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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 즐거운 소식 (요삼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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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에 담겨진 요한의 서신은 모두 3 개이다.

이상근목사는 그의 주석에서 요한의 서신을 평하기를 세개의 편지가 재미있는 대조를 보이고 있다고 말하면서 1 서는 이름만 서신이지 하나의 논문이며 2 서는 내용상 일서의 축소판이고 더구나 수신자인 부녀와 그의 자녀는 비유적인 것으로 공동서신의 면모를 잃지 않고 있다고 말하였다.

3 서는 여러 고유명사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순수한 서신이라고 지적하였다.

본문에 사용된 장로는 물론 요한 자신을 가리킨 단어이다.

벧전 5:1 에서 베드로는 자신을 가리켜 '함께 장로된 자'라고 부른 것을 보면 장로라는 명칭은 공적인 직책을 가리킨 것이 분명하다.

 편지는 보내 준 사람의 이름 만으로도 받는 사람이 즐거워 한다.

이 서신을 받아 읽어야 할 사람이 누구이며 또 그 서신을 보낸 사람이 누구임 을 알게 되면 그 두 사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감정이 솟아 오르는 법 이다. 받는 사람은 비록 내용을 읽지 않아도 보내준 사람의 이름만으로도 말 할 수 없는 기쁨이 가슴에 벅차 오르는 경험을 여러분도 다 가지고 계신 줄 안다.

 성경에 기록된 요한 장로의 이 편지는 '지금 여기에서' 말씀을 듣는 여러분의 가슴 속에도 넘치는 기쁨으로 다시 한번 나타날 줄로 믿는다.

 요한은 이 편지를 가이오라는 사람에게 썼다.

신약성경에는 가이오라는 이름이 모두 네번 나타난다. 마게도냐의 가이오 (행 19:20) 더베사람 가이오 (행 20:4) 이사람은 교회를 대표하여 예루살렘의 가난한 형제들을 도울 구제금을 가지고 간 사람이다. 바울이 세례를 준 고린도의 가이오 (고전 1:14) 가 있고 바울의 식주인 가이오(롬 16:23)가 있는데 이 두 사람은 동 일 인물로 본다.

가이오란 우리의 김씨 이씨처럼 가장 흔한 성이다. 요한은 그중의 한 가이오 를 향하여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라고 묘사하였다고 본다. 이것은 사도의 깊 은 애정의 표현이다. 요한은 본 서신에서 가이오에 대한 격려를 말하였다. 동시 에 디오드레베에 대한 책망과 데메드리오에 대한 칭찬의 말을 덧 붙이고 있다.

저는 오늘 여기에서 가이오가 받은 격려의 말을 통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그가 받은 격려가 무엇인가 요한은 가이오에 대하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라고 말하였다. 새번역 성 경은 이 문장을 '그대의 영혼이 복을 받은 것과 같이...' 라고 번역하였다. 현대 인의 성경은 '그대의 영혼이 건강한 것처럼...' 이라 하였다. 이 말의 의미는 가 이오의 신앙상태가 건강하고 건전하다는 것을 말한다.

가이오의 신앙이 건강하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1. 그의 신실함 때문이다. (5절) 가이오는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일이 신실하였다. 당시의 나 그네란 각지를 순례하는 이름없는 전도자들을 말한다. 이들 나그네의 생계는 대 부분 그들이 방문한 교회와 그 교인들이 제공하는 대접에 의존하였다. 베드로나 바울, 바나바와 빌립 같은 이들이 모두 전도자들이었다. 옛날 설화 가운데 나그 네에 관한 이야기들은 흥미있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 그 당시 손님대접은 신성한 책임이었다. 나그네들은 '주스 세니오스' 라는 나그네 신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믿었다. 당시 나그네들이 머무는 주막이란 형편이 좋지 않았다. 값은 비싸고 거 처는 더럽고 아주 위험하였다.

헬라사람들은 손님을 대접하고 돈을 받는 것을 몹시 꺼려하였다. 그러므로 주 막이란 대개가 천민의 몫이었다. 주막주인은 반 도둑이었고 손님을 공갈협박하여 착취하는 해적같은 부류가 있었다. 또 다른 것은 일종의 콘도이용권 같은 증명표 도 있었다. 사람들은 증명을 가지고 여행을 하였으며 그것을 가진 이들을 극진히 대접하였다. 이방 세계가 손님대접의 의무를 가지고 이러한 제도를 사용하였다고 할 때 기독교인들의 세계가 그보다 더욱 잘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라.'고 가르쳤다.(벧전 4:9) 히브리 기자는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서 부지 중에 천사를 대접한 이 들이 있었느니라.' 하였다. 바울은 '나그네를 대접하는 과부를 존경하라.'하였고 (딤전 5:10) 롬 12:13에서는 '나그네 대접하기를 힘쓰라.' 하였다.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나그네를 대접하였다가 우연찮게 천사를 대접하였다. 그 는 천사들을 통하여 하늘의 별같이 많은 후사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소 돔 고모라를 심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생면 부지의 사람을 대접한 것이다. 물로 그들의 발을 씻어 드렸다. 고운가루로 떡을 만들어 대접하였다. 살찐 송아지를 잡아 요리하였다. 시원한 나무아래 앉아 대접 받은 천사들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빈 것이다.

 우리나라 민화에 흥부 이야기가 있다.

다리 부러진 제비를 극진히 치료해 주었더니 박씨를 하나 물어다 주어 그것을 심었더니 흥부가 부요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신실한 대접은 신실한 보응이 약속되어 있다. 너희 중에 있는 소자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 에게 한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은 보장되어 있는 약속이다.

 2. 자랑할만 하다는 것이다.

가끔 부흥회를 참석하노라면 강사들을 통하여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소개되 는 경우를 보게 된다. 전도를 많이 하는 사람, 기도응답을 크게 받은 사람, 물질 에 풍성한 복을 누리는 사람 등등......, 자랑할만 하다는 것은 곧 건강한 신앙이다. 가이오에게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라는 것은 곧 가이오의 영적생활이 건강한 것 같이.... 라는 뜻이 숨어있는 말씀 이다. 헬라인은 지식을 자랑하고 유대인은 율법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랑 은 수에 칠 가치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한다.

 근간에 고위 공직자들이 재산을 공개한 사실이 매스컴에 보도되면서 여러가지 로 희비가 교차되는 것을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다. 과다한 부동산과 천문학적 수치의 재산들이 그들에게 자랑이 되던 시대가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강남의 압 구정동이나 양재동에 땅이 없으면 똑똑한 축에 들지 못한 사람으로 생각이 되고 용인에 땅 몇천평 지니고 있지 않으면 사람행세 못하는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김 대통령이 취임한지 얼마 후에 부동산을 많이 가진 사람이 고통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하더니 재산공개가 진행되면서 어떤 이는 부동산을 1/3 값도 못받고 처분했다거나 재단에 희사했다거나 하는 소식이 나돈다. 어떤사람은 막대한 토초 세를 납부하지 못하여 땅을 볼모로 잡혔다는 소식을 듣는다. 엊그제 한 대법원장 은 과다 부동산소유자로 여론의 화살이 빗발치니까 아직도 3년여 임기가 남은 자 리를 떠났다. 어제까지 자랑이던 것이 이제는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움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제자 한 사람이 아데네 근처에 있는 광대한 땅 을 자랑하였다고 한다. 그의 말을 들은 소크라테스는 커다란 지도를 책상 위에 펼쳐 놓았다. 아시아가 어디지 하고 묻는 스승에게 제자는 대답하였다. 여기입 니다. 그리스는 어디지 아시아에 비하여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그리스를 지적하였다. 그러면 페르폰네소스는 제자는 간신히 지도상에 나타난 지명을 뾰족한 연필로 가리켰다. 여깁니다. 스승님 ! 그곳은 하나의 점에 불과 하였다.

그러면 자네의 땅은 자네의 그 광대한 땅은 어디 있나 제자의 땅은 지도에 나타날 만큼 큰 것은 못되었다.

 오늘 우리가 자랑할만 한 것이 무엇인가 자랑할만한 것도 못되면서 자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능히 자랑할만 한 것 도 부끄러워 하면서 감추는 사람이 있다. 권력이라는 것도 막강하여 하늘을 나는 새라도 떨어트릴 것 같던 유신정권이었지만 그 막강한 경호망을 뚫고 들어간 총 성에 맥없이 쓰러진 것이 박정희 대통령이 아니었던가 많은 지식과 허다한 소유도 그 사람과 함께 왔다가 그 사람이 가면 함께 사라 져 버리는 것 오늘은 내 집이라고 문패를 달아 놓고 즐거워 하지만 내일은 다른 사람이 와서 그 문패를 떼어 버리고 또 한 세대를 지나간다. 앞에 말씀드린 공직 자들의 이런 것들을 자랑하는 말을 들으면 사람으로 분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고 허탈감에 빠지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사랑의 자랑은 듣고 들어도 오히려 듣는 사람에게 기쁨을 배나 넘치게 한다. 나그네 전도자들이 교회 앞에서 가이오의 베푼 모든 사랑을 증거하는 말 을 들을 때에 요한 장로는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저는 원일교회 성도 여러분이 영적 삶에 강건하시기를 축원한다.

사랑의 자랑으로 풍성하시기를 축원한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사랑의 수고를 칭찬했던 바울처럼 성도여러분의 사랑의 수고와 믿음의 인내가 넘치기를 바란다.

멜기세댁의 축복에 감사하여 십일조를 드렸던 아브라함처럼 믿음에 부요하시 기 바란다. 형의 장자권을 욕심 내었던 야곱처럼 하나님 앞에서 복 받는 일에 욕 심을 내시기 바란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며 자기에게 복을 내려 주 시기를 강청하였다.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밧단 아람으로 도망가는 야곱이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 뿐이다.

잠간동안의 꿈이었지만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연결 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광경을 보고 또 하나님께서 말 씀 하시기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 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야곱은 잠에서 깨어 '하나님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두려워 하면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서원하였다.

 사도 요한은 가이오에게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간 구하노라 하였다. 가이오의 하는 모든 일이 잘 되고 그의 몸도 건강하기를 바란 다는 뜻이다. 어리석은 부자는 하나님 앞에서 부요하지 못함으로 영생의 길을 소 유하지 못하였다.

 이제 영혼이 잘되는 증거는 분명하다.

1) 진리가 그 속에 거하는 사람이다.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여러분 속에 자유 가 없다면 먼저 그 속에 진리가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2) 이론과 실제가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다.

이론과 실제란 믿음과 행함을 의미한다. 믿음없는 행함은 수고로울 뿐이요 행함없는 믿음은 열매없는 나무일 뿐이다.

3) 선한 영과 넓은 마음이 있다.

사울과 다윗 두 사람을 비교하면 쉽게 비교가 된다.

두 사람 다 하나님을 섬기는 인물이다. 그러나 영혼의 풍성함은 다윗에게 있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4) 기도와 행위가 잘 조화되어 있다.

기도는 허공을 치는 메아리가 아니다. 기도는 행동이다.

5) 아무런 악한 야심도 없는 사람이다.

오직 진리를 따라 행하는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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