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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담대히복음을증거케하는힘 (고후 0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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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주변의 환경을 의식하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증거할 수 있다는 것 은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핍박이 따르고 비방하는 자들의 수근 거리는 모든 말들을 감수해야 하며 때로는 생명을 위협하는 순간도 찾아옵 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서 사도 바울은 동족에게 배신 당하여 십자가에 죽은 예 수를 진리라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이 복음이 헬라인에게는 어리석은 것 이요, 유대인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 되었던 것인데 이것을 부끄 러워 하지 않으며 담대히 외치기를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 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롬1:16)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바울이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던 것은 복음의 진리와 영광에 대한 움직일 수 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본문을 통하여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1.탁월한 새 언약이므로 복음을 담대히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12-13절).

 본문 내용은 모세의 수건 사건으로서 출34:29-35절의 인용 내용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대화한 뒤에 십계명의 돌판 두개를 새기고 내 려왔을 때에 그의 얼굴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광채가 빛났습니다. 뿐만 아 니라 모세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할 때에도 광채가 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광채로 인하여 큰 감동을 받았으며 두려워 했습니 다. 그러나, 모세는 그 광채가 일시적인 것으로서 곧 사라질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을 가르치고 난후에는 곧 수건을 그 얼굴에 썼습니다.

바울은 그 이유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장차 없어 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그렇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수건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아담 에게 주셨던 원시적인 언약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완전한 계시로 발전되 어 간 것입니다.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계시도 물로 참되고 위대한 것이었 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분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나의 과정이었지 최종 적이고 완전한 계시는 아니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계시가 최종적이고 완전한 계시였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되고 최종적이며 영원한 계시가 이루어 지자 일 시적인 것과 부분적인 것들이 물러가며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 게 모세의 율법이 유한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모세가 그 얼굴에 광채가 나 타났을 때에 영원한 것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수건을 둘러 쓴 것입니다.

이만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새 언약이 탁월한 것입니다. 그러기 에 바울이 그토록 험악한 환경이나 어려운 처지 가운데서도 담대히 이 복 음의 진리를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이스라엘 자손들의 완고함은 가리워진 심령 때문입니다(14-15절).

 본문 14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 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마음에 씌워진 수건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놀라운 역사들을 보고도 고집스럽게 그 분을 져버렸습니다.

바울은 수많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고백하는 것을 보 았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자기 민족인 유대인들 중에서는 믿지 않은면 가 만히 있기라도하면 괜챦겠는데 믿지 않는 많은 유대인들이 적극적으로 핍 박하고 가로막고 나서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미워하 여 40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결탁하여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 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행23:12)고 맹세하며 교회를 핍박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까지 완고하게 복음을 배척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심령 을 가로막고 덮고 있어 하나님을 뜻을 알지 못하게 하는 수건이 씌여져 있 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희 마음이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완고하 게 되어 진리를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말해 율 법의 의미를 바로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 것 이 아니라 율법을 통하여 구원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오히려 이들은 율법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무모한 시도하였던 것입니다. 율법은 구원의 방법이 아니라, 단지 인간의 한계와 죄를 깨닫게 하는 도구임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율법이나 도덕, 선한 행위로 천국 가는 점수를 후하게 받는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유대인들의 심령에 씌여 진 수건 처럼 영적인 소경이 될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이같은 영적 수건이 심령을 덮고 있어서 참된 구원의 복음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삶보다도 교리에 칩착되어 사랑이 없어 메마른 심령이나, 교회의 전통이라는 고정관 념과 외식의 누더기를 고집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있지는 않는지 자세히 자신을 진리의 바른 복음의 터 위에 세워져 있는 지를 검토해야 합 니다. 우리의 관심은 항상 복음과 그리스도라야 합니다.

 3.주의 영이 있는 곳에 참 자유가 있습니다(16-18절).

 심령을 덮고있는 율법적인 사고방식과 외식과 껍데기에 칩착하는 고정관 념을 극복하는 비결은 모든 거치는 것들을 벗어던져 버리고 주님께 나아와 엎드려 질때에 진리의 성령께서 참다운 깨달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참 진리와 그리스도의 복음의 의미를 깨달을 때에 율법으로부터 의 자유를 차지할 수 있게 됩니다.

율법 아래서는 속박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복음속에 들어오 올 때에 참다운 삶이 시작됩니다.

 <결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와 율법의 수건, 외식의 수건, 육체의 자랑의 수건들을 모두 다 벗어버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영광의 복음 속 으로 들어가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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