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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치시는 예수님 (마 21: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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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소경과 저는 자들의 치유
(마21:14)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A. 예수님의 치유사역
예수님은 성전을 정화하신 후 치유사역을 펼치셨습니다. 성전에 대한 올바른 마음가짐과 자세를 교훈하시고 치유의 사역을 하셨는데 주님의 사역은 시공을 초월하여 필요 적절한 바로 그 때 이루어집니다. 소경과 저는 자들이 나아오매 고쳐주신 일은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과 논쟁하던 일과는 아주 다른 일로서 인간의 고통에 대한 예수님의 깊은 관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병든 자가 소외되어가는 이 시대에는 주님의 아러한 따뜻한 사랑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사랑이 식어지는 때에 그리스도인만이라도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B. 성전에서의 치유사역
예수님은 성전에서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또한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 성전에서 병고침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주의 성전은 하나님의 선하신 능력이 나타나는 곳입니다. 주님께서 소경과 저는 자들을 성전에서 치유하셨듯이 하나님의 집에서는 영욱의 질병을 치료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예)성전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의 치료
성전에서 매매를 일삼고 타락을 조장하던 당시의 교권주의자들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성전을 담보로 재물을 긁어모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그들의 아픔을 치유하신 것입니다.
C. 예수님의 분별있는 사랑
예수님은 책망할 자들과 긍휼히 여길 자를 분먕히 하셧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거스리는 자들은 단호히 문책하시고 불쌍한 자들에게는 사랑의 손길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이처럼 분별력이 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채찍의 사랑을 주시고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는 긍휼히 여기사 고쳐주시는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이 땅 위의 병든 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주를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도 주로부터 받은 권능을 세상의 굶주리고 헐벗으며 병든 자들에게 값없이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중 단 한번도 병든 자들에게서 관심의 눈길을 떼지 않으신 것처럼 성도들도 이들에게서 관심의 눈길을 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II. 대 제사장과 서기관들의 분노
(마21:1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A. 그릇된 마음의 분노
예수님은 성전을 깨끗이 하실 때 제사장들을 공격하셨습니다. 이러한 공격적인 도전에 제사장과 서기관들은 분노했습니다.
마리아가 에수님께 향유를 바칠 때 가룟 유다의 마음에 분노가 일어났듯이 에수님의 이적과 어린 아이들의 찬미는 교권자들의 마음에 분노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마음의 방향이 진리에서 어긋날 때 진리의 행동이 오히려 노엽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그릇된 마음은 예수님의 선한 능력과 어린 아이들의 순수한 찬미를 보고도 분별력을 잃고 오히려 분노를 유발시켰습니다. 마음이 완악하여진 그들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정결한 마음을 소유해야합니다. 그래야 그릇된 마음을 가진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범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게 됩니다.
B.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항의
유대 풍속에는 랍비들을 찬양하기 위해 어린 아이들을 동원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어린 아이들의 찬미는 생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어린이들의 찬미를 받으시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학 항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성모독이라고 항의함으로서 그들 자신이 신성모독죄를 지었습니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주님을 찬양하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분내고 항의하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C. 영적 무지
그 당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죄를 지은 것은 영적 무지의 소치입니다.
형식에만 치우친 신앙생활로는 신령하신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성도 또한 영적인 무장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강림하실 대가 언제일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온전히 영접하고 그리스도께 옳다 인정받기 위해서 우리는 더욱 깨어 근신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III. 어린아이의 찬미를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
(마21:16)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A. 어린 아이의 찬미
유대인의 어린아이는 일찍부터 성전예배에 참여하였습니다. 이미 소경들, 무리들, 이방여자, 예루살렘 시민들로부터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메시야 칭호를 받으신 예수님은 이제 어린 아이들로부터 동일한 찬미의 고백을 받으십니다.
그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주님을 찬양하기를 거절하였지만 어린 아이들은 그 부족함을 채웠습니다. 부모들이 행했던 즐거운 환호성을 되풀이하는 어린 아이들의 찬미는 결코 흉내가 아니었습니다.
어린 아아들의 찬미는 국수주의 적인 애국의 꿈에 부풀어 외친 어른들의 찬미에 비하면 훨신 더 순수한 것이었습니다.
B. 구약의 성취
예수님은 시8:2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찬미를 당신에게 적용시켜 어린이들의 찬미가 구약의 성취임을 증거하셨고 하나님의 뜻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즉 분을 내고 항의하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어린이의 찬미가 정당함을 가르치셨습니다. 참으로 성경을 아는 자들이었다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이 찬미를 통하여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아보고 인정하고 경배해야 했습니다.
C. 진리의 분별
많이 배웠고 지혜롭다고 자처하던 당시 성직자들은 진리를 알아보지 못했으나 어린 아이들은 진리를 찬양했습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서 안다하는 자들보다도 아이처럼 겸손한 자들이 영적인 진리를 더욱 잘 분별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더구나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멸하시는 하나님 앞에 자긍하는 자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감당하지 못한 일을 어린 아이들은 해냈습니다. 모든 성도들도 어린 아이의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주를 향한 온전한 찬미의 고백을 드릴 수 있고 진리를 분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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