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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 0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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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 가면 초대교회시절 로마 황제에게 핍박을 받던 기독교인들의 은신처로 사용했던 카타콤바가 있습니다. 이곳은 원래 공동묘지였는데 모진 핍박을 당하던 기독교인들이 공동묘지의 지하에 통로를 내고 로마군인이 잡으러 오면 피해 다니기도 하고 그 지하 동굴 속에서 하나님께 예배도 드리고 생활을 했던 곳입니다. 당시 로마인들은 무덤을 신성시하였기 때문에 무덤에는 아무도 접근해 오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공동묘지에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안식처로 삼고 그 곳에서 신앙을 지키며 살았던 것입니다.

아직 저는 그곳에 가보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가서 보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온 순례자들은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그 모진 고난을 참고이기며 살아온 성도들의 모습을 볼 때 눈물을 알 흘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햇빛을 보지 못하고 생활을 하였습니다. 지하교회에서 태어나고 지하교회에서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햇빛을 보지 못하여 건강이 나빠지고 사람의 수명이 짧아져 일찍 죽어 갔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동굴 옆에 또 다른 동굴을 파고 그곳에 매장을 하였습니다. 서기 313년 코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기 전까지 250년이 넘는 기간동안 오직 신앙 하나를 지키기 위하여 그 지하교회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용기를 주고 위로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말이 250년이지 복음을 지키고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25년도 아니고 250년간을 고난을 받고 견디었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적인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또한 주님의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았고 고난을 받는 것을 기뻐하며 살아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몇 일전 국민일보를 보니까 우리나라에서 일제시대에 기독교인들이 일본사람들의 핍박을 피하여 경기도 일원의 섬으로 돌아다니며 부흥회를 열고 신앙을 지켰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고난을 참지 못하여 변절하고 신앙을 버리고 있는데 섬으로 숨어 다니며 병자를 고치고 복음을 전하며 부흥회를 열었다는 것을 볼 때 오늘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귀한 신앙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오늘부터 사순절이 시작되는 주간입니다. 사순절이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뒤 부활하신 부활주일에서부터 반대로 계산하여 주일을 빼고 40일 전부터 시작되는 절기인데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기간이며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당한 고난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게 세우는 기간입니다.

성경에서는 40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며 훈련을 받은 기간이 40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40년간 광야에서 연단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시내 산에서 40일간 금식을 하며 계명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에서 뽑힌 정탐꾼들이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기간도 40일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선지자들과 대결하여 이기고도 아합 왕과 이사벨이 무서워서 호랩산으로 피해 갈 때 걸어서 간 시간이 40주야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을 하시며 기도하셨고, 십자가에 죽으신 뒤 무덤 속에 있으시던 시간도 40시간입니다. 또한 부활하시고 세상에 머물러 계시던 시간도 40일이셨습니다. 이 40일은 훈련의 기간이며 연단의 기간이고 고난의 기간입니다.

이 40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신앙의 연단과 훈련을 위하여 고난을 주신 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훈련이 따르게 됩니다. 이 훈련을 통하여 믿음이 강하여 지고 신앙인으로 튼튼히 세워 지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20세가 되면 군대에 가게 되는 데 군대에 가면 제일 먼저 훈련을 받게 되는데, 훈련을 받아서 합격해야만 대한민국의 군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훈련에 통과하지 못하는 군인은 낙제를 하여 다시 훈련을 받고 합격해야만 본 부대로 배치가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40은 우리들의 연단과 훈련의 기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훈련이고 고난이 온다고 하여도 40이 지나면 끝이 난다는 것입니다. 즉 연단과 고난에도 끝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당하는 신앙의 고난은 끝이 있다는 믿음으로 참고 견딤으로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순절은 속죄의 기간입니다. 자신의 죄와 허물을 회개하며 지내는 기간입니다.
또한 사순절 기간에는 고난주간이 있습니다. 부활주일 한 주간 전을 고난주간이라고 하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신 한 주간을 기념하는 주간입니다. 그리고 사순절 기간에는 종려주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승리의 입성을 축하하는 주일로 부활주일 전 주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려주일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되기도 합니다.

사순절 기간에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성경을 읽고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신일교회에서는 사순절 기간동안 40일 새벽기도회를 열고 있습니다. 이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여 성경을 봉독하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이 참으로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순절기간동안에는 하루에 한끼씩이라도 금식을 하셔야 합니다. 금식하시기 어려우신 분은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금식을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금식에 해당한 헌금을 드려서 헐벗고 굶주림을 당하는 이웃에게 구제헌금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사순절 기간에는 다방이나 음식점 출입도 삼가해야 합니다.

또한 사순절기간에는 전도하는 기간으로 삼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았고 멸망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게 된 것을 이웃에게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세속적이고 향락적이기 때문에 고난받기를 싫어하고 어려움과 환난 당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지금 우리들은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고 자신을 드려 헌신하여 희생하기보다는 평안함을 원하고, 안일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삶보다는 육적인 삶을 추구하고 빛된 삶보다는 어두움의 삶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말씀은 우리들의 육신이 평안하고 기름지면 그 반대로 영은 고통을 당하고 메말라간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영이 기름지고 잘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육신이 고난을 당하고 환난을 당해야 하며, 결국에 가서는 주님을 위하여 죽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8:6-7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순절 첫 주일에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을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왜 고난을 받아야 합니까
우리는 교회에서 고난을 받고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을 보면 큰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고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보면 고난을 당하는 것은 죄를 범함 사람이 그 죄 때문에 채찍을 맞는 경우도 있지만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그가 범한 죄 때문에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그들이 범한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환난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사람도 그 고난 때문에 회개하게 되고 믿음이 정화되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을 보면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고 말씀하신 다윗의 말씀은 하나도 틀린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가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하였습니다. 또한 시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하셨습니다.

다윗은 평안할 때 안일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고난이 오고 힘들고 어려울 때 범죄하기 보다는 시간이 많고, 여유가 있고, 평안할 때 하나님을 버리고 죄를 범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에는 바쁘고 피곤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며 살던 사람이 여유가 있어서 시간도 많이 있고, 물질적으로도 풍족해지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게으름을 피우고 안일하게 생활하여 말씀을 버리고 살다가 다윗과 같이 무서운 죄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부하들은 전쟁터에 나가서 싸움을 하고 있는데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을 하고 있는 밧세바를 보고 음욕을 품고 죄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그 후에 그에게 얼마나 많은 환난이 닥쳤습니까 그가 고난을 당하면서 깨달은 것은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잘못된 길로 가고 있었는데 고난을 당하고 나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해주고 하나님을 찾게 해주므로 고난이 나에게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오는 고난 중에는 죄를 깨닫게 하고, 그 죄를 회개하여 죄를 치료하기 위하여 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오는 고난 중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고난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9장을 보면 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보고 제자들이 질문을 하기를 “저 소경은 누구의 죄로 눈이 멀게 되었습니까 자기의 죄 때문입니까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하였습니다. 이 때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저 사람이 소경이 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들어내기 위함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소경을 치료해 주시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증거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현재 당하는 고난은 우리를 더욱 거룩하게 만들고 성숙하게 만들기 위함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기 위하여 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딤후2:3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군사로 선택받은 성도들입니다. 우리들이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우리들이 받는 고난은 우리를 택하시고 뽑아서 세우신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함임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고,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만큼 하늘나라의 상급도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 무엇이 고난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병들어 고통을 당하는 것만이 고난이 아닙니다. 사업이 실패하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만이 고난이 아닙니다. 이러한 고난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을 때 내리는 하나님의 채찍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당하는 고난은 주님을 위하여 헐벗고 굶주림의 고난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재산을 다 팔아서 주님께 드린다고 하여도 우리는 헐벗지 않고 굶주리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매를 맞고 감옥에 가는 고난도 없습니다. 지금은 순교할 일은 더욱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주님과 함께 고난을 당해야 하는데 어떤 고난에 참여해야 하겠습니까
1)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고난입니다.
기도하는 것이 무슨 고난이냐 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기도하는 것이 고난임을 분명하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간 사람이지만 다리오 왕의 신임을 받아 그 지위가 점점 높아지니까 시기하는 무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왕을 졸라서 법을 하나 만들게 하였고, 그 법에 어인을 찍게 하여 선포하였는데 그 내용은 앞으로 한달 동안 왕 외에 다른 사람에게나 신에게 무엇을 구하고 기도하며 사자 굴에 던진다는 법이 였는데 이는 다니엘을 죽이기 위한 법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 법이 자신을 죽이기 위하여 자신을 시기하는 무리들이 만든 것임을 분명히 알고도 집으로 돌아가서 매일 행하던 대로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을 열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자 굴에 던져지는 고난을 당하게 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기도하는 것이 고난이었습니다. 로마의 법에는 황제가 신이었기 때문에 황제 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기독교인들만 황제를 섬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초대교인들은 기도하다가 잡혀서 고난을 당하고 죽음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일제시대에서나 공산당 시절에 기도하는 것이 고난이었습니다. 일제시대 말엽에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신사참배를 시켰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생명을 보존하고 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라는 명분으로 신사참배를 하였습니다. 신사참배를 한 기독교인들도 가슴이 아파서 집에 돌아오면 통곡을 하고 회개를 하였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도 일본의 귀신들에게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단호하게 거절을 하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가 고난을 당한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손양원목사님도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감옥에 갇혀서 고난을 당하다가 해방이 되어 간신히 살아났습니다.

기도를 하는 것은 고난을 받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앞으로 기도하는 일 때문에 우리들이 큰 고난을 당하고 순교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 후서를 보면 말세에는 적 그리스도가 나와서 자신에게 경배하게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은 고난을 받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기도하는 것이 참으로 힘들고 어렵습니다. 육신이 약하여 기도하지 못합니다. 세상 일에 분주하고 바빠서 기도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무기가 녹이 슬고 쓸모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군대 생활을 할 때 매일 저녁이 되면 점호를 받기 전에 자신의 소총을 깨끗이 닦고 기름을 쳐야 했습니다. 소총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으면 기압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모든 병사들은 그 일을 대단히 귀찮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소총을 매일 매일 닦고 기름을 쳐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총이 녹이 슬면 전쟁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이 녹이 슬게 됩니다. 그러면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우리는 공격을 제대로 한번 해보지 못하고 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기도로 우리의 영적인 무기를 잘 갈고 닦아야 할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고난을 당하는 믿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훈련입니다. 사순절 40일 새벽기도회에 모두 참석하셔서 기도로 승리하셔서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2) 전도하는 것이 고난입니다.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어서 천국에 가십시요.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가게 됩니다. 이 복음을 전도가 얼마나 큰 고난인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스데반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베드로도 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당하고 끝내는 십자가에 거구로 매달려 순교를 당했습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위하여 수많은 고난을 당했는데 굶주리고 헐벗고 매를 맞고 오랜시간동안 감옥에 갇히고 끝내는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면 편안하게 살다 죽었을 것입니다.

깡패였던 김익두 목사는 평양시가에서 복음을 전하는 서양 선교사에게 돌을 던져 얼굴에서 피를 내게 했다가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전도는 이러한 고난 속에서 놀라운 열매가 얼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펜셀러 목사는 25세에 한국에 와서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한국말로 번역하는 사업을 하기 위하여 인천에서 목포로 가는 배를 타고 가다가 군산 앞바다에서 여객선이 침몰하는 바람에 순교를 하여 그 시체도 찾지를 못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나혼자 또는 내 가족만 가만히 예수를 믿으면 고난을 당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전도를 하게 되면 우리들이 욕을 먹고 핍박을 당하고 고난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복음을 들고 나가서 전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미친놈이라는 욕도 먹을 것이며 창피도 당하고 부끄러운 일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위하여 당하는 고난입니다. 딤후4: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하셨습니다. 전도하는 일은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는 일입니다. 이 사순절에는 뜨겁게 기도하고 전도하여 우리도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에게 오는 고난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당하는 고난이고 또 다른 고난은 하나님을 위하여 당하는 고난입니다. 그러나 우리 육신을 위하여 당하는 고난은 영광이 없는 고난입니다. 우리들이 먹고 마시고 살기 위하여 당하는 고난은 상급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하여 고난 당하기를 기뻐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 고난이 와도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고난 당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롬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며 우리는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위하여 어려움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는 것을 기뻐하시며 우리들에게 오는 고난을 극복하여 이기고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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