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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이 없다면 (고전 1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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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어떤 종교도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 증거하고, 또한 예수님을 믿고 부활을 믿는 자들은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믿고 증거 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신학자 칼바르트는 “기독교의 부활의 복음의 본질이”라고 하였고, 볼트만은 “기독교는 부활에서부터 시작된다”고하셨습니다.

우리들이 가진 부활의 믿음은 우리들로 하여금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승리하게 합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는 1937년 미국으로 건너가서 유니온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자신의 조국인 독일이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독재 정치를 하므로 히틀러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 잡아야 하겠다 생각하고 1939년에 독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술취한 운전사가 자동차를 몰면서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고 있는데 그냥 기도만 하고 있을 수 없다.” 라고 말하고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탄로가 나는 바람에 잡혀서 사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1945년 4월 9일 본회퍼는 히틀러에 의하여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때 그는 같은 감방에 갇혀 있던 사람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설교하기를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살아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흑암가운데 산다고 할 지라도 우리에게는 광명의 세계, 소망의 세계, 부활의 주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하고 찬송을 부르며 사형장으로 걸어가다가 뒤돌아 서서 감옥에 있는 형제들에게 말하기를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새 생명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고 순교를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부활의 믿음으로 죽음도 이기고 승리한 위대한 믿음의 소유자 였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봉독한 고전 15장은 1절에서부터 끝 절까지 바울 사도가 부활에 대해서 뜨겁게 증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 말씀을 부활 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가장 중요한 설교 내용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들의 구세주이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다시 부활하셨으면 다시 이 땅에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 라는 내용이 복음선포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들은 늘 이 말씀을 힘차게 증거하며 살았습니다. 그 중에 초대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흔들리지 않고 소망을 가지게 한 것은 부활의 신앙과 재림의 신앙이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우리들의 눈으로 똑똑히 본 것처럼 우리도 부활할 것이요 주님의 재림 때 우리는 주님처럼 부활의 몸으로 왕노릇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12절을 보면 초대교회에서도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유대교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거나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정하지만 죽었던 성도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의 부활을 증거 하면서 우리들도 주님처럼 다시 살아날 것을 다시 한번 확고하게 증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는 부활이 없다면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만일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였으리라 하셨습니다.

유대인들 중에서 사두개인들은 부활의 교리를 부인하며 믿지 않았고, 사람이 죽으면 영과 육이 함께 멸망되므로 상급이 없다고 하였으며, 죄를 범한 자들의 형벌도 부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천사와 성령도 부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사두개파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은 성경에 나타난 확실한 증거이고 역사적으로 증명되고 있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마지막까지 주님의 죽음을 지켜 본 사람들은 예수님을 삼년간 따라 다녔던 건장한 12제자가 아니라 연약한 여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 중에서 부자이면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아리마대 요셉이 자신의 가족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지내어 예수님은 무덤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안식일이 지나고 주일아침 새벽 미명에 예수님의 시체가 더 부패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향유를 바르기 위하여 무덤을 찾아간 사람들도 다름이 아닌 이 연약한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도 있었고 또한 그 무덤의 입구를 막고 있는 돌을 누구 굴려서 열어 줄 것인가 하는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무덤을 찾아갔다가 놀랄만한 일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무덤을 막고 있는 큰 돌은 이미 열려 있고, 예수님의 시체는 온데 간데 없이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여인들은 생각하기를 예수님의 시체를 누가 훔쳐갔을 것이라는 생각에 울기 시작하였고 다시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이 사실을 알렸으며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달려와 시체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아 그들은 다시 돌아 가버렸고 마리아만 남아서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에 대하여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장면을 요20:15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하셨습니다.

 그 후에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모습을 보이셨고, 낙심하고 갈릴리로 돌아가서 고기잡이를 하던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령을 기다리고 내 양을 먹이라고 당부를 하셨습니다. 또한 일시에 500명에게도 부활하신 모습을 보이셨다고 고전15:6에 말씀하셨는데 주님의 부활을 눈으로 본 사람들 중에 태반은 살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맨 나중에는 만삭되지 못한 바울에게도 보이셨다고 바울은 본문 8절에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카르타고 출신의 터툴리아누스는 그의 호교론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 총독 빌리도는 이 부활의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에도 하나도 남김 없이 로마 황제에게 보고를 하였지만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는 이 일을 원로원에 알리면서 부활의 사실을 부인하였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무덤의 문을 여시고 부활하신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우리는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가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확실한 증거로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란 사도 바울과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말하는 것으로 베드로나 사도요한 등 12제자와 수많은 전도자들을 말하고 있는데 부활이 없다면 그들이 전하는 복음이 헛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15절에서는 부활이 없다면 지금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본 사람들이 모두가 거짓말쟁이인 거짓 증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약성서 260장 가운데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말씀은 1백번 이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왜 베드로 사도가 로마에서 도망을 할 수 있는데 스스로 잡혀서 십자가에 거구로 매달려 죽었겠습니까 그것은 부활하리라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매를 맞고 고통을 당하면서 복음을 전했겠습니까 예수님처럼 부활하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거짓이라면 그들이 자신의 아까운 목숨까지 버리면서 복음을 전했겠습니까 그러므로 지금까지 복음을 전한 수많은 사람들이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주님의 부활은 확실히 있었던 것이며 우리들의 부활도 확실한 것입니다.

 신약성경 27권의 핵심은 주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씩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을 갈릴리 다시 바다에서 만났습니다. 베드로는 생각하기를 “나는 주님을 배신한 배신자다”라고 생각하고 나는 주님을 버렸으니 주님께서도 나를 버리셨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갈릴리 바다에서 다시 고기를 잡는 어부로 돌아갔습니다. 어부생활을 3년간 쉬었던 베드로는 이제 고기나 열심히 잡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대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양을 먹이라” 라는 말씀을 세번씩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다시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고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권능을 얻은 베드로는 거리로 나가서 복음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베드로가 외친 복음의 핵심은 주님의 부활입니다. 행2:23-24을 보면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첫 번째로 외친 말씀은 주님의 부활입니다. “너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밖아 죽였지만 주님은 사망에 머물러 있지 않고 다시 살아났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신앙고백 이였고 이 말씀을 제자들은 거리에 나가서 외친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제자들이나 성도들이 외친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셨고 다시 재림하실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었고 이 말씀을 전하다가 순교를 당했으며, 예수님의 제자들이 순교를 당하면 그 제자들이 또다시 이 복음을 전하고 또 전하여 지금가지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은 베드로가 우리에게 전한 것처럼 확실하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너희의 믿음도 헛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지금 우리들이 믿는 믿음도 헛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어렵고 힘들게 신앙생활 하는 것도 헛것이며, 제가 고생 고생을 하면서 목회를 하는 것도 헛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인간은 소망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며 소망을 잃어버린 사람은 이미 죽어있는 상태나 마찬가지입니다. 키엘케고르는 말하기를 “소망이 없는 사람은 인생의 감방에 갇혀서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와 같다” 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사람은 소망을 가지고 힘있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전 13장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어야 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모든 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호화 여객선이 있습니다. 이 배는 영화관도 있고 좋은 식당도 있으며 수영장도 있습니다. 이 배에서는 무엇이든지 다할 수 있고 육지에서보다 더 호화스럽고 재미있게 지낼 수 있는 모든 시설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배는 육지에 도착할 항구가 없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배는 바다만 떠돌아다니고 항구에 들어갈 수 없는 배라고 한다면 육지에 돌아갈 소망이 없기 때문에 이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한달이나 두달이 지나면 모두 보트를 훔쳐 타고서라도 육지로 도망을 할 것입니다.

배는 육지에 도착한다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고 육지에 다으면 배에서 내려 와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타고 있는 인생의 배에 소망이 없다면 우리가 도착할 육지가 없다면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소망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소망이 될 수가 없습니다. 고전15:57-58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죄악과 죽음과 세상을 이기는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부활의 믿음으로 더욱 주를 위하여 일하는 자들이 되야 한다는 바울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도 다시 부활하리라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이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소망이 없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서 성공적으로 살았다고 하더라고 그 사람은 실패한 사람입니다.

 로마의 바티칸에 가면 미켈란 젤로가 대리석으로 조각한 피에타 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 모습이 정말로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처럼 조각한 훌륭한 작품입니다. 조각품의 모습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그 어머니 마리아가 가슴에 앉고 슬픈 모습으로 내려다보는 장면을 조각한 것입니다.

이 조각품대로 예수님의 생애가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는 것으로 끝났다고 한다면 기독교는 소망이 없는 슬픈 종교이며 죽음의 종교입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모두 지시고 죽으셨지만 죽음을 이기시고 빈 무덤을 남기신 채 부활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만 생각하셔서는 안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 주일 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주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죽음과 환난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모든 삶의 고통에서 치유 받고 승리해야하며 전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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