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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오프라 윈프리, 아픔도 무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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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프리는 아픔이 있는 여인이다. 그녀는 1954년,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났다.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외할머니, 어머니, 아버지의 손에 전전하며 양육받게 되었다. 그렇게 자라면서 얼마나 상처가 많았겠는가? 그런 와중에 그녀는 세 살 때 처음으로 교회에서 성경을 배우고 암송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녀의 어린 시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준 영향력은 상당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이런 말씀의 힘이 그녀로 하여금 불우한 환경을 원망하기 보다는 더 밝은 면을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나는 사명을 세 가지로 정의 내린다.
첫째,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가진 것이 사명이다. 그래서 지식을 더 가지고 있든, 돈을 더 가지고 있든, 더 가진 부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쓰임 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말한다. 둘째, 부담감이 사명이다. 똑같은 현상과 사물을 보고 유독 어떤 사람은 부담감을 가진다. 어떤 사람은 장애인을 보고는 그냥 지나치지를 못한다. 또 어떤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필자 같은 사람은 cud년을 보면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이런 부담감이 사명이다. 셋째, 아픔이 사명이다. 남들이 당하지 못한 아픔을 당한 과거가 있는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이다. 나와 똑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을 도우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의 과거의 아픔을 또 다른 아픔을 가진 사람과 나누는 사명을 가진 사람이다. 그녀의 아픔을 가진 자의 친구이다. 모든 상처를 입은 사람들도 윈프리를 자기의 친구로 생각한다. 그리고 오프라 윈프리는 그들의 아픔에 동참한다. 상처를 입은 사람이 나오면 같이 울기도 하고, 같이 안아주기도 하고, 자신의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폭로하기도 한다.
한번은 스트레스로 인하여 폭식하는 여인이 출연했다. 그녀의 아픔을 함께 공감하던 윈프리가 이렇게 말했다. '사실 나도 과거에 그런 폭식의 경험이 있어요. 핫도그를 한 박스나 먹은 적도 있어요'(눈물과 함께 폭소가 터졌다).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한 여인에게 윈프리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과거에 코카인을 했던 적이 있어요.' 여러 남자에게 윤간을 당한 충격에 사로잡힌 여인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렸을 때, 강간당했던 경험이 있어요.' 그녀에게는 비밀스러운 숨김이 없다. 그래서 그녀를 바라보던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감화시키는 능력을 '자기 폭로형 친밀감'(self-revealing intimacier)이라고 말한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 필적할 만한 쇼가 '필 도나휴 쇼'(Phil Donahue show)이다. 보통 윈프리 쇼와 도나휴 쇼를 이렇게 비교한다. 도나휴 쇼가 '리포트 토크'(report talk)라면 윈프리 쇼는 '래포 토크'(rapport talk)라는 것이다. 리포트 토크가 정보만 주고받는 것이라면, 래포 토크는 전체를 하나의 가족 같은 친밀감으로 묶는 대화를 만든다. 윈프리는 아픔을 공유하며, 진행자와 방청객, 시청자를 하나로 묶는 래포 토크의 대가이다.
나는 설교에도 리포트 토크와 래포 토크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설교는 아무 감정의 전달 없이 정보만이 흐르는 경우가 있다. 성도의 아픔과 전혀 공감하지 않는 제 3자의 입장에서 전하는 설교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설교는 성도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대부분 부흥하는 교회의 설교를 들어보면, 반드시 이런 래포 토크의 요소가 있다. 설교자가 성도의 아픔을 공유한다. 같이 울어준다. 같이 웃어준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라는 의식을 갖게 만든다. 윈프리의 래포 토크의 능력은 반드시 배워야 할 설교자의 무기이다.
가장 사적인 내면을 보여주라
윈프리는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비애속에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그런 외로움이 그녀에게 축복으로 다가간 점이 있다. 그녀는 다행스럽게도 비애를 독서로 달랬다. 그녀는 심지어 밥 먹을 때에도 책을 읽는 습관이 있었다. 7학년에 재학할 때(한국의 중1 정도), 밥을 먹으면서 책을 읽는 윈프리의 모습에 기특해게 본 담임 선생님이 그녀를 추천하여 장학금을 받고 더 좋은 학교로 진학할 수 있게 해주었다. 윈프리 쇼를 보면,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번득이는 예지와 재치, 수많은 교양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모두 독서의 결과이다.
나는 이제까지 어떤 분야에서 대성한 사람치고 독서의 사람이 아닌 것을 본 적이 없다. 특별히 목회자 중에 독서하지 않는 목회자치고, 대성하는 것을 본 적은 전혀 없다. 우리 교회 안에서 신학생들이 꽤나 된다. 그중에서 책읽기를 싫어하는 학생들에게는 노골적으로 목사 되는 것을 그만두라고 요구한다. 책읽기를 싫어하는 목사는 교회의 재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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