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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마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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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음의 준비(26:1-46) 예수님은 이틀 후로 다가온 유월절과 자신의 죽음을 연결하시면서 (26:2절)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셨다. 대적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하 려 했지만(26:5절)제자 중의 하나인 유다의 제안으로(26:14-16절)결 국 피하려 했던 시기에 예수의 처형이 이루어진다.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한 여인이 예수에게 기름을 부었다. 예수 님에 의하면 그것은 허비가 아니라 자신의 장사 준비였다(26:12절).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과 예수를 섬기는 것이 아직은 대조될 수 있는 시기이다.(25:31-46참조). 예수님께서 육체로 계시던 따라서 물질로 모시던 때였다. 당연히 주님이 선택된다.여인의 행동은 종 교적으로 아주 특별하게 주님을 섬긴 일로 계산되어 복음의 일부가 된다(26:13절).

유월절에 최후의 만찬을 드심으로 마지막 유월절과 첫 성찬식이 그와 함께 엿 언약과 새 언약이(26:28절)교차된다.

예수의 사역은 혼자만 걸어가실 수 있는 길이었다. 제자들은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한다. 겟세마네가 그들이 따를 수 있는 한계였다.

(26:56절) 예수님은 모든 제자들이 그를 버릴 것을(26:31절),심지어 베드로도 자신을 부인할 것을(26:32) 유다는 그를 팔아넘길것을 (26:23-25) 알고 계셨다.

인간으로서의 고통도 예수님에게는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으로 다가 왔다. 일평생 목표로 삼아 걸어 오셨던 순간이지만 그것을 전심으로 수용하기까지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의 고뇌와 두려움,슬픔,걱정,욕구 등이 모두 극복되어야만 했다.(26:38-39)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전에 사람이시며 사람이기 전에 하나님 의 아들이시다. 그의 기도는 그의 인간적 몸부림이 어떻게 극복되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기도가 인간 예수를 승리 로 나른다.

 2) 체포와 심문(26:47-77)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을 선생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적대자들이나 낯선 사람들 뿐이다. 반면에 제자들이나 그를 믿는 사람들은 항상 주님이라고 부른다. 가룟유다가 예수를 두 번이나 랍비(26:25, 26:29)라고 불렀다는 것은, 그는 사실은 예수를 믿지 않았고 메시 야로 인정하지도 않았다는 암시로 보아야 한다.

유다는 예수의 예언대로 행동하는데(26:48-49) 반해 베드로는 그 예언을 거스리려고 애쓴다. 칼을 빼어 한 종의 귀를 베기도하고 (26:51) 예수를 따라 가기기도 한다. 그러나 항거 때문에 오히려 그 더 큰 곤경에 이르게 된다(26:70-77). 하지만 사랑하는 주님을 그 냥 둘 것인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이 행동을 꾸중할 것인가 베드로가 이해하고 받아 들이기에는 힘이 모자란 부분이 있었다. 육체로 오신, 죽음을 만민을 위한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 이신 예수의 의중이었다.

강도 취급을 받으신 예수! 사전에 사형을 결정하고 그것을 뒷받 침할 증거를 모았다. 공평한 판결을 받지 못한 예수! 그들은 가능한 모든 증거를 모았다.(26:59-61) 모함에 빠진 예수! 하나님의 뜻인 예수의 죽음은 온갖 인간의 구실로 위장된다. 도살장의 양과 같이 잠잠하던 예수에게 하나님 모독죄가 선고된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이 죄이다 우리의 믿음이 예수의 십자가에 함께 정죄되고 있다 모욕을 당하신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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