에는 청교도들이 절대적으로 앞서 갔고, 더 많은 땅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저들은 일정한 시간(주일)에는 쉬어 갔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너무 쉬지 않고 강행을 하다가 대부분의 사람들과 가축 떼들이 병이 들어 죽기도 하고, 결국 늦게 도착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보물에 관한 옛날, 미국 서부개척 시대의 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산상수훈 중에 재물에 대한 교훈(마5:19-24)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개념대로 재물을 ‘보물’이라고 하는 말로 사용하였습니다. 재물에 관한 예수님의 교훈 가운데 두 가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소극적인 것이고, 또 하나는 적극적인 것입니다.

Ⅰ. 네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6장 19절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땅이란 이 세상을 뜻합니다. ‘쌓아 둔다’는 말은 저축뿐 아니고 사용(소비)까지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재물을 자기 중심으로 모으거나, 저축하거나, 사용하는 것을 가리켜 ‘땅에 쌓아 둔다’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네 보물(재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씀하였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좀’이 해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좀’은 모직물에 알을 낳는 작은 곤충을 뜻합니다. 그것이 의복을 갉아먹습니다. 그것이 옷을 갉아먹는 시기는 애벌레 때입니다.
둘째 이유는, 동록이 해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동록’은 쇠붙이의 부식을 뜻합니다. 화학 작용에 의해서 쇠붙이를 점점 산화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셋째 이유는, 도적의 침해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팔레스틴의 집들은 벽이 얇았습니다. 겨우 햇볕정도만 가릴수 있는 집이었기 때문에 도적이 엷은 토벽을 뚫고 들어와 그 보물을 훔쳐 가는 일이 가능하였습니다.
이렇게 좀과 동록과 도적들의 위험 때문에 보물(재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교훈은 여자적인 의미도 가능하지만 보다 은닉적이요, 영적인 의미가 더 큽니다.
좀과 동록과 도적의 정체는 바로 우리 인간 자신들의 탐욕이요, 이기심이요, 배금주의 사상이요, 황금바알 숭배 사상을 가리킵니다. 모든 삶의 가치와 목적을 전혀 물질에 두고 그것을 위하여 인생을 투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 물질로 자기를 위하여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며, 자색 옷과 고운 베옷으로 자기의 육체를 꾸미는 인생을 의미합니다.
오직 물질만이 인생 가치의 척도요, 목적으로 생각하는 유물론적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 사람의 마음이 바로 자기 인생을 갉아먹는 좀이요, 녹슬게 하는 동록이요, 훔쳐 가는 도적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여러 부자들은 자기 인생을 그러한 좀과 동록과 도적 떼들에게 먹히우고 말았습니다(눅12:13-21, 16:19-31).

Ⅱ.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6장 20절에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재물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중 적극적인 면을 뜻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의 중심 의미는 확실하고 분명합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이 말씀은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좇아서 재물을 취득하고 또 선용할 것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해 놓으신 축복의 계율입니다.
첫째로, 소득의 십일조를 구별되게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①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 자신임을 알리고 ② 그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사랑의 고백이요 ③ 또한 물질 선용에 대한 맹세의 표요 ④ 더 많은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한 수단입니다(말3:10-11).
둘째로, 복음 선교를 위하여 선용하는 일입니다.
마가복음 10장 29절로 30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셋째로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구제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물질적 보조가 아닌고 그리스도에게로 그를 인도하는 구령의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마6:1-4).
넷째는 기타 신령한 복음 운동을 위하여 헌신과 감사와 봉사의 재물들입니다.
이것은 신구약 성경에 가득차 있는 축복의 명령들입니다.
그것이 여러 절기들의 감사행위요, 크고 작은 교회의 모든 일들에 물질로 드려지는 연보들입니다.

Ⅲ.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님의 대답이 마태복음 6장 21절에 따라 나옵니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보물(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할 목적이요, 이유입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초점은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께 향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곳은 성도들의 마음이 두 곳에 동시에 있을 수 없음을 알려 줍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마6:24). 그것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십자가 전쟁 때 있었던 비화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어느 귀족이 금을 가득 채운 상자를 가지고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그는 전쟁 중에 자기의 금상자를 적진에 몰래 보냈습니다. 그후에 그는 자기의 금상자를 다시 찾기 위하여 용감하게 싸워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다를 항해하던 중에 방향을 잃어버려 무인도에서 배가 파선했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저들이 무인도에서 빠져 나올 길이 없었지만 저들에게는 식량이 많이 있었고, 또 곡물의 씨앗과 훌륭한 토양과 따뜻한 햇빛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진 셈이어서 자급자족할 수 있었으므로 당장은 크게 위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어느 날 그 섬에서 밭을 일구다가 뜻밖에 풍부한 금광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뜻밖에 황금 노다지에 정신이 팔려 농사일을 잊어버리고, 모두 금을 파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달이 지나갔습니다. 저들은 갑자기 무인고도(無人孤島)에서 금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에게는 식량이 끝이 나고 있었습니다. 그 후에 저들에게 찾아 온 가을과 함께 기근이 닥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저들에게 그 많은 금이 쓸모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급히 밭으로 가서 다시 고랑을 파고 씨를 뿌렸습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어 버렸습니다. 저들에게는 빛나는 순금 보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가지 않아 먹을 양식이 없어 목숨을 잃게 되는 비극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을 부요해지기 위하여 물질추구에 전 인생의 승부를 겁니다. 자기에게 있는 모든 정력과 시간과 재능을 다 바칩니다. 그럴 동안에 그 사람에게 뜻밖의 재난이나, 아니면 죽음이 찾아옵니다. 그는 그 죽음 앞에서 아무 대책이 없었습니다. 뿐 아니라 그가 모아 둔 그 많은 돈이 자기의 죽음을 대신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재물을 바칠 줄을 모르고, 취하기만을 추구한 사람들에게 선행의 기회마저 없어지고 마는 불행입니다.
목적 없는 삶, 그리고 잘못된 목적의 삶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확실히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자는 교회를 위하여 연보하기를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재물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 중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한 이 말씀은 우리가 곡해해서는 안됩니다. 돈을 벌지 말라거나, 무역이나, 사업이나, 공업이나, 농업이나, 수산업이나 기타 모든 수입행위를 하지 말라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더욱이 저축을 하지 말라거나, 또 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지 말라는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인간이 재물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입니다. 돈이 인간을 지배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입니다. 인간이 돈을 숭배하거나, 돈 때문에 인간이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열심으로 노동을 하여 돈을 취득함은 하나님의 복스러운 명령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대표였던 아담에게 명하신 복스러운 문화 명령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지구의 왕자로써 지음 받은 사람에게만 주신 특별한 축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엿새동안 힘써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합니다. 그리고 이레 되는 날은 그 소득 중에 여러 종류를 감사의 제물을 구별하여 하나님을 섬기러 교회에 나옵니다.
돈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 세상에 잃어버린 아브라함의 자손을 찾기 위한 하나님의 구령 운동의 수단으로 필요한 도구, 유용한 도구입니다. 효과적인 도구입니다.
오늘 이 시대만큼 사람들이 물질과 돈을 중요시하는 시대는 없습니다. 그만큼 오늘 사람들이 물질과 돈을 잘못생각하고, 오용하고, 낭비하는 시대도 다시없습니다. 물질과 돈에 대한 사람의 애착과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가지면 또 더 가지고 더 가지면, 또 가지고 싶은 탐욕의 우상숭배로 끌려가고 또 끌려가 버리는 시대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일반적으로 옛날보다 물질 봉사가 약합니다. 엄청난 경제적 성장에 비하여 신자들의 물질 봉사는 약하여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미국 교회의 현상을 닮아가고 있는 생애 징조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경향인은 우리 중에 최고의 연보를 하나님 앞에 작정하고 서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새 성전을 짓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우리 경향인은 잠언 3장 9절로 10절의 말씀대로,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하신 말씀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우리 경향인은 이미 우리 삶의 목적과 수단이 무엇임을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김이 우리의 목적이요, 그 목적 성취를 위한 선교적 삶이 우리의 수단입니다.
이미 우리 경향인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임을 확신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면 하나님이 이일을 기뻐하고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경향인의 마음은 결코 사막이 될 수가 없습니다. 사막이 사막된 이유는 사막에 비가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막에 비가 오지 않는 이유는 거기에는 증발할 수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열기만 올라가서 공중에 있는 수분마저도 증발시키고 맙니다.
이미 우리 경향인의 마음은 주님께서 허락하신 구원 은총에 감격하여 드리는 회개의 눈물과 감사의 눈물과 희생과 충성의 눈물이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고 있음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축복의 단비가 하나님의 응답으로 내려 올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경향인된 여러분!
새 성전 건축의 진행을 위하여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읍시다.
이것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를 구하는 최우선적인 우리의 추구입니다(마6:33). 그리하면 또 모든 것이 더하여지는 축복이 우리와 우리 자손의 것이 될 것입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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