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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의 생활화2 (히 0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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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행복한 신앙의 사람이 될 뿐만 아 니라 인격적인 열매가 있고 쳐다만 봐도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 는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시편 1편의 말씀을 통해서 보았습 니다. 이번 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방법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말씀을 읽고 들음으로써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 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어떤 사람이 복이 있습니까?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입니다.

여기서 읽는 자는 단수이고, 듣는 자는 복수입니다. 지금 은 누구나 다 성경을 가지고 있고, 한 사람이 여러 종류의 성경 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한 권의 성경을 몇 교회가 돌아 가면서 읽었습니다. 골로새서에도 보 면, 그것을 다른 교회에 주어 읽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 본을 만들어서 읽었습니다. 그 당시의 형편과 비교해 볼 때 우리 는 얼마나 행복합니까? 성경도 많고, 성경을 설명해 놓은 책도 많고, 교회도 많습니다. 솔직히 요즘처럼 예수 믿기 좋은 세상이 어디 있습니까? 옛날에는 성경이 한권 밖에 없었으니까, 교회에 서 대표로 성경을 읽는 한 사람이 그것을 보관했다가 꺼내어 읽고 는 또 보관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입에 올리고 눈으로 보 고 읽는 그 사람이 복되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사실상 이 세상에는 아직도 이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본 적이 없 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또 성경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도 없 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북한에 사는 제 동생도 제가 읽어 준 성 경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 이 북한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북한 뿐만 아니라 전세계 구석구석 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있던 신학교의 학생들이 선교사로 많이 나가는데, 그들이 돌 아와서 채플(chapel) 시간에 이야기하는 것 가운데 이런 내 용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뉴우기니아의 정글 속에 들어갔는데, 그곳 사람들은 하나님 의 말씀을 들어 본 적도 없고 예수 믿는 사람을 만나 본 적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에게 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 이 선교사들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글을 읽을 수 없으니까, 선교사들이 글을 만들어 내고 그 글대로 성경을 번역 해서 그들에게 줍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올려서 처음 읽어낼 때에 선교사들의 기쁨은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많고 성경이 흔하고 선교 방송도 있어서 말씀을 읽 고 듣는 것의 중요성과 그것으로 인한 기쁨을 크게 못 느끼기가 쉽지만, 이 시대에도 이런 말씀을 처음 읽어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말씀을 읽고 듣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지 못 하는 사람에게 믿음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부터 납니다. 우리가 원할 때 주의 말씀을 읽을 수 있고 들을 수 있 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말씀을 깊이 묵상함으로써 저가 학생 시절 신앙 생활할 때에는 누가 성경을 많이 읽는가 하는 「성경 다독표」가 있었습니다. 그 도표가 벽에 붙어 있었 는데, 저는 그 도표를 올리기 위해서 성경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것도 토요일 밤에 말입니다. 그 당시 얼마나 빨리 잘 읽었는 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많이 읽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닙니 다. 본문을 조금 읽고서라도 그 본문을 골똘히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묵상(meditation)이란 말은, 생각을 하 고 또 하고 해서 꼭꼭 씹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오 랫동안 묵상하면 그 말씀이 머리에만 있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옵 니다. 신앙인의 집념, 신앙인의 확신, 신앙인의 자신감, 신앙인 의 의(義)가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 한 결과입니다.

 저는 자주 대학생들과 만나는데, 젊은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좋습 니다. 젊은 사람들이 예배에 많이 참석한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요. 어머니와 아들, 아버지와 딸이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이 아 주 보기 좋습니다. 어려서부터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생각해야 합니다. 어렸을 때는 말씀이 잘 들어갑니다. 복잡한 머리가 아 니니까 주는 대로 쏙쏙 들어갑니다. 그래서 어릴 때 배워 놓은 것은 두고두고 우리 인생을 인도해 줍니다. 말씀을 잘 상고해서 그 뜻과 교훈을 내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성장의 길 가운데 말씀이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조직적으로 공부함으로써 우리는 말씀을 대할 때, 심도 있게 공부하는 태도로 읽을 수도 있고 간단하게 읽을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 「어와나」(AWANA )라는 어린이와 청소년 선교 단체가 있는데, 그 이름은 디모데후 서 2장 15절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分辨)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이것을 영어 성경 흠정역(KJV)으로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 습니다 Study to show thyself 「approved un to God, a workman that needeth not to be ashamed」, rightly dividing th e word of truth.

여기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에 해당하는 영 어 문구(Approved Workman Are Not Asham ed)의 첫 글자를 조합해서 따온 것입니다.

 미국의 신학대학을 보니까, 학생들이 반드시 목사나 선교사가 되기 위해서 신학교를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목사님 설교를 듣고는 주일학교에서 배우는 정도밖에 성경을 모르니까 1년 정도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 신학교에 오는 경우가 전체의 약 5 0%입니다. 그래서 일 년 후에는 반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 남 은 사람들은 목회자나 선교사가 되기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우리와는 다른 모습이지 않습니까? 우리 나라의 그리스도인들도 좀더 조직적으로 성경을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목사나 신학생들만이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말입니다. 평신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공부 하면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겨우 설교 듣고 가끔 경건의 시간을 갖는 정도로는 안 됩니다.

 제가 미국의 신학교에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학위를 수여하지 않는 평신도 신학원 공부를 저녁 시간에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기서 이수해야 할 과목은 스물네 개인데, 16년 동안 공부해서 졸업하는 사람을 제가 보았습니다. 그 분들은 한 학기에 한 과 목씩 공부한 것입니다. 미국에는 그런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 우리 나라의 교인들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 시간을 내서 꾸준 히 공부하면 됩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에게 꾸준히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제일 많이 듣는 소리가 빨리빨리입니다. 그 저 빨리빨리 하라고 야단입니다. 그러나 천천히 해도 괜찮습니다.

대신 꾸준해야 합니다. 목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적으로 목회를 잘한 사람들은 한 교회에서 평균 20년을 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11년만 목회를 하고 한국에 왔지만, 한 교회에서 꾸 준히 장기적으로 목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앞에서 말씀드린 디모데후서 2장 15절 말씀으로 되돌아갑니 다. 여기에 나온 힘쓰라는 말의 다른 뜻은 공부하라(st udy)는 것입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 전달되고 있는데도 모를 때가 있는 것 같습 니다. 요전에 『내가 본 천국』이란 책을 읽었는데, 성경에도 없 는 엄청난 이야기를 해 놓았더군요. 성경이 본 천국 하면 아 무도 안 읽습니다. 사도 요한이 본 천국이라고 해도 별로 흥 미를 가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본 천국 하면, 뭘 봤 는고? 합니다. 와, 천국이 이렇대. 천국이 저렇대 하면서 야단 법석입니다. 성경에서 안 그렇다고 하는데도 그렇게 떠듭니 다.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진리를 분변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 렇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를 통해서 보여 주신 것 은 재미없어 하는데 꿈을 꾸었다고 하면 왜 그렇게 재미있어 하는 지요. 물결이 치는 대로 이리 흘러가고 저리 흘러가는 괴상망측한 일들이 한국 교회에서는 많이 있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아는 사람은 듣는 순간 벌써 분간이 됩니다.

그렇게 정확하게 분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공부하 라는 것입니다. 집에서도 책 몇 권을 사서 혼자 공부할 수도 있 습니다. 이제는 시간이 없어서 공부 못 하고 재력이 없어서 공부 못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기회가 없어서 공부를 못 한다는 것 은 변명에 불과합니다. 각 교회에서 제공하는 성경 공부의 기회를 이용할 수도 있고, 「한국 기독교 선교회」의 평신도 신학원 이나 「아시아 연합 신학원」의 평신도를 위한 훈련원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한다고 할 때 dividing이란 단어를 쓰는데, 이것은 목수가 자를 대고 정확하게 줄을 긋고 정확하게 톱으로 잘라 낸다는 것을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조금이라 도 비뚤어지면 서로 잘 맞지 않습니다.

목사로서 제가 원하는 것은, 성도들이 성경 강해와 설교를 들으니 참 좋다 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성도들 스스로가 성경을 읽고 공부함으로써 김목사보다 먼저 성경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 다. 그래서 저도 듣는 축복이 있도록 해 주시면 제 가슴도 풍족 해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좀더 조직적으로 성경을 공부할 때 신앙이 자랍니다.

바쁘더라도 시간을 좀 내야 합니다. 바쁘다 바쁘다 하다 보면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것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영 원한 보상과 영원한 결과와 영원한 성숙함을 위해서 우리들이 조금 씩 시간을 내어서 어디에서든지 성경을 구체적으로 공부할 수 있으 면 좋겠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면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이 됩니 다. 그러나 진리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정확하게 분별하지 못하 면, 어떤 때는 주님을 섬기면서도 방황하게 됩니다. 말씀을 통해 서 성숙해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이것 없이 살다가 주님 앞에 서 부끄러운 일꾼이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요즘은 교육이 많이 발달한 시대여서 훌륭하고 똑똑한 사람이 많습니다. 성경 공부를 잘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말씀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공부해 보십시오.

 말씀을 암송함으로써 운동 경기에는 지켜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제가 어느 날 텔레비 전에서 축구 경기 하는 것을 구경했는데, 한국 선수가 공을 몰고 서 문전으로 공격해 들어가는 것을 중국 선수가 뒤에서 손으로 잡 아당기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축구가 아니고 손구입니다.

그렇게 하면 벌칙입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 때 지켜야 할 원리와 규칙이 있습니다.

기차는 반드시 기차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안 살아, 나는 마음대로 갈 거야! 하면서 기차길을 벗어나면 굴러떨어져서 큰 피해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저를 괴롭히는 말씀으로 생각했습니다 . 내가 인생을 즐기지 못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단단히 작정하 셨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 로 살지 않으면 자유스럽게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하 나님의 말씀이 자유로운 나를 꼼짝 못하게 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요. 그러나 성경을 깨닫고 나니까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 아닙니까?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하나님 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방법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 다.

 부모들이 아이에게 처음 자전거를 사 줄 때에는 자기 아이가 인류 역사 이래 처음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더구나 첫 아이가 자전거를 탈 때는 왜 그렇게 신기한지요! 미국 자전거는 조립이 되어 있지 않고 박스 속에 들어 있습니다.

조립해 달라고 하면 30불을 더 내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그대로 가져와서 열심히 조립을 합니다. 급한 마음에 조립을 서 두르다 보면 부품이 서너 개 남습니다. 그것이 어디에 붙는 건지 알 수가 있어야죠. 한참 궁리를 하다가 박스 속을 들여다보면 종이가 한 장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설명서입니다.

그 설명서 1번에는 조립하기 전에 반드시 이 글을 먼저 읽으십 시오라고 씌어 있습니다. 그것을 읽어 보고 조립하면 제대로 되 는데, 혼자서 잘났다고 막 조립하다 보면 몇 개가 남고, 그런 상태에서는 자전거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만든 사람이 다 알아서 조립하는 방법을 적어 놓은 것이 있는데도, 그것을 읽고 그대로 하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대학 졸업생인 내가 그것 하나 못해 . 자전거야 바퀴 달아 놓으면 가는 거지 하고 시도했는데 안 됩니다. 만들어 놓은 사람이 자기가 말한 대로 하라고 하는 이유 가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만 자전거가 자전거 구실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었을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잘 만드셨습니다 . 또 보람있게, 멋있게 영원히 사는 길도 알려 주셨습니다. 자 전거가 제대로 조립되기만 하면 그것을 타고서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데, 그 설명서를 안 읽고 자기 마음대로 하니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자전거 조립하는 것을 잘 알면, 훈련이 되어서 어느 자전거든지 조립할 수 있고 조금만 잘못돼도 고칠 수 있습니다.

즉, 기본적인 내용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해 줍니다. 성경은 우리가 배우고 읽고 공부하고 암기해 서, 필요할 때마다 즉시 그 말씀을 적용함으로써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성공적이고 풍성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한 것입니 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굉장히 관심이 많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 까지 읽으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행복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이 있 는가를 찾아보니 굉장했습니다. 우리가 원만하게, 성숙하게, 보람 있게 잘 사는 것이 하나님의 최고 목표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 님의 영광이 첫째이고 그 다음에는 우리의 행복입니다. 인간이 영 적인 존재로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아직도 그것을 모르고 어둠 속에서 헤메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흔아홉 마리 의 양을 두고 한 마리의 양을 찾으러 간 목자와 같이 안타깝게 우리를 바라보며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주님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가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 기를, 그리하여 우리가 마지막 숨을 내쉴 때 주여, 저에게 보 람 있는 삶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 다.

우리로 하여금 풍성하고 만족한 삶을 살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이 땅에 이루며 살 수 있게 해 주신 것, 그리고 주님과 이웃을 섬기며 살 수 있도록 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이런 삶을 살고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우 리가 그 목적대로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컴퓨터에 어떤 자료를 입력하든지 넣은 그대로 출력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 속에도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오고 좋은 것을 넣으면 좋은 것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 속에, 우 리의 머리 속에 언제든지 들어 있어서 우리의 삶을 항상 인도해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암송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앞에서 예를 든 중국 선수의 경우에, 경기를 하다 말고 축구 규 칙이 적힌 책자를 꺼내 보고 그 상황에서 상대방 선수를 손으로 잡아당겨도 되는지 안 되는지 알려고 하면 이미 늦습니다.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 속에 완전 히 들어 있어서, 어떤 경우를 당하든지 말씀을 거쳐서 생각하고 느끼고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암송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시편 119편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 이다(Thy word I have 「treasured」 in my heart that I may not sin against Thee).

여기에 영어로 된 부분은 NASB(New American Sta ndard Bible)에서 인용한 것인데, 내 가슴에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물처럼 잘 보관했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죄입니다.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끊어 버리고 나 자신을 파괴시켜 버립니다. 또 나와 내 이웃의 관계를, 나와 내 가족의 관계를 깨뜨립니다. 죄가 우리 의 원수입니다.

 제가 전도를 하니까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예수 믿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예수 믿으면 불편해서 그렇습니다. 교회만 가면 이것은 하라, 저것은 하지 말라 하는데 안 들으면 속이 편하지만 듣고 나면 불 편해서 그렇습니다. 안 할 수도 없고, 할 수도 없고 하니까 저 는 아예 교회에 안 갑니다. 교회에서 야유회 갈 때는 예외지만요 .

저희 교회의 야유회에 와서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하는 그에게 그러려면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나 기독교는 뭘 하라, 뭘 하지 말 라 하는 식으로 복잡하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단 한 가지만 하지 말라고 합니다. 골프를 쳐도 괜찮고 설렁탕을 먹어도 괜찮고 등 산을 가도 괜찮고 피아노를 쳐도 괜찮고 물구나무를 서도 괜찮고 무엇을 해도 괜찮은데, 꼭 하나만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죄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면 당신이 다치기 때문입 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 당신 사이가 나빠지기 때문입니다. 또 한 직장 생활에서 문제가 되고 밖에 나가서도 문제가 됩니다.

 기독교에서는 죄 하나밖에는 금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에 덴 동산 복판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그 실과만 먹지 말라고 하시고 동산의 과일은 뭐든지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죄의 과일을 안 먹으면 무엇을 해도 하나님께서 나무라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사람을 부자유스럽게 만들지 않습니다. 죄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죄가 당신을 괴롭히고, 파괴시키고, 당신 자신과 당신 가족과 당신이 속한 사회와 국가와 세상을 망치기 때문입니다.

즉, 부자유해지기 때문입니다. 범죄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보물처럼 간직해서, 그 말씀이 나를 지켜 주도록 해야 합니다.

 여행을 가도 그렇습니다. 혼자 있으면 엉뚱한 생각이 날 수 있습 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저 하늘에도 계시고, 저 바다 끝에 가 도 계시고, 저 호텔 방에 가도 계시고, 저 지하실에 가도 계시 고, 저 숲 속에도 계신다는 시편 139편 8-10절 말씀이 생 각난다면 아이쿠, 정신 차려야지 하면서 조심하게 될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언제나 있을 때, 다시 말해서, 말씀 을 암기해 놓았을 때 그 말씀이 우리를 범죄하지 않게 합니다.

제가 이 교회에 와서 많은 감동을 받습니다. 이 교회가 훌륭한 교회구나, 교인들이 참 훌륭하구나 하는 것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강하게 느낍니다. 얼마 전에 다락방 모임 때 교인 들이 나와서 많은 성경 구절을 암송하는데 제가 보고서 참 잘 됐다. 제대로 됐다! 했습니다.

목사님을 위해서 말씀을 암송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암송은, 말씀을 가슴 속에 보화와 같이 간직함으로써 범죄하지 않는 삶을 사는 참으로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 위한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어른들보다는 어린이들이 더 잘합니다. 어른들은 머리 속에 복잡한 것이 많아서 잘 암기하지 못합니다. 어느 교수님이 말하기를 나이가 들면 두 가지 증세가 나타나는데, 하나는 잘 잊어버리는 습관이 생기는 것이고 또 하나는 도무지 기억이 않나 네요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예수 믿으면 손해가 얼마나 많은지요. 오륙십 세가 되어서 예수 믿으면, 돌아가실 때쯤에는 찬송가 하나도 끝까지 외어 부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주님께 갈 때가 되어서 마지막 숨을 내쉬며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하든지 암송해 놓은 찬송이나 말씀을 입에 달고 떠 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임종 시에 그렇게 힘든 상황에 서도 찬송가 가사를 몇 절씩 줄줄 암송하는 사람을 가끔 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주기도문도 못합니다.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 주님의 말씀을 많이 암송해 놓음으로써, 우리의 몸이 피곤해서 일어나지 못하고 성경을 읽을 수 있는 힘조차 없을 때에도 말씀 을 암송하고 묵상하고 그 말씀 속에서 새로운 힘을 얻어서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신앙 생활을 늦 게 시작하면 아무리 말씀을 암송하려 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제 장모님 칭찬을 좀 해야 되겠습니다. 장모님이 62세에 예수 믿게 되었는데, 지금 80세인데도 매일 기도하고 찬송하십니다.

제 막내 딸이 어려서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자랐습니다. 두 살짜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할머니와 함께 예배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것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장모님이 젊어서 찬송을 안 배워 놓으니까, 가사는 정확한데 곡조는 전부 편곡이 되어 버렸습니다 . 장모님은 음악적인 소질이 참 많으신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똑같이 편곡을 해 놓으셨는지…. 그러니까 두 살 난 제 딸이 할머니의 찬송을 똑같이 배웠습니다. 지금까지도 우리 다섯 식구가 찬송하면, 할머니는 작곡하셔서 합니다. 연세가 많아서 예 수 믿게 되니까 손해입니다. 어렸을 때, 머리가 말짱할 때, 찬 송과 말씀을 머리 속에 잘 담아 두는 사람의 신앙이 성장하는 것 입니다.

 말씀을 순종함으로써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으 로써 읽고 듣고 묵상하고 공부하고 암기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습 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서 1장 8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 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 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여기에서 형통하리라는 말은 성공하리라는 의미입니다. 율법 을 주야로 묵상하고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지켜 행하라 했는데, 한꺼번에 모든 말씀을 다 행하기는 어렵습니다. 깨달은 것만큼만 순종하고 행동에 옮겨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깨달아서 알게 되는 것은, 그 말씀을 행동으로 옮겨서 순종할 때입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은 머리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머리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손과 발로 아 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행하지 못해도 오늘 느낀 것만큼만 당장 행동해 보십시오. 그러면 성경 말씀을 확실하게 알게 됩니다.

자기 것이 되는 것이지요.

 순종이 계속되고 반복될 때, 늘 순종하지 못해도 순종하려고 계속 노력할 때, 우리의 신앙은 성장합니다. 우리 신앙 생활은 다 이루었다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 말은 예수님밖에 할 수 없습 니다. 사도 바울도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 었다 함도 아니라…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 으려고 푯대를 향하여…좇아가노라(빌 3:12-14)고 했습니다 .

우리는 연약해서 범죄할 수 있고 쓰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쓰 러진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쓰러졌다 일어나는 것이 중 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 기시고 인도하시고 돌보십니다. 우리가 실수하고 잘못하는 것이 그 리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근본적으로 무엇을 원하 는가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마음 속에 어떤 동기가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여기서 뜻이란 말은 영어 성경 NASB에 intention 으로 나와 있습니다. 즉, 정말 내 가슴 속에서 원하는 것, 내 마음의 동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설령 부족하고 실수가 있어 도, 근본적으로 우리 가슴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의 말씀을 배워 서 계속 성장해 가면서 살기를 원하는 것,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 다. 얼마만큼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동기가 더 중요합니다 .

 성경에 나타난 아브라함이나 다윗 같은 인물이 얼마나 실수가 많습 니까?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극히 사랑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들이 실수를 안 해서가 아니라 주 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부족한 점이 많지만 한 가지 주님께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 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고 주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며 살기를 간절히 간절히 원한다는 사 실입니다. 노력하고 노력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 우 리는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 아름답고 귀한 말씀을 좋아하게 되고 , 원하게 되고, 읽고 싶고, 듣고 싶고, 공부하고 싶고, 암기 하고 싶고, 순종하고 싶어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장의 길입니다.

 예수 따라 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늘 함께하시리라.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우리는 지금 신앙의 성장을 원하고 성장을 도모합니다. 우리가 성 장해서 성숙한 사람들이 될 때에, 교회가, 사회가, 국가가 변할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때문에 이루어질 줄로 저는 믿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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