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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수난에 대한 예고 (마 20: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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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이방인들에게 넘겨질 예고
(마20:17)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 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마20: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마20:19)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A. 이방인들은 누구인가
성경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방인은 첫째로 율법이 없습니다. 그것은 속해 있는 정확한 테두리를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보면 다분히 미신적입니다.(신 18:14)
(신18:14)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복술자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지 아니하시느니라
세 번째는 그리스도밖에 있습니다.(엡 2:12)
(엡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 없습니다. 어떠한 규정이 없습니다. 따라서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엡2:1)
(엡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따라서 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자기의 손으로 처리하지 않고 이방인에게 넘겨서 그들을 철저히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방인의 모습을 우리 또한 가지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언약에 들어갔다고 할지라도 또한 성도들과 동일하다 할지라도 생활 속에서 얼마나 많은 죄악을 범하며 그리스도를 다시금 못박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방인이 아닌 올바른 천국시민이라 자처하면서도 죄악된 일과 그 결과를 다른 이방인들에게 밀어버리고 마는 결과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 사회의 죄악상이 그것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B. 배신당한 예수
배신이란 무서운 것입니다. 비록 그것을 예고하고 인지했다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고난이며 고통이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무리들이 배반을 하고 버렸습니다. 또한 끝까지 버리지 않고 따르겠노라고 했던 제자들까지도 돌아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배신의 여부를 묻지 아니하시고 그 대속의 고난을 자처하시며 제자들에게 또한 우리들에게 끝까지 기다리면 축복된 앞날이 우리에게 있을 것임을 도리어 약속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치욕과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방인들까지 구속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증거 하셨으며 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자 그들을 박해아래 두어 이방 세계에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배반을 극복하는 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인간들은 주님을 배반하지만 주님은 끝까지 우리를 사랑으로 대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떠나서는 안됩니다.

II. 십자가에 달릴 예고
A. 십자가의 의미
우리는 십자가를 흔히 대하지만 십자가에는 여러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십자가에는 문자적인 의미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데 먼저 문자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면 그리스도의 죽음을 말해 줍니다. 그 죽음은 우리를 대신한 죽음이었습니다.
상징적인 의미를 보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모습으로 우리 죄악을 대신하여 속죄의 양으로 고난을 당하는 것을 의미해 줍니다.(고전 1:8)
(고전1: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바로 우리의 죄악된 죽음에서 살리시기 위한 구속의 사역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의미합니다.
세 번째 상징적인 의미는 화해인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다시 맺어 주고 화목케 하셨습니다.
(엡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그러므로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더불어 그의 순종,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완전한 표명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참의미입니다.
B.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고난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는 사역을 행하시는 어느 곳에서나 그것을 느끼셨습니다.
그러므로 고난 당하실 것을 세 번이나 예고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예비하시고 예비적 시련을 통해서 쓰라린 경험을 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은 높임을 받으실 예고가 되며 그리스도께 임하시게 될 영광의 예고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고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겪으셔야 했던 고난의 정도를 알아야 하며 그 아픔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훨씬 이전부터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심판을 두려워하는 것을 포함해서 우리가 당해야 할 모든 고통까지도 주님은 받으셨습니다.
고통은 점진적으로 주님께 다가왔으며 제자들의 배반, 무리의 흩어짐, 그리고 십자가의 고통으로서 우리가 겪어야 할 모든 고통까지도 주님은 당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주님께서는 원망이나 불평, 자기 과시나 자랑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이 온순하셨습니다.

III. 제 3일의 부활 예고
A. 그리스도의 부활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에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서 우리의 죄값을 치르셨듯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또한 부활은 이성적인 믿음을 뒷받침해줄만한 논증으로 세상에 제공하여 주신 것입니다 .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들의 불신앙을 변명할 여지가 없게 된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가 강력한 힘과 권력 때문에 죽기만 하셨다면 그분이 우리의 죄를 충분히 대속해주셨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있는 한 그 누가 그를 하나님이요, 구세주로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을 구원하신 구세주가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박혀서 그냥 죽어 갔다면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서도 그것은 모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을 우리에게 예고하여 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수많은 증인들애 의하여 입증된 것입니다.
B. 부활의 종류
우리는 부활을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생각할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사역의 중심이며 우리 믿음의 올바른 근거가 됩니다.
두 번째는 우리 신자들의 영적 부활(골 2:12)
(골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과 육적인 부활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의미에서 물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하게 된 것은 물론 우리의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태어나는 부활을 맞이하게 되며 마지막 날에 우리의 육체의 모습은 그리스도와 천사같이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빌 3:21)
(빌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그러므로 부활의 성취자는 오직 하나님이시요 그리스도이시며 성령님이심을 우리는 깨닫고 굳건한 부활의 신앙을 부여잡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열 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앞으로 있을 고난과 부활에 대해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그의 제자들이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깨닫고 그에 대비할 수 있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만을 갖는다면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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