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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생애 (시 39:12, 히 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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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믿는 사람들이 세상사람들과 다른점은 믿음을 가지고 사는 자라 는 점이다. 그런데 요즘 신앙인들은 쉽고 간결하게 이익을 추구하려고 하는 편의주의와 인스탄트시대에 젖여 믿음을 생활의 수단으로 생각하 고 생활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믿음은 생활의 기초요, 인생의 근본이다. 인간의 삶에 바탕을 이루 는 두가지의 정신적인 영역이 있다. 하나는 지식의 세계요, 다른하나 는 믿음의 세계이다. 예를들면 둘에 둘을 더하면 넷이 된다든지, 수소 둘과 산소하나의 비례로 화합하면 물이 된다든지(H2O),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365일 6시간만에 한바퀴를 돈다는 것은 지식에 속하는 일이다.

지식을 종합해 보고 분석해 보고 실험해 보아서 찾아진 원리, 그것이 지식을 형성시켜주는 조건이 된다. 그러나 믿음의 세계는 그런것과 아 주 다르다. 우리가 아침이면 어머니나 아내가 지어주는 조반상을 대한 다. 우리는 그 조반을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아무도 그 음식에는 독 이 들어있지 않다고 증명해 주지 않아도 안심하고 먹는 것이다. 어머 니나 아내의 사랑을 믿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저녁이 되면 안심하 고 잠자리에 들어 간다. 그러나 아무도 밤사이에 아무일도 없을 것이 라는 보장을 해주진 않는다. 그래도 안심하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내일 아침이면 여전히 태양이 솟아 오르고 또 새날이 오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농부들이 봄이 되면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아무도 그 뿌 려진 씨가 싹이 나고 열매를 맺어 가을에 많은 추수를 하리라고 증명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농부는 안심하고 희망을 가지고 씨를 뿌리는 것 이다. 하나님의 자연의 법칙을 믿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에게 이 믿음 이 흔들려 가족들의 사랑을 의심한다든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의심 한다든지, 곡식의 성장 법칙을 의심한다든지 하면, 우리는 한순간이라 도 살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삶은 대체로 지식에 의하여 성립되는 것이 아니요 믿음에 의하여 성립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성 서는 잠언 1:7에 여호와를 경외(믿음)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한다. 오늘의 본문 11:1-3은 믿음이 인간생활의 기초임을 강조하 고 우리보다 앞서간 선진들의 평생을 통하여 믿음의 생활을 한 아벧, 에녹, 노아, 아브라함등을 열거하고 있다.

 가인은 자기가 농사해서 얻은 곡식으로 제사를 드리고 아벧은 하나 님께서 계시한대로 짐승을 잡아 피를 흘려 속죄제를 드렸다. 하나님께 서는 아벧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아니 하셨다. 여기에 불평을 품고 가인은 동생 아벧을 쳐 죽였다. 아벧은 죽었지만 아벧에 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억울한 호소를 듣고 가인에게 벌을 내리셨다. 아벧은 죽었지만 그리고 역시 그의 입과 혀가 다 썩었 지만 그의 믿음있는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 에녹은 육신으로 승 천한 성인이었다. 에녹이 아무리 빠른 발과 긴다리를 가졌다고 그 발 과 다리를 가지고 이땅에서 하늘 저높은 곳까지 갈 수가 있겠는가 에 녹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필경 천국으로 들어간 것이다. 노아는 홍수가 내리기 전 120년때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방주를 예비했다. 노아의 눈이 얼마나 밝았으면 120년 후에 될 일을 예견할 수 있었겠는가 오직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 끝날에 내릴 무서운 재앙과 형벌을 피하여야 할 것이다. 120년 동안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을 받으면서도 대 홍수를 주장하는 노아의 기나긴 인내 의 믿음은 얼마나 장한 것인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장래의 기업을 받고 약속을 기 업으로 받았다. 이렇게 많은 복을 받은 것이 손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았다. 오직 믿음의 손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를 받았던 것이다.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잡아 번제를 드리라는 하나님 의 명령이다. 당시 그 지방인들에게는 사람을 잡아 신에게 제사하는 풍속이 종종있었다. 서아시아인과 인도인은 아이를 불에 태워 바치기 도 하고, 물에 쳐넣어 바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런 미신 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단순하게 순종하는 마음으로 아들 이 삭을 바치기로 한 것이다. 간밤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몇일동안 생 각해 보지도 않고 아침일찍 일어나 그대로 순종을 하였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자기종 두사람까지 네사람이 200여리 먼길을 같이 갔다가 아들 을 아들을 제물로 바치고 세사람만이 집에 돌아 오려는 각오로 떠난 길이다. 그러나 그런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떻했을까 가히 짐작이 가 는 일이다. 200여리나 되는 길이니 만치 떠난지 3일만에 비로서 목적 지를 바라볼 수 있었다. 아브라함때로부터 하나님께 예배하고 종교적 봉사를 하는데는 택한 백성이 아닌 이방인은 함께 제사를 드릴 수 없 었다. 그러므로 이방에서 얻은 종들은 도중에 머물러서서 기다리게 하 였다. 그리고 옛날에는 라이타나 성냥이 없었다. 그래서 여행할때는 불씨를 가지고 가는 수고가 뒤따른다.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있습니 까'하고 묻는 어린 이삭을 바라보는 아브라함의 심정은 부모들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은 3대를 계속 하여 확실한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오래오래 참고 또 참 아 모세 여호수아때에 이르러 비로서 약속의 실현을 받았다. 그러나 모세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거기에 나라를 건설한것도 아직 완전한 약속이 실현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것은 평생토록 삶속에서 믿음으로 생애를 사시는 분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인스탄트 생활문화에 살고 있다. 믿음도 인스 탄트 생활편의주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앞서간 선진들은 한 생애 를 두고 지켜온 믿음의 유산을 이어갔다.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 쉽게 간증하고 얻어진 것만을 축복으로 알것이 아니라, 당대에 끝나는 믿음 의 유산이 아닌 자손 3, 4 대까지 내려가는 시냇물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쫓아 열매를 맺음같이 알알이 믿음으로 영글어가는 평생 믿음 이어야 한다.

 앞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너 믿음을 지켰느냐'고 하나님께서 물 으시면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까 예수님은 믿음의 삶으로 전생애를 사셨다. 그 믿음의 삶은 십자가의 삶이다. 십자가의 길, 형극의 길, 만고풍상을 믿음으로 극복한 삶이다. 예수님의 생애는 드라마틱한 십 자가의 길이다. 예수의 태어남은 말구유, 3세 미만의 아이들에 대한 처형명령, 베들레헴 촌마을 객지에서의 출생에서부터 배고파 무화과 나무의 열매를 찾음과 머리둘 곳도 없다는 무주택자, 젊은 33세의 나 이에 장가도 들지 못한 목수업을 하는 노동자의 자리에서 그 젊음을 보냈다. 제자들의 배신과 수제자의 3번이나 되는 부인, 십자가 형틀을 매고 골고다의 언덕길을 오르는 것, 머리에 짓누르는 가시면류관, 가 슴에는 욱신욱신 쑤시는 붉은 창자국, 이 얼마나 십자가의 점철된 드 라마인가

기암절벽의 푸른 솔은 한 생명의 굿굿한 의지를 들어 보인다. 세찬 바람이 불어도 눈이 덮여도 흔들리며 제자리에 굿굿한 모습으로 지탱 하는 것이다.

고해와 같은 이 세상 속에 너 믿음을 지키었느냐 좋을 때나 나쁠 때, 슬플 때나 기쁠 때, 이해관계없이 평생토록 믿음을 지키었느냐고 물으시면 하나님 앞에 우리는 이렇게 설 것인가 믿음의 생애로 한평 생을 사는 지혜를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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