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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롬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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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방 청소를 합니다. 사람은 활동하기 때문에 필요치 않는 것이 방에 생기기 때문입니다. 청소를 통하여서 계속해서 쾌적한 주거환경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에 청소를 하지 않는다면 하루 이틀은 괜찮을지 모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꾸 필요치 않는 것이 생기게 됩니다. 함부로 벗어 놓은 옷가지, 쓰레기 애들 장난감, 먼지, ...... 나중에는 도저히 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하게 됩니다. 방은 사람이 쉬는 장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날마다 청소를 해서 청결을 유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 창고가 있습니다. 지금은 제대로 정돈이 되어서 보기도 좋고 필요한 것을 찾기도 쉽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가면 지금까지 예로 보아서 복잡해지게 됩니다. 자꾸 무엇을 갖다 놓고 정돈된 상태를 흐트러 놓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청소를 하고 정돈을 하게 되면 바람직한 창고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필요치 않는 것이 자꾸 쌓이게 되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가운데 있게 되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문제는 필요 없는 것을 계속해서 치워 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바르게 유지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쓸데없는 습관이 생기기도 하고 필요 없는 취미가 붙기도 합니다. 무익한 친구가 생기기도 합니다. 악의 물결이 우리를 항상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흐트러지고 복잡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정과 부패는 필요치 않는 것을 방치함으로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신앙도 우리가 깨어 있지 아니하면 오염이 되어서 도저히 신앙인으로서 할 수 없는 그런 상태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는 것처럼 신앙인으로서 마땅히 정리해야 될 것들을 정리하지 못함으로 믿음의 사람답지 않는 행동을 보이는 기독교인들을 우리는 봅니다. 부정 부패에 가담하고 헛된 세상 일에 빠져 있고 정도가 아닌 그릇된 곳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많은 사람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쓸데없는 고집, 자존심, 명예심, 욕심 등이 얼마나 많은 교회를 멍들게 하고 있는가를 우리는 오늘 냉철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오늘은 종교개혁 주일입니다. 종교개혁의 정신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쓸데없는 것들에 덮여 있는 교회를 정리해서 초대교회의 순수한 신앙의 형태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이상은 초대교회입니다. 초대교회의 그 순수한 신앙입니다. 성령충만한 교회, 그리스도의 증인된 교회, 사랑이 넘치는 교회, 모든 사람으로부터 칭찬 받는 교회...입니다.
(행2: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행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행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행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행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행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행4: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행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행4: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행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행4:34)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행4: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행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행5: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이것이 바로 초대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교회는 많은 박해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성도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로마에 가면 카다콤이라는 지하 묘지가 있습니다. 일종의 공동묘지인데 수킬로에 달하는 것도 있습니다. 여기 지하 공동묘지에 당시 핍박받던 성도들이 남긴 벽화들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드러내 놓고 집회를 하지 못하고 지하 공동묘지에서 예배를 드리며 신앙을 지켰던 것입니다. 저들은 그 어려운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견고히 지켰을 뿐만 아니라 생활에 있어서도 청렴하고 순결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기독교가 공인이 되고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부터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황제의 비호를 받게 되자 물질적으로 풍성해지고 발언권이 강해지고 신앙 외적인 것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되자 교회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잃어 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권이 발달이 되어서 세속의 권위를 누르게 되었습니다. 곧 교황이 황제의 우위에 있게 된 것입니다. 카놋사의 굴욕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는데 당시 로마 황제인 하인리히 4세가 교황에게 맨발로 눈밭에 서서 잘못을 빈 유명한 사건입니다.
교황 이노센트 3세 때는 교황권의 전성기였습니다. 어떤 날 교황이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공물을 교황청 창고로 싣고 오는 수레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교황이 토마스 아퀴나스라고 하는 신학자에게 ‘우리에게 은과 금은 없다는 말은 이제 지나갔다. 저 많은 물질을 보아라’ 고하자 아퀴나스는 ‘은과 금은 내게 없다는 말이 없어진 것처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는 말도 없어졌습니다’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속적으로 부유하게 되자 성직자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성직을 돈으로 사고 파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말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킬 때는 성경을 한 구절도 모르는 성직자가 태반이었다는 것입니다.
급기야는 구원을 돈으로 파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어졌습니다. 당시 교회가 교회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하여서 교황청을 새로 짓게 되어졌습니다. 그 건물이 바로 오늘날의 바티칸 궁전입니다. 얼마나 대단하게 지었든지 시작한지 백 년이 지났는데도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건축비를 모금하기 위해서 면죄부라는 것을 팔게 되어졌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연옥이라는 것을 믿는데 이는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고통의 장소입니다. 예수를 믿는데 선행이 부족한 사람들이 가서 고난을 받고 있다가 천국으로 가게 되는 장소인데 만약에 세상에서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공덕을 쌓아 주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 갈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면죄부는 살아 있는 사람은 그냥 천국으로 가는 것이고 만약에 죽은 사람을 대신하여 사게 되면 연옥에 있는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가게 된다고 하면서 면죄부를 팔게 된 것입니다.
드디어 이 면죄부를 팔러 루터가 살고 있는 비텐베르크에 와서 면죄부를 사라고 교묘하게 선동하였던 것입니다. 루터는 여기에 심하게 반발하면서 95개조항의 항의문을 비텐베르크 교회당 정문에 붙여 놓고서는 공개 논의를 할 것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그 날이 바로 1517년 10월 31일 지금으로부터 477년 전입니다.
이 사실이 며칠 새로 전 유럽으로 퍼지게 되었고 종교 개혁의 불길이 세차게 일어나서 교회의 모습을 새롭게 변화시켜 놓고 교회의 변혁으로 말미암아 중세의 막이 내리고 근대사회로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말틴 루터를 종교 개혁의 선봉자가 되게 한 것은 무었이었느냐하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입니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루터는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법관이 되기 위해서 에루프르트 대학에 들어가서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친구가 같이 있다 벼락에 맞아 죽는 것을 보고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옳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서 많은 고행을 했습니다. 심한 노동 명상 금식, 기도 그러나 그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죄는 분명히 더 적게 짖는데 마음의 가책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그리이스 성경책을 발견하고 보던 중 로마서 1:17절 말씀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는 비로소 복음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행위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속 사업을 믿는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내 공로가 아니라 주님의 공로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그의 마음의 기쁨을 빼앗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면죄부를 사면 구원을 얻게 된다는 당시 교회의 행위에 반대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혜라고 하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드높이 외치며 하나님의 뜻대로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붙잡아 주셨고 그는 천 년 이상의 세월동안 어질러졌던 교회를 깨끗하게 정돈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종교개혁 주일을 지키는 것은 과거를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루터가 개혁을 할 때 교회가 교회 아닌 것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 되어 있어야 할 우리 속에 다른 것들이 가득차 있는 것을 청소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항상 초대교회의 순수한 신앙을 사모하고 회복해야 되는 것처럼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충만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되었고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우리는 사회를 보면서 개탄합니다. 썩었다느니, 갈아치워야 한다느니,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보면 독재 정치가 물러가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 무엇인가 새로운 뭐가 있겠다 하면서 기대를 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정치 형태가 달라진다고 해도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바뀌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먼저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원치 않으신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벧전2: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벧전2:2)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2: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그리고 주님으로 마음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길만이 우리의 삶에 행복과 평화와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는 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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