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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한 부부 (고전 1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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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젊은 화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기 위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얼마를 가다가 밭에서 추수하는 농부들을 만나게 되였고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보니까 어딘가 부족한 것 같이 생각이 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신랑신부가 결혼식 하는 장면이 아름다워서 그림을 그렸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모습 같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그 화가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개선 장군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그 그림도 온전치 못하였습니다.
그는 결국에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사랑하는 아내가 반갑게 뛰어나와서 맞이하고 어린 자녀들이 그를 기뻐하며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준비해 놓고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식사를 하게 되였습니다. 이 화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행복이 넘치는 가정의 모습이구나!” 생각하고 행복한 가정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아름다운 그림이 찢어지고 있습니다. 즉 가정이 파괴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가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랑이 넘치고 행복이 가득한 가정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반대인 사랑이 메마르고 사랑이 파괴된 가정입니다.

어느 행복한 가정에 갑자기 불이 났습니다. 온 가족은 몸만 간신히 빠져나와서 생명은 구할 수 있었지만 모든 재산은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 타버린 집을 바라보고 있던 남편은 한 손에 아내의 손을 잡고 또 한 손에는 귀여운 자녀의 손을 잡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집과 재산은 모두 타버렸지만 우리의 가정은 파괴되지 않았고 우리의 사랑은 타버리지 않았습니다.” 라고 기도하고 다시 보금자리를 준비하여 살았다고 합니다. 아무리 가정에 가난하고 재난이 닥친다고 하여도 사랑이 있다면 그 가정은 행복을 이어갈 수 있고 고난을 이겨나갈 수 있다고 하지만 돈이 많고 많은 재물을 가졌다고 하여도 가정에 사랑이 없다면 가정은 파괴되고 말 것이며 사랑이 없는 가정에서 사는 사람들은 참으로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93년도 우리나라에서 이혼한 가정이 5만 천가정이라고 합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9쌍이 결혼하면 반드시 1쌍이 이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3쌍에 1쌍이라고 한다지만 우리 나라도 그들을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93년도 한 해동안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가 4천 4백명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버려진 아이 중에서 선천적으로 불구자도 있고 미혼모가 아이를 낳아서 버린 것도 있지만 많은 숫자의 아이들이 부모가 이혼을 하는 바람에 서로 키우지 않으려고 버리게되고 이혼을 한 사람이 재혼을 하려고 하니 아이가 방해가 되니 버리게 되고. 재혼을 하고 보니까 새 남편이 아이를 싫어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아이들이 고아원에 길거리에 버려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혼 뒤에 혼자 살 자신이 없어서 이혼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고 저주하며 사는 불행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20세기에 사는 오늘날 많은 가정이 경제적으로는 풍요롭게 살고 있지만 그 반대로는 사랑은 식어져서 가정이 찢어지고 파괴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참으로 가슴이 아픈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을 파괴하고 부부간에 이혼을 쉽게 하는 이유가 오늘 우리들이 경제적으로 풍요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부부가 싸움을 했어도 방이 하나라 한방에서 자야했습니다. 그러다가 문제가 풀리고 해결되기도 하였는데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넓은 집에서 사니까 부부 싸움을 하면 서로 각방을 쓰게 됩니다. 델레비젼도 두개씩 되니까 각방에서 따로 따로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을 자고 아침에 출근하여 식당에서 밥을 사먹게되고 이런 일이 계속되니까 부부 싸움이 오래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간에 문제가 있어도 방을 따로 써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하나님을 믿는 가정은 행복해야 합니다. 가정에 사랑이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가정은 화목해야 하고 자녀들이 밝고 바르게 자라나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가정과 부부간의 행복을 위하여 말씀을 나누면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사랑은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참된 사랑은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여 사랑은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근본은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이 아가페의 사랑이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주신 사랑으로 아무런 대가 없기 자기의 목숨까지 주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다 주신 사랑이고 희생의 사랑입니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으시고 자신을 희생하신 사랑이 바로 아가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가정에는 아가페의 사랑이 넘쳐 나와야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는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바로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어머니들의 자녀사랑은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무조건적인 희생의 사랑인 것입니다.
인도의 성자 선다씽이 전도여행을 하고 있는데 산불이 나서 산이 활활 타고 있는데 사람들은 불을 끄려고 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구경하고 있는 것이 였습니다. 그래서 가보았더니 나무 위에 새집이 있는데 그 새집에는 부화된지 얼마 안돼서 나르지 못하는 새끼들이 있는 것이 였습니다. 불은 그 나무 가까이 타오고 있는데 어미 새는 어쩔 줄을 모르고 자기 둥지 위를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불길이 나무를 덮으면 새는 도망가리라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제 불길이 그 나무에도 붙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어미 새는 도망가지 않고 새끼가 있는 둥지위로 날아가서 새끼들을 가슴에 품고 함께 불에 타 죽더라는 것입니다. 썬다씽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였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바로 이런 사랑입니다. 자녀들을 위하여 젊음과 인생을 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생명까지 주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가정에는 이러한 희생적인 사랑이 존재야 하는 것이며, 부부간에도 이러한 희생적인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희생의 사랑이 존재하는 가정은 행복이 늘 넘치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이기적인 사랑을 버려야 행복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결혼 초기에는 자신의 이기심을 버리는 상대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서 자신만 사랑하고 자신만 내세우는 이기심이 강하게 되므로 가정에 불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혼을 하는 사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이혼 사유 중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바로 이기심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위하여 서로 양보하지 않고 희생하지 않기 때문에 부부가 이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가정에 이기심만 가득하지 않나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기심이 가득한 가정은 사랑이 사라진 가정이고 그런 가정은 위험한 가정입니다.

또한 우리가정이 희생적인 사랑은 없고 의무 심만 남아 있는 가정이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의무 심만으로 가정생활을 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남편은 직장에 가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 의무이기 때문에 직장에 나가고 아내는 밥하고 빨래하고 집안 청소하는 것이 의무니까 그 일만 한다면 그 가정도 깊이 병든 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가정은 희생의 사랑이 가득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가족을 위하여 나를 희생하는 것은 가장 기초적이고 당연한 사랑의 행위입니다. 성경에서는 보이는 형제를 미워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잠12:16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하셨는데 저는 미련하게도 화을 잘내는 편입니다. 그런데 성을 쉽게 내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실패하게 되고 남에게 상처를 입히기 쉽습니다. 성을 잘 내는 사람은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없으며 인생을 고독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하셨습니다. 여기서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라는 말은 “악한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즉 과거에 악한 일들을 기억하지 않고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하여 준다는 말입니다.

상대방의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고 사는 것은 “감정의 암”이라고 합니다. 암이라는 것은 딱딱하게 굳어버린 살덩어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감정의 암이란 과거의 원한을 풀지 않는 딱딱한 감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감정의 암병에 걸린 사람은 10년 전, 5년 전에 남편이나 아내가 범한 죄를 늘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사람이란 잘못이 있고 실수가 있습니다.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한 사람의 과거의 잘못은 다 잊어버리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이 죄를 회개할 때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와 같이 내외 간에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혔다고 하여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고 덮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잊어요 내가 죽어서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잊지 못하겠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어리석은 사람이고 불행을 자기 스스로 만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망각이라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잊어버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너희도 서로 용서하며 살라 하셨습니다. 덮어주고 용서하며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가정임을 믿으시기고 상대방의 어떤 허물과 죄도 용서하고 덮어주는 가정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구약성경의 호세아를 보면 호세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고멜을 아내로 삼고 깊이 사랑하여 자녀를 둘이나 두었습니다. 그런데 고멜은 바람기가 있는 여자로서 남편의 사랑을 버리고 새로운 남자 곧 정부와 함께 도망을 쳤습니다. 나중에는 그 정부에게도 버림을 받고 길거리에서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창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때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마차에 보리쌀과 은을 싣고 가서 값을 주고 고멜을 다시 데리고 와서 모든 것을 다 용서하고 잊어버리고 옛날과 같이 사랑을 해주게 됩니다. 고멜은 바로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이고 또한 지금 우리들 자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멜과 같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허물을 덮어주고 감싸주는 사랑이 가정에 가득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느니라 하셨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참고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며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옛날의 우리 나라 어른들은 오래 참는 인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들의 모습은 너무나 조급하고 쉬게 포기하고 결단을 합니다.
최요섭 목사의 아내와 남편이라는 글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내의 인내는 남편을 살리고, 남편의 인내는 아내를 명예롭게 한다. 참는 것은 굴욕이 아니라 여유를 갖는 것이다. 시간은 사랑의 마술사다. 지금의 증오가 두 시간 뒤에는 애정이 될 수 있다. 악마는 언제나 성급함을 재촉한다.
부부 생활이란 긴 대화이다. 이 대화를 며칠 사이에 끝내려 하지 말라. 상쾌한 대화도 불쾌한 대화도 모두가 하나의 새끼줄로 엮어지는 긴 대화이다. 아내를 대적하거나 남편을 대하는 인간관계는 하나도 실험적인 것이 없다. 연습은 한시간도 없다. 하루 24시간 몽땅 본무대이다.
실패도 성공도 본무대에서 진행된다. 가정은 실험실이 될 수 없다. 결혼 생활은 견습기간이 없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쉽게 포기해서는 안돼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믿고 신뢰하던 사람이 실수를 하고 죄를 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이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교육에도 오래 참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작은 잘못에도 화를 내고 꾸중을 한다면 그 아이는 소망을 상실하고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가정에서 보모와 자녀들이 만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아빠와 아이들이 만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기만 합니다. 미국에서 통계를 냈는데 일주일 동안 아빠가 자녀를 만나는 시간이 7분 30초밖에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아버지와 아이가 만나도 아이의 잘못된 일만 꾸짖다 말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빠를 바빠라고 부르고 또한 나빠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부부간의 관계에서도 인내해야 합니다. 자녀들의 교육에도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하고 기다리면 승리하게 됩니다. 저도 목회를 하면서 많이 깨달은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어도 참고 참으면 나중에는 그 일이 잘 해결되는 것이 였습니다. 제가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참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을 수 없이 체험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그러한 일을 수 없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참고 있을 그 당시에는 속에서 열 불이 나겠지만 그래도 참으면 그 사람이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가정에 행복이 깨지고 가정이 파괴되면 여러 사람들의 인생이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셨습니다. 이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는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불행한 가정은 생육하고 번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사랑이 가득하고 행복이 가득한 가정들이 되시기를 축원하면서 부부의 십계명을 낭독해 보려고 합니다.
부부 십계명
제1은 두 사람이 동시에 화를 내지 말지니라.(해설:공을 던지는 사람이 있으면 받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두사람이 동시에 던지면 받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화를 내야할 경우라면 교대로 화를 내라는 말입니다.)

제2는 집에 불이 났을 때 외에는 고함을 지르지 말지니라.(음성은 둘이 모일 때 점점 커지는 법이므로 한쪽에서 높은 소프라노가 나오면 한 쪽에서는 낮은 베이스 음으로 화음을 맞추어야 하모니를 이룰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제3은 눈이 있어도 흠을 보지 말며 실수가 있어도 말하지 말지니라.(상대방의 장점만 보고 결혼한 사람보다 상대방도 나처럼 단점도 많다는 것을 알고 결혼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상대방의 실수도 사랑으로 보면 매력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제4는 아내나 남편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지니라.(아내를 어머니와 비교한다든지. 남편을 오빠나 아버지와 비교한다는 것은 아직 어른이 되지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결혼 전의 이성 친구와 비교하는 것은 유령을 끌어들이는 푸닥거리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제5는 아픈 곳을 긁지 말지니라. (기왕 긁어 주려면 가려운 곳을 긁어 주어야 하며, 상처는 싸매 주는 것이지 바악 바악 긁는 것이 아니다. 함께 사는 것은 가려운 등을 긁어주는 것이다.)

제6은 분을 품고 침상에 들어가지 말지니라.(엡4:26 에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라고 하셨습니다.)

제7은 처음 사랑을 잊지 말지니라.(연애하던 시절 달콤한 일들을 가끔씩 회상하는 것이 애정을 지속하는 묘약입니다.)

제8은 결코 단념하지 말니지라.(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우리 나라 속담을 기억해야 합니다. 복잡한 것 같아도 쉽게 풀어지는 것이 부부 사이이며, 내가 먼저 풀려고 하면 뜻밖에 빨리 실마리가 풀리는 것이 부부 사이입니다.)

제9는 숨기지 말지니라.(부부 사이에 숨기는 것이 얼마나 적고 많으냐에 따라서 행복의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숨기는 것도 버릇에 되고, 작은 것을 숨겼다가 큰 문제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제10은 본래의 중매자를 따돌리지 말지니라.(남자와 여자를 짝지어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우리 가정은 중매인이시며 주인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따돌리면 가정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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