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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에 빚진자 (롬 0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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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로마서 1장의 초두에서 인사말을 마치고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이 전하려는 메시지 시작하고 있습니다.바울은 8절에서 “첫째는” 이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뒷부분을 읽어 보면은 둘째는, 셋째는,--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볼 수 가 있습니다. 이것은 첫째는 이라는 말이 단지 첫째, 둘째의 순서를 말하려는데 있지 않고 뭔가 다른 의도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 의도는 바로 다음에 이어 나오는 내용을 강조하는데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첫째는 이라는 말을 ‘무엇보다도’ 라는 말로 바꾸어도 좋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 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바울은 먼저 무엇보다도 다른 말에 앞서서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감사를 받으시는 분은 <내 하나님> 입니다. 바울이 분명하게 고백하는 나의 왕, 나의 하나님께 바울은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감사를 받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감사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우리에게 감사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감사가 없는 신앙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감사가 없는 곳에는 감격이 없고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루의 일을 다 마치시고 잠자리에 드실 때 여러분은 어떠한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니까 바울은 지금 아주 간절히 감격한 마음을 가지고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의 감사의 내용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라고 하는 선교에 대한 감사입니다. 바울을 지금 휘어 감고 있는 열정은 다름아닌 선교에 대한 열정입니다.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가 그의 관심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그가 선교에 대한 열정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그는 9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바울은 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했고, 여기서는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주관적인 것이며 체험적인 것이며 고백적인 것입니다. 바울은 내 하나님이라고 네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주관적인 체험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주관적이고 체험적이고 고백적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누가 여러분들에게 와서 당신이 섬기는 당신의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십니까 라고 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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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시렵니까 하나님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막연하고 추상적인 대답도 그가 원하는 대답은 아닐 것입니다. 더더우기 논리적인 논쟁이나 이성적인 비판을 가지고서는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설명할 수도, 그가 어떠한 분인가도 알 수 가 없습니다. 오직 주관적이고 체험적인 고백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가를 아주 쉽게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그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증인이 되시는 바울의 진실한 바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쉬지 않고 로마교인들을 향하여 기도 한다는 것과 둘째는 그들에게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함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좋은 길이라 함은 편한 길, 걷기 쉬운 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길이라 함은 선교의 길, 복음을 전하는 길, 복음 들고 산을 넘는 아름다운 길인 것입니다. 바울은 나중에 그토록 그리던 로마에 방문합니다. 그러나 그 방문은 평안함 속에 이루어진 방문이 아니라 죄수의 몸으로 이루어진 방문이었습니다. 그는 죄수가 되는 것을 피할 수도 있었지만은 로마교회를 방문하기 위해 기꺼이 죄수의 몸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길이 그에게 있어서는 좋은 길이었습니다.

어찌보면은 이 길은 이해가 되지 않는 길입니다. 세상사람들의 시각으로 보면은 좋은 길은 넓은 길이고, 편한 길입니다. 그러나 신안의 눈으로 보면은 좋은 길은 좁은 길이요 주님가신 길입니다. 우리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 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태복음 7:13-14)

찬송가 427장 후렴에 보면은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찬양합니다. 여기에 복음이 가지고 있는 비밀이 있습니다. 이 비밀은 감추인 비밀이며 이해 되지 않는 비밀입니다. 좁은 길을 걸으면서 기뻐할수 있는 비밀은 아는 사람만이 아는 비밀입니다. 그러니까 아는 사람들 끼리는 비밀이 아닙니다. 밝히 드러나고 명백히 드러난 하나님의 은총인 것입니다.바울은 지금 그 은총과 그 기쁨과 그 감격을 가지고 로마의 교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11절에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바울은 이제 구체적으로 자신이 로마를 방문하려는 목적을 밝히고 있 습니다.

①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어 견고케 하려함 입니다.
바울이 나누어 준다는 말을 우리는 오해하여서는 안됩니다. 언뜻 들으면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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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 주는 것으로 이해하기 쉬운데 은사는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누어 준다는 의미는 <자신도 함께 공유하여 참여한다> 는 의미입니다. 교제를 나눈다는 말은 함께 교제에 참여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은사에 함께 참여하기 위해서 그것을 목적으로 해서 바울은 로마를 방문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신령한 은사는 견고케 하는 은사입니다. 견고케 한다는 말은 신앙을 굳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흔들리지 아니하고 미혹되지 아니하고 굳게 서는 은사를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 견고케 하는 은사를 사모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을 흔들리지 아니하는 반석위에다가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집을 결코 모래 위에다가 짓지 않습니다. 만약에 모래위에다가 살 집을 짓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이 제 정신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너져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상시에는 몰라도 비가 오고 창수가 나면 시험을 당하면 여지 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평생을 사는 집도 튼튼히 지으려고 하는데 하물며 우리의 영원한 집을 지으려할 때는 어떻겠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튼튼히 지어야 합니다. 아무리 사탄 마귀가 흔들고 세상이 유혹하여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견고한 신앙의 집을 우리는 세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집은 우리가 영원히 살 집입니다.

세상에서는 좋은 집에 살았던 부자는 뜨거운 지옥불에 던져졌고 누추하기 짝이없던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말이 아니라 누가복음 16장에서 주님이 직접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 누구를 부러워 해야 합니까 부자입니까 나사로입니까 우리는 영혼의 집을 짓는 사람을 부러워 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집에서 살면 뭐합니까 아무리 좋은 직업을 갖고 있으면 뭐합니까 영혼의 집을 짓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견고케 되는 은사를 사모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쓰러지지 않는 튼튼한 신앙의 집을 지어야 할 것입니다.

②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입니다. 서로 위로함을 얻기 위해서, 서로 위로해 주기 위해서 바울은 로마의 방문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위로 하는 공동체입니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위로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역장은 구역의 성도들을 위로하고 구역의 성도들은 구역장을 위로하고 서로서로 위로하는 공동체가 바로 우리의 교회의 공동체다 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 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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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들을 능히 위로 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교회에 우리의 가정에 그리고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의 위로가 날마다 충만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주님은 지금도 지치고 상한 영혼들을 향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교회는 위로하는 곳이고 위로 받는 곳입니다. 상한 상처를 감싸는 곳이며 병든 영혼을 치료하는 곳이며 새 힘을 공급받는 곳이 바로 우리의 교회인 것입니다. 많이 위로해 주시고 또 많이 위로 받는 우리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③ 열매를 맺게 하려함입니다. 열매를 맺는 신앙을 세우기 위해 바울은 로마로 가기로 작정을 하고 있습니다. 나무는 그 열매를 보고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주님도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도 이제 지나가고 바야흐로 결실의 계절을 우리가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 오셔서 우리에게 열매를 요구하실 때에 어떠한 열매를 주님께 드리시렵니까 세례자 요한은 이미 도끼가 나무에 놓여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열매맺지 아니하는 나무는 찍어버리겠다는 경고인 것입니다.

예산에는 사과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과가 크고 맛도 좋습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사과나무를 심고 일년내내 거름주고 농약도 치고 정성을 다했는데 만약에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열리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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