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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보배을 질그릇에 (고후 0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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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각사람에게 가장 보배로운 것이 있다. 그러나 이 보배로운 것을 어디에 저장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말씀을 묵상하므로 인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보배가 무엇인지 또는 그것을 어디에 담아 놓을 것인지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있다.
성도는 단지 ‘흙으로 만든 그릇’에 불과 하기에 그 그릇안에 무엇이 담겨 있나에 따라서 그 그릇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연약한 존재란 사실이라는 것이 나타난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을 “(행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기에 쓰임을 받기 위해서 성도들은 항상 깨끗하게 비어 있어야 한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그릇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확인하고 성도들의 그릇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보배를 담겨있는 그릇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질그릇 인생
그런데 인생을 가리켜 질그릇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릇 중에는 금그릇, 은그릇,나무그릇,돌그릇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질그릇이냐 하면 질그릇은 깨지기 쉽고 천하다는 의미에서 사람을 질그릇에다 비유했습니다. 이 질그릇의 특성과 가치만 생각할 때는 사람은 자기를 미워하고 자학하고 열등의식을 갖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람을 3가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째로,사람을 지나치게 높여서 크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초인적인 존재로 생각해서 무엇이든지 하면 된다. 불가능은 없다라는 말까지 하게 되는 데 사실은 어리섞은 소리입니다. 우리가 살아 오면서 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중에 자신의 힘으로 가능했던 것이 얼마나 됩니까
인간을 너무 과시하는 거은 어리섞은 것입니다. 아무리 큰 소리르 쳐도 질그릇 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둘째로, 그와 반대로 인간을 형편없는 존재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잘것 없는 흙으로 보고 자연으로 보고 동물 이하로 낮추어 버리는 사상입니다.
이것은 불교의 사상입니다. 물론 인간은 자연을 먹고 살며 자연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도 자연을 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 위에 있으며 만물을 지배하며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는 존재입니다.
세째로, 인간을 신과 동물 사이의 존재로 생각하는 사상입니다. 인격과 지식을 가졌다고 하여 그 사람이 신 다음의 중간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며 무식하다고 동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인간을 구별하는 것은 오만한 생각입니다. 문화인이니, 성인 군자니, 철인이니 하는 것은 모두 인간의 교만한 마음의 산물입니다.
어떤 때는 종교마저도 인간을 인간 이상으로 만드는 하나의 방편으로 소개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 이상이안됩니다.
인간은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지않고 다른 무엇이 그에게 하나님이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2. 그릇의 가치
그릇의 가치란 그릇의 질이나 모양에 있지 않고 그 내용에 있습니다.
무엇이 담겨졌느냐에 의해서 가치가 평가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인간을 흙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부인해서는 인됩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흙으로 지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효합니다. 질그릇은 흙을 구워서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그릇아라도 그릇의 의미와 그그릇속에 든 내용에 따라 가치가 평가 되듯이 인간의 값도 그 속의 내용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얼마나 깨끗하게 보전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값이 평가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창6:3에 보면 서럼아 육체거 되므로 하나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않겠다고 했읍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떠나 버리고 흙덩어리만 남은 인간은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고 육체(고기덩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하나님의 심판은 육체 위에 내려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져야 귀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보화가 우리 질그릇 속에 있는 한 이 질그릇이 높이 평가를 받고 자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보화를 담은 질그릇으로서 긍지를 가져야 하고,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질그릇의 강해짐
1)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싸이지 아니하며
이 말씀은 우리에게 모든 종류의 시험이 가해지지만 피할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할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치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험하다절망적일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속에 든 보화가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육신은 비록 고통스럽고 비참한 형편이라도 내 안의 영을 위해서는 언제나 하나님 품으로 피해 각 길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느니라 ,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희를 자유케 하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은 구속받지만 영은 자유한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사람(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길이 없는 막다른 상태, 즉 우리가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있습니다. 어둡고 불안스러운 때에는 하나님께서 어디론가 나를 인도하고 계심을 확신하게 될때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여 당신은 나를 사랑하심을 믿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주님과 함께 있는 한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3)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뒤를 뜻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핍박을 받을 때, 친구가 나를 배신할 때) 하나님으로부터는 버림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쟌 다크가 그의 동지들로부터 버림을 받았을 때 홀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만이 좋은 일이다. 하나님의 우정, 하나님의 도움, 하나님의 사랑은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 그의 힘 안에는 나는 죽기까지 용감하고 용감하고 용감하리라 고 했고, 시편 기자는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실 것이라 (시27:10)고 했습니다.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시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4)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며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특징은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이맞아서 아파서울지만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일등다.하는 것이 아니고 꼴찌도 할 수 있고 병도 들 수 있습니다. 사업에 성공만 하는것이 아니라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일단은 사람입니다. 자연과 세상의 법칙을 초월하며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당하는 것을 얼마든지 넘어설 수 있는 길과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질그릇은 약하고 천한 것이지만 보배는 귀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4. 약한 질그릇에 보화가 있는 이유
바울은 자기의 연약한 그릇에 보화가 담겨진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왜 질그릇에 보화가 담겨져야 하느냐면 그것은 이는 능력의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7)고 했습니다. 오묘한 해답입니다. 고후12:9-10에 보면 약한 데서 온전해지니 약한 것을 자랑하고 약한 것을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약한 질그릇 속에 보화를 담은 것은더욱 보화를 빛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졌을 때 주님이 일하시니 내가 얼마나 좌절했고 죽어졌느냐에 의해서 그리스도인의 역량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비릇 약한 질그릇이라도 그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가 담겨있기에 우리는 나의 못남이나 연약함에 대해서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연약함이 오히려 보화를 빛나게 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질릇속에 보화가 여전히 질그릇은 질그릇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질그릇이 금그릇이라도 변화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질그릇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간혹 실망하고 낙심하고 좌절할 때가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남이 나를 인정해 주지 않고 대접해 주지 않을 때,혹 실수라도 했을 좌절해 버리고 비참해집니다. 왜냐하면 질그릇이라는 사실을 잊고 별 수 없는 존재야 라고 생각하여,잘못하면 깨지니 스스로를 조심스럽게 다루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남편된 자들아. 아내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벧전3:7)고 했습니다. 더 연약한 그릇이어서 잘못하면 깨지기 쉬우니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그 속에는 보화가 들어 다루지 맙시다.자기를 미워하는 것도 남을 미워하는 것만큼 죄입니다. 자기를 아끼고 사랑해야합니다.
사도 바울의 위대한 점은 바로 자기의 질그릇 됨을 시인하는데 자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하는데 알았습니다.
고후6:8-9에 보면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죽는 자 같으나 살고,징계를 받는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자 같으나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부요하고,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 고 고백했습니다.
질그릇인 성도들은 이제 보배을 담은 귀한 그릇으로 인하여 마음 속에는 견고한 믿음이 있게 된다. 본문에서 「믿음의 마음」이란 것은 믿음의 태도,믿음의 모습을 뜻하고 있는 것입니다.
승리하게 하심
은혜와 감사가 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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