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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족한 줄로 여기라 (딤전 0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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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시간만 되면 투정을 부리며 잘 먹지않는 아이를 둔 어떤 엄마가 아이에게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얘야! 엄마가 어렸을 때에는 쌀이 없어서 굶을 때가 많았단다.”라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냉큼 하는 말이, “엄마! 쌀이 없으면 라면 끊여먹지 그랬어요”하면서 몹시 이상해 하더랍니다. “그때에는 라면이 없었단다.”라고 하니까, “그럼 빵은 있었을텐데 빵을 사서 먹지 그랬어요”하더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로 요즈음 아이들은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먹을것, 입을것, 가지고 놀 장난감등등.....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습니다. 집집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윽박을 지르고, 아이들은 필사적으로 안 먹으고 안간힘을 씁니다. 불과 20-30년전만 해도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정말 어려운 시절, 없던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생활은 과거 그 어느 때 보다도 풍요합니다. 30-40년전과 지금을 비교한다면 부자아닌 집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때에는 라디오 하나만 있어도 괜챦은 집이였고, 텔리비젼이 있는 집은 정말 부자였습니다.

 저는 국민학교 시절을 구리시 교문리에서 살았었는데 저희 동네에 는 텔레비젼을 가지고 있는 집이 한 집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권투 경기나 운동 경기를 텔레비젼으로 보려면 20-30분이상 걸어서 다른 동네로 가야만 했고, 그곳에 가보면 벌써 그 근처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들어서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돌아오곤 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라디오나 텔리비젼이 없는 집이 있습니까 정말로 우리는 풍부한 시대를, 부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이 없는데, 사람들은 전보다 더 행복해진 것이 아니라, 더 불행해지고 있음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살만 하다, 살겠다.”하는 사람들보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죽겠다, 못 살겠다.”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배고파 죽겠다는 것이 아니라, 남편(아내)때문에, 자식때문에, 돈때문에 못살겠다는 사람들 뿐인 것 같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더 고독해지고 절망감과 허무감에 휩싸여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체 되는대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흔드는데만 관심이 생기게 되고, 그래서인지 시내에 나가보면 울긋불긋한 유흥업소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조금전에 봉독해 드린 성경본문 말씀은,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인간의 삶에 있어서 <진정한 풍요와 만족>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족한 줄로 여기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진정한 만족과 풍요는 많은 재물을 소유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헬라어 원문에는,“모든 죄악들의 뿌리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다.”로 되어 있습니다.

 비슷한 말씀이 딤전3:3절에 나오는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교회의 감독이나 지도자가 되려면 돈을 사랑치 않아야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라는 이 말씀은 물질을 대표하는 돈을 경시하거나 무시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 가는데는 모든 일에 돈이 필요합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데도 돈은 필요한 것입니다. 실제로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돈이 없어서 사람 구실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가난을 장려하는 종교는 아닙니다. 오히려 축복의 종교입니다. 가난은 죄악은 아니며, 그렇다고 미덕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 들은 성실히, 그리고 열심히 일해서 잘 살아야 합니다.

 문제는 돈이란,<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도구>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하나님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신뢰하는 것이 물질과 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것을 간파하신 예수님께서는 마6:24절에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것을 족한 줄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오늘 본문의 10절 말씀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말씀을 주경학자 벵겔은, “모든 선의 뿌리가 되는 믿음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첫눈에 돈을 사랑하는 것이 사치와 방종 등과 같은 많은 범죄를 일으킨다.”고 그 이유를 지적했습니다.

 예화; J.Post는 돈과 재물에 대한 사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 돈에 대한 사랑은 영혼의 모든 행위와 열정을 오만하게 하고 편협하게 하며 돈에만 집착하게 한다.

 2. 돈에 대한 사랑은 모든 것을 평가하는 기준을 천박하게 한다. 모든 것이 돈의 가치에 따라 평가되며 이익과 관련하여 평가한다.

 3. 돈에 대한 사랑은 그 사람을 그의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이기적인 관계를 맺게 한다.

 4. 돈에 대한 사랑은 사람의 성품을 완악하게 한다.

 5. 돈에 대한 사랑은 판단력과 양심을 서서히 마비시킨다.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풍요로운 삶은 많은 재물이나 돈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또한 화려한 지위에 오름으로써 얻어지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들은 늘 권력을 지향해 왔으며, 이것이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권력 때문에 괴로움이나 죽음을 당한 사람은 많지만, 진정한 만족과 풍요로운 삶을 누렸던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자! 그러면 도대체 우리가 무엇으로 만족함과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가 있습니까

봉독한 말씀은,<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대 랍비의 교훈에,“부자란 자기의 운명에 만족하고 있는 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들의 욕망은 끝이 없고, 더욱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탐욕으로 항상 가득차 있습니다. 남들은 집 한채는 커녕 전세거리도 변변치 않은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데, 집을 두 채이상 가진 사람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아파트를 분양 받았다가 구속되는 모습을 얼마전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예로부터 들어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100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900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경우 900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넉넉함으로 100원 가진 가난한 사람을 보태 주려고 해야 할텐데, 오히려 그 100원을 어떻게 해서든지 빼앗아서 1,000원을 채우려고 안달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눅16:19-31절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볼 때 부자의 잘못은 자신의 욕망를 채우려는데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즉,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생활태도가 그를 지옥으로 가게 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약1:5절의 말씀처럼,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자족할 줄 아는 마음과 생활태도가 우리들에게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습니까

1.가진 것으로 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라.”고 말입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라고 했는데, 먹을 것은 음식을 말하며, 입을 것은 몸가리게나 피신처, 또는 의복을 뜻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이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만 있다면 족한 줄로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기본적인 생활이란 각 사람의 위치나 신분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적용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분과 위치보다는 과분한 생활을 아무런 죄책감없이 즐기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수입은 7000불인데 생활수준은 20000불 버는 나라 사람들처럼 생활하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더욱 더 많은 것을 얻기위해 몸부림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적은 것이라도 기쁘고 감사하게 여길줄 아는데 있는 것입니다.

즉, <감사와 기쁨>은 하나님의 복주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애 있어서 핵심적 요소인 것입니다.

오직 자족하는 사람, 가진 것을 족한 줄로 여기는 사람만이 진정한 감사와 기쁨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2.풍요로운 삶은 성령이 함께 하실 때 이루어 집니다.

우리의 진정한 풍요와 만족은 성령께서 함께 하실때 이루어 진다는 말씀입니다.

 요엘 선지자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뚜기떼와 가뭄으로 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형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슴을 치며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복은 두 가지입니다.

 1. 물질적인 축복입니다.

메뚜기 떼를 소멸시키시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마당에 밀가루가 가득하고, 독에는 포도주가 가득케 한다고 하셨습니다.

 2. 영적인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신, 즉 성령을 부어 주신다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축복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다.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 하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과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 주는 것은 <감사와 기쁨> 가운데서 자족하며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나아가서,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삶>이 진정으로 복되고 풍요로운 삶인 것입니다.

 모쪼록 이 자리에 나오신 모든 성도님들은 춥고 배고팠던 지난 날들을 회상하면서 현재 있는 것으로 기뻐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 가시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아가서 자족하는 생활, 즉 현재의 생활을 족한 줄로 여길 줄 아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행복과 풍요로운 삶을 베풀어 주실 줄로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 끝날까지 영육간에 강건하며, 기쁨과 감격이 충만한 나날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실 줄로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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