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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대지경의 사역 (마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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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요단강 건너 유대지경
(마19: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에서 떠나 요단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A. 갈릴리를 떠나시는 예수님
예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계속 자라 온 갈릴리에서 그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그 지역의 여러 가지 상황에 익숙한 예수께서는 지체하지 않고 하나님의 복음을 이 동네 저 동네로 돌아다니면서 전파하셨습니다.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열정을 가지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노력하신 것입니다. 분열과 아픔으로 가득한 세상에 사랑과 소망을 주는 하늘나라의 힘찬 메시지를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찬 기적이 예수께서 가는 곳마다 넘쳐흘렀습니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예수께서 거하시는 집에서 마을에서 사랑의 기적은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시달리고 고통스러운 삶을 영위하는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원동력으로 예수님의 말씀은 작용하였습니다. 온 갈릴리가 ‘예수’ ‘예수’로 들끌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갈릴리에만 머무르지 아니하셨습니다. 그 사역의 범위를 넓혀 요단강 건너 유대 지역에까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기 위하여 갈릴리를 떠나셨습니다.
B. 유대 지역에서의 복음 전파
갈릴리보다는 더 많은 역경과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 유대였습니다. 벌써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들은 유대인들이 시기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더욱 의연한 자세로 유대를 향하여 외치셨습니다. 이처럼 복음 전파의 길은 험난하고 힘든 일입니다.
현대 사회처럼 황폐하고 메마른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길은 몹시도 어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복음 전파자의 길입니다. 갈릴리를 떠나 과감히 유대로 가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처럼 오늘날 우리도 과감히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여야 할 것입니다. 설혹 우리를 위협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고난이 기다린다고 할지라도 믿음의 후손인 우리들은 복음 전파의 길을 결연히 달려가야 합니다.

II. 좇는 큰 무리들
(마19:2) 큰 무리가 좇거늘
A. 예수를 좇는 이유
왜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를 좇았을까요 그들은 무엇을 기대했기에 예수를 좇았을까요
그건 로마의 식민지와 그릇된 종교제도에 시달린 사람들을 새롭게 하는 복음의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열변을 토하시는 그 말씀은 다른 어떤 지도자들의 말보다도 생명과 힘이 넘치고 뜨거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슴 속에 파고드는 그 말씀의 위력이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좇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B. 사람을 모으는 예수
예수님의 가르침과 교훈에는 독특한 면이 있었습니다. 다른 랍비들은 가만히 앉아서 일방적인 가르침을 주었으나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시면서 그들을 불러모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사람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서 사람을 모으는 적극적인 가르침이셨습니다. 오늘날처럼 갈등과 모순이 많고 복잡한 사회 속에서 그냥 기다리기만 하는 소극적인 복음 선교는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께서 하셨던 것처럼 이 거리 저 거리 찾아가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적극적인 교회가 될 때 그 곳에 강한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C. 아픔을 함께 하는 예수
예수님의 사역의 가장 큰 핵심은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생의 진리를 도덕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구체적인 생활 현장에서 겪는 고뇌와 아픔을 함께 겪는 살아 있는 그렇기 때문에 힘이 있는 말씀사역이었습니다.
이것은 실로 무리에게 큰 교훈을 시사합니다. 역사 속에 살아 있는 예수의 증인들인 우리들은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이웃의 고통과 아픔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때 비로소 사랑의 기적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III. 예수님의 치유사역
(마19:2) 예수께서 거기서 저희 병을 고치시더라
A. 아픔을 치유하는 예수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겪으시면서 그냥 방치하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자기의 것으로 삼으시고 직접 그것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육신이 병들어 고생하는 자들에게는 육체의 병을 없이해 주시고 마음이 병들어 좌절한 자들에게는 하늘나라의 소망으로 새 생명과 새 힘을 얻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치유를 통하여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 존재의 의미를 깨달았으며 참다운 삶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복음을 증거하는 증거공동체로서 그 교회가 존재하는 바로 그곳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올바르고 타당한 삶을 살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오늘의 사회는 교회의 적극적인 사랑과 하나님의 깊은 애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치유사역은 바로 오늘 우리 기독교인의 삶의 표본이며 교회의 예표인 것입니다.
B. 치유의 의미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치유는 단순히 아픈 곳의 상처를 순간적으로 멋게하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으로 성육신하시어 사람들의 삶 속에서 활동하시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풀어주신 치유는 아픈 곳을 일시적으로 치료하는 차원의 일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완전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새 삶을 살게 하는 근원적이며 존재적 차원의 치유였습니다.
그것은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만이 할 수 있는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일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이 이 사회 속에서 이처럼 귀한 예수님의 아들과 딸들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사회는 보다 근본적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보다 속히 도래하는 길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치유는 한시적이며 부분적인 치유가 아닌 ‘전인적인 치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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