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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분쟁싸움다툼 (고전 01:10-31)

첨부 1


지난 주에 우리는 고린도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살펴 보았다. 말씀이
충만했으며, 은사가 충만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했으나 바울은 고린도교회
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를 언급한 후 곧 바로 고린도 교회의 문제점으로 바로
들어간다. 왜냐하면 사실은 고린도 교회에 진정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기 때문
이다. ( 1:10 )

같은 말을 하고
분쟁이 없이
한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이 말씀 속에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어떻게 하나가 되야 할 것인가를 잘 보여주
고 있다.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교회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속함을 받
은 교회의 마땅한 모습이다.

이제 바울은 분쟁의 소식을 들은 그 근원을 밝혀 저들로 핑계치 못하도록 한
다.(1:11) 글로에는 고린도 교인중 한사람으로서 고린도 교인들이면 다 알만한 사
람이었으리라 싶다. 이로서 교인들이 핑계치 않고 분쟁의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내용은 각기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사도를 지나치게 추종하여 그 이름으로
자신의 입장을 새운 것이다. 이는 당시의 헬라 철학적 사고와 행태가 그리스도의
교회에 들어와 복음을 변질시키고, 세속화 시키는 모습으로 보인다. 저들은 당시의
철학자들의 파당지어 서로 공박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 왔을 것이다. 그러한 일들을
교회내에서 재현하므로서 자신들도 철학자들의 고상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찌 됐든지 이 분쟁의 문제는 단지 모양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요, 모든 교회
의 은혜스러워야 할 성례와 예배 그리고 행사애도 그대로 미쳤던 것을 볼 수 있다.
이로서 교회는 나뉘어 지고 하나님의 은혜는 사탄과 인간의 죄악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을 것이다. 실제로 이 분쟁의 여파는 모든 교회의 삶에 미쳤던 것이 고린도 서
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는 분쟁이라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추종자를
앞세워 그를 높이는 것같으나 사실은 자신의 드러나고 싶은 본성을 발산시키는 하나
의 수단으로 파당을 만든다는 사실이다. 이는 세상의 정치적 파당뿐 아니요, 선한
의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죄인의 본성이 만들어 낸 것이 파당이기에 하나
님께서는 파당을 짓는 것을 육체의 열매라고 하신 것이다.

교회에서 아무리 존경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만일 그 사람 이름으로 파당을 짓
는다면 이는 하나님과 그 사람까지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오늘날 교파간의 극심한 자존심 경쟁은 참으로 불행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존
경하는 아무개를 변호한다고 해서 자신이 의를 위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
나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야 할 자신을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에게 투영하여
자신도 그같이 위대한 존재라는 간접적 심리적 위로를 받으려 하는 자기를 드러내려
는 육적인 발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속해 있는 교
파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자랑한다면 그 사람은 육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이제 바울은 한마디로 그들의 복음에 합당치 못한 상태를 1:13 의 말로 일침을
가한다. 그 내용은 .......

어찌하여 그리스도께서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는냐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이 세가지 질문은 고린도 교인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복
음의 핵심을 다시한번 상기시킴으로서 고린도 교인들의 잘못된 신앙을 깨닫게 하려
는 바울의 강력한 메세지이다.

1. 지금 너희가 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는 것이라는 것이다. /
저들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제일로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
울의 고린도 교인들이 하고 있는 것은 주님의 몸을 찢어 나누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
을 때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이같이 그리스도를 너무 잘 섬기려는 시도는 결국 그
리스도를 찢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열심있는 사람은 잘 생각
하여 혹시라도 내가 그리스도의 몸을 찢고 있지 않는지 나로 인해 교회가 불화하지
않는지 자신을 언제나 돌아보아야 한다.

예) 종종 열심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교회가 나뉘이고 시끄러워 지며,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하는 사단의 올무가 놓이게 됨을 본다.

2. 두번째 바울은 바울이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혔느뇨 / 하므로서 교
회에서 예수님은 절대적인 분이지 상대적이 되서는 않된다는 것이다. 그런대 우리
들은 말로서는 그같이 인정을 하면서도 실재로는 그리스도 의 말씀보다 자신이 속해
있는 어떤 단체의 말을 중시하거나, 능력있어 보이는 어떤 사람의 말을 중요시 할
때가 있다. 특히 이단에 빠지는 이유 중 큰 이유는 바로 이러한 것이다. 그러나
바울도 아볼로도 게바 즉 베드로도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비로서 종이요 사도가
되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주님보다
더 의미있는 어떤 사람이 있어서는 않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3. 너희가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느뇨 / 천하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
는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하셨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어떤 단체나 교단도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 받는 그 이외의 것을 강조해선
않된다. 그런데 혹간 어떤 특정 교단에서 침례만을 주장하여 세례를 받은 사람을
다시 침례 받게 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아니면 어떤 인물을 내세워 그를 중
심으로 어떤 예식을 행해야 구원받는 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는 이단이다. 바울
은 위대한 사도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그나마 몇 사람 주
지 않는 것을 감사한다고 했다. 바울은 그리스보와 가이오 그리고 스데바나 집 사람
중 몇 사람에게만 세례를 주었다. 이는 세례를 경시함이 아니요, 세례가 잘못 사
용됨을 경계한 말이다.

그러므로 이 세가지 말씀에 비취어 볼때 교회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완전한 하나를 이루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이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는
다. ( 1:17 )

"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함이니라 ! "

세례라 함은 복음이 전파되어지고 복음안에서 삶으로 이어질 때 필요하고 유익
한 것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고린도 교인들 역시
복음을 믿고 그 안에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결코 파당을 짓거나 세례등의 어떤
예식을 자랑하거나 하는 것은 중요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사실
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분쟁은 아주 매력있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속에
숨어있는 사단의 독을 경계하는데 주의해야 할 것이다. 우리 하나님의 초남교회는
분쟁이 없이 온전히 하나되어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참된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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