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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 거인 (삼상 17: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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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왕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문제의 이름은 골리앗이었습니다. 그는 2m 90cm가 넘는 거인이었습니다. 50kg이 넘는 창을 휘두르는 갑옷을 입은 거인이었습니다. 싸움을 하지 못해서 근질근질 거릴 정도의 포악한 장군이었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대항하러 나오기만 하면 단장에 찔러 죽일 기세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향해서 싸움을 걸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싸움은 각 나라에서 가장 유능한 장군을 내보내어 싸움을 해서 이기는 쪽이 패배한 쪽의 백성들을 노예로 잡아가는 그저 한판에 결단이 나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감히 나와서 싸울 대항자가 없었습니다. 하긴 적장이 워낙 거인이다 보니까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고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울 왕의 문제였고 온 이스라엘의 문제였습니다. 골리앗은 매일같이 벌써 한 달이 넘도록 나와서 싸움을 걸고 골짜기 너머로 큰 소리를 지르며 싸움을 붙여 왔지마는 이스라엘에서는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두려워 겁에 질려 떨고만 있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흩어지는 이스라엘 군대의 모습을 보며 골리앗과 블레셋 군대는 더 신이 났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이 믿는 여호와까지 모욕하며 조롱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대로 사울 왕은 죽을 지경입니다. 마지막까지 아무도 나서지 못할 경우에는 자기 스스로 나갈 수밖에 없게 되었고, 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죽어도 나가서 싸워야 되는 긴박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가서 싸운다는 것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나와서 싸워 이기기만 하면 나라의 많은 재물을 상금으로 주겠다고 하였고, 뿐만 아니라 자기의 딸을 내어 주어서 사위로 삼겠다고 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문의 가족 모두는 나라의 모든 의무에서부터 자유함을 받는 특혜를 준다고 까지 약속을 했습니다. 그만큼 사울 왕의 상황은 긴박했습니다.
그런데도 나서는 자가 하나도 없던 중에 촌에서 올라온 한 소년이 나섰습니다. 그의 이름이 다윗입니다. 그는 군인 출신도 아니고 그저 들에서 양을 치던 소년 목동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전쟁터에 나가 있는 형들에게 갖다 줄 볶은 곡식과 떡덩어리를 전해 주고 오라고 심부름을 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위에 상관으로 있는 천부장에게 바칠 치스 덩어리를 가지고서 심부름을 나온 것입니다.
이 자리에 나온 다윗은 사울과 함께 모든 사람이 보고 있는 골리앗 거인을 바라보았습니다. 온 백성이 듣고 있는 골리앗의 항오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고 들은 것은 달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골리앗을 볼때에 큰 창의 무리요, 문제라고 보았지마는 다윗이 골리앗을 볼 때에는 하나의 새로운 도전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위기에 놓여 있고 절망할 수밖에 없다고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지마는 다윗은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의 기회라고 보게 되었습니다.
상상을 해보세요. 한 소년에 불과한 목동 다윗이 대왕 사울을 찾아가서 하는 얘기가 “사울 왕이여 낙담하지 마십시오. 내가 나가서 이 문제를 해결해 놓겠습니다.”우리가 예상하는 대로 사울 왕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너 같은 녀석이 어떻게 나가서 저 거인 골리앗과 싸우겠느냐.” 당연하죠. 누가 봐도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다윗은 할 수 있었고 해 냈습니다.
골리앗은 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윗도 거인이었습니다. 골리앗은 외적인 면에 있어서, 전통적인 의미에서 거인이었습니다. 그의 체구와 그의 무게가 그가 거인인 것을 나타내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새로운 차원에서 거인이었습니다. 그는 지적으로, 영적으로 거인이었습니다.
무엇이 다윗을 그러한 거인으로 만들었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의 삶에도 골리앗과 같이 2m 90cm가 훨씬 넘는 엄청난 문제가, 위협적인 문제가 우리 앞에 시시때때로 놓여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극복하지 아니하고 다시 앞으로 전진해 나갈 수 없습니다. 내 삶의 큰 문제와 실패가 생기는 경우가 우리에게도 있기 대문에 도대체 다윗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는가, 무엇이 다윗으로 하여금 거인이 되게 하였는가 하는 것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게 됩니다.
우리 자신이 원해서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여러분과 제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다윗과 같이 거인으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승리하며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과연 거인 다윗의 모습 무엇이 그를 거인되게 하였는지 살펴보게 되는 것입니다.
첫번째, 그에게는 창조적인 사고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창의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창조적인 방법으로 문제가 되는 골리앗에게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해 가게 되었습니다. 누가 봐도 그는 칼과 창을 사용할 때에는 누구도 당할 수 없는 명장이었습니다. 거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그걸 볼 때에 골리앗과 싸워서 이길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미리 겁을 먹고 절망하고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큰 키에 긴 칼을 휘두르기 시작하면 누가 감히 접근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을 바라보면서 근처에 가까이 갈 필요조차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칼과 창을 들고 나가서 싸워야 된다고 했을 때에 다윗은 새로운 각도에서 그 문제, 골리앗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는 너무 크기 때문에 넘어뜨리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때에 다윗은 그를 바라보면서 너무 크기 때문에 빗나갈 리 없다고 생각해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는 외부의 문제이기 이전에 내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내가 어떻게 그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 보다 중요합니다.
세 사람이 여행을 했습니다. 미국에 가시면 그랜드캐니언이라는 곳이 있는데 아마 다녀오신 분이 있을 거예요. 저는 21년 동안 미국에 살았지만 아직 그랜드캐니언에 가 보질 못했습니다. 사진만 보았을 뿐인데 다녀온 사람마다 하는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웅장한 곳이 그랜드캐니언이다.”라고 그럽니다. 끊임없이 길고 이상하게 생긴 계곡들을 바라보면서 누구나 다 감탄을 합니다.
그 곳을 세사람이 여행을 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은 미술가입니다. 또 한 사람은 신학자입니다. 또 한 사람은 소를 몰고 다니는 카우보이였습니다.
첫 번째 미술가가 이 그랜드캐니언을 쳐다보고 하는 말이 “야! 이곳은 웅장한 하나의 그림이다. 이것을 내 화폭에 옮겨 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감탄했습니다. 두 번째 신학자가 보고서는 “놀라운 하나님의 솜씨다. 정말 하나님의 솜씨는 오묘하다.”라고 찬양했습니다.
세 번째 카우보이가 그것을 바라보고 하는 얘기가 “야! 여기서 소를 잃어버리면 찾을 수가 없겠구나.”라고 했습니다.
내 마음에 어떤 생각을 하고 바라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은 골리앗을 문젯거리라고 생각했지만 다윗은 골리앗을 바라보면서 이것을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어떻게 저를 접근하고 무찌를 수 있겠느냐 생각했지만 다윗은 근처에 가지 않고도 그를 넘어뜨릴 수 있는 방법을 보았습니다.
교회를 섬길 때에도 그렇습니다. 이민 교회를 보면 어려운 문제들이 많아요. 이미 사회 자체가 어렵죠, 인종이 다르죠. 문화가 다르죠. 또 언어가 다릅니다. 이것저것을 보면 정말 좌절하기가 쉽습니다. 또 교회안으로 들어가 보면 한국에서 다같이 이민을 왔지마는 침례 교인도 있었고, 감리교인도 와 있었고, 순복음 교인도 와있고 장로 교인도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배경이 다 다릅니다. 이민 온 해수도 다르니까 미국에 대한 이해도 틀립니다. 그들은 1세와 2세 사이에 간격이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다양성을 바라보면서 좀 틀리다는 것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너무 많다. 그래서 항상 부정적으로 생각을 해서 이렇게 달라서야 어떻게 일을 하겠느냐 문제가 심각하다 얘기합니다.
그러나 이중의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에게 배울 것이 많이 있습니다. 다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보면 보다 폭넓은 계획이 나옵니다.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도전을 받게 됨으로써 성숙의 계기가 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일을 다양한 일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긍정적인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이 참 거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이 바라보지 못하는 창조적인 사고력을 가지고 골리앗에게 접근해 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다윗이 참 거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는 먼저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결국 다윗에게 허락을 했습니다. 정 그렇다면 나가서 한 번 싸워봐라. 싸울 때에 내 투구와 내 갑옷을 입고 나가서 싸워라. 그래야 적어도 자기 방어가 되지 않겠느냐
다윗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갑옷과 투구를 써 봤습니다. 뻔하죠. 다윗은 어린 소년입니다. 사울 왕은 대왕입니다. 그러니 갑옷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도대체 움직일 수다 없습니다. 다윗이 거절하고 다 벗어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있는 그대로, 자기가 아는 최선의 방법으로, 자기가 경험한 최고의 것으로 나가서 싸우기로 작정했습니다.
칼과 창이 아니라 물 맷돌을 가지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자기가 아는 최고의 방법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능력을 가지고 나가서 싸웠던 것입니다.
내가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것을 개발하지 못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사용하지 못하고, 남을 따라가느라고 남의 인생을 살고. 남이 하는 식으로 하다가 자기의 개성을 살리지 못하고,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실패를 거듭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도 박찬호 선수를 잘 아실겁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도 박찬호 선수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습니다. 더욱이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그 선수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박찬호 선수가 미국 사회에서도 아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L.A. 타임즈는 일간 신문에서 다시 긍정적으로 한국 사람의 이미지를 부각시켜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박찬호 선수에게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가 이제 미국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적응을 하느냐가 문제였습니다. 많은 사람과 같이 그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 거예요. ‘나도 이제는 미국 선수들같이 행동을 해야 되겠다. 풍선껌을 질겅질겅 씹고, 또 심판을 보게 되면 슬쩍 눈을 흘겨 가면서.’
이렇게 적응하기 위해서 미국 선수들과 되려고 했다면 아마 그는 오히려 추한 모습으로 나타났을지 모릅니다. 동양인이 갑자기 와서 익숙하지 않은 미국 선수들의 행동을 본따려고 했다면 얼마나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제가 만나 보진 않았지만 주체 의식이 강한 것 같습니다. 자기가 가장 잘아는 방법으로, 지금까지 익숙해 왔던 그 모습 그대로 적응하기 사작했습니다. 들어가면 먼저 가볍게 주심을 향해서 목례를 합니다. 또 피칭을 하다가 공을 새것으로 바꾸어 주면 그것을 받아 가지고 예의를 표합니다. L.A. 타임스에서 인터뷰한 것을 보니까 심판이 그 게임에 나오기 전에 여러 가지 개인적으로 상당히 불쾌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기분이 나쁜 상태로 나왔는데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박찬호 선수가 목례를 하니까 인사 받고서 기분이 풀렸대요.
자기가 가장 잘 아는 방법, 자기가 지금까지 체험으로 배운 것 그대로, 자기 것을 가지고 적응하기 시작하니까 오히려 그것이 존경을 받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우리 한국 사람의 이미지가 많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보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애국한다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최선의 것을 택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애국이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리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가지고 최선의 방법으로 노력하는 사람을 축복해 주십니다.
여기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은 사용하시는데 다윗에게 큰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고, 큰 체구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다윗의 마음속에는 나아지려고 하는 순수한 마음이 있었고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그 체험과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것을 가지고 나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위대한 도구로 사용해 주신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바라보지 마십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찾아야 합니다. 내게 없는 것 때문에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떨지 맙시다. 내게 있는 것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능력으로 사용해 주십니다.
세 번째, 다윗이 참 거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도 확신이 서 있는 사람을 인정하고 일을 맡기지 않습니까 두려워서 주저하고, 늘 부정적이고 염려 근심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일을 잘 맡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확신 있고 담대한 사람은 믿고 일을 맡깁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윗과 골리앗을 바라보면서 주저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있을 때에 다윗은 주저하지 않고 담대하게 나아가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골리앗을 두려워할 때에 다윗은 이미 나아가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에게는 확신이 있었습니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골리앗도 확신을 가지고 다닙니다. 얼마나 자신이 있었느냐 하면 “막대기를 가지고 나오다니 너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의 밥이 되도록 만들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지혜를 믿었고, 자기의 힘을 믿었고, 자기의 경험과 자기의 체구를 보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다윗이 가지고 있는 확신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도 나아가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 하는 싸움의 준비까지도 이미 세워 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 확신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다윗의 확신의 근거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 여호와에게 있습니다.
아마 여기 기록은 안되었지만 다윗이 이 상황 중에서 가장 이해 하기 힘들었던 점은 골리앗을 어떻게 무찌를 것인가, 내가 어떻게 막아서 싸울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었고 어떻게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이 백성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골리앗 앞에서 두려워하고 떨고 있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담대하게 나아가서 외쳤습니다.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살아계신 하나님이 반드시 자기의 뜻과 목적을 이루시며 택하신 백성을 책임져 주신다는, 승리케 하신다는 확신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 확신이 있었기에, 그에게는 창조적인 사고력이 있었고 확신이 있었기에, 자기 것이 아무리 부족하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그것을 최고의 무기로 생각하고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후에 다윗이 쓴 시에 보면 시편 20편에 이런 것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은 자랑하리로다 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고,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고, 자기의 경험과 자기의 무기를 의지하고 나온 골리앗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여호와 이름을 앞세우고 나온 다윗 앞에 여지없이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누가 참 거인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바로 왕이 거인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참 거인은 모세였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거인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참 거인은 다니엘이었습니다. 골리앗이 거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참 거인은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나, 이 신앙 이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참 거인 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삶에, 여러분 사업에, 골리앗과 같은 위협적인 문제가 있을 때에 살아 계신 하나님이 나를 택하시고 나를 책임져 주신다는 것과 하나님의 뜻과 섭리대로 이루어 주시고 반드시 승리케 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나아갈 때에 있는 상황 그 자리에서 창조적인 지혜를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 나의 모습 그대로 그것을 통해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이루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며 승리케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이 확신을 가지고 참 거인으로 영원히 승리하는 여러분과 저의 삶이 될 수 있도록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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