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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리석은 사람아 (눅 12: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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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2장에서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7)는 말씀과 "염려하지 말라"(22)는 말씀을 하시는데, 그 사이에 자기 형과 재산 문제로 분규 가 일어 해결해 달라는 사람이 찾아옵니다. 이때나 그 재산 분규의 근본문제는 탐심이라고 지적하시고,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에 넉넉 함에 있지 않으니 탐심을 물리치라는 근원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그 리고 그 제자들을 향해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염려하지 마라고 당부 하시면서, 이 사건과 관련하여 제자들을 교훈하시기 위해서 '어리석은 부자'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의 말씀을 상고할 때, 피차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는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첫째, 밭의 소출을 풍성하게 거둔 것이나, 그것을 처리할 계획을 세우는 것은 어리석음이 아닙니다.

비유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어리석은 사람을 책하고 계시 는데, 그 사람이 밭에 소출을 풍성하게 한 것이 어리석음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농사를 지었으면 기왕에 풍년이 되어져야 좋은 것이지요.

장사를 했으면 남겨야 하는 것이고, 기업은 이익을 남기는 것이 목적 이지요. 그러므로 이 부자가 농사를 지었던, 사업을 했든 이익을 많이 남겼다는 사실 자체가 어리석은 것은 아니지요. 또한 그가 마음에 생 각하기를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면서 많은 소 출을 어떻게 처리할까 계획을 세우는 것도 어리석은 태도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지혜로운 생각이지요. 갑자기 많이 들어오니까 방탕 할 수도 있지만, 이 사람은 그것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경영을 해볼 까' 하고 궁리했다는 것 자체는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람 직한 태도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이 사람을 어리석다고 책하셨을까요 이 부자가 어리석은 것은 첫째,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모든 곡식 과 물건을 자기만을 위해 거기 쌓아 두고 어쩌자는 것입니까 아직 가난한 사람은 먹을 것이 없는데, 그것이 돌면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 을 줘야 할 것인데 쌓아만 두면 어쩌자는 것입니까 가진 사람이 매 점 매석을 하면서 자기의 부만을 위해서 계속해서 축적을 시켜 가면 다른 사람은 어째라는 말입니까(한보사태, 쓰레기 봉투 한꺼번에 구 입) 자기만을 위해 쌓아 두는 것,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생각지 않는 것, 이것이 어리석음의 출발입니다.

여러분도 혹시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수 익과 재산을 나만을 위해 쌓아 가고 있는지, 아니면 그것을 이웃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지 깊이 돌이켜 봐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이 부자가 어리석은 것은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말하면서 자 신의 영혼까지도 물질로 즐길 수 있다고 여긴 점입니다. 이것이 이 사람의 치명적인 착각이고 어리석음입니다. 영적인 것은 육신적인 것 8으로 채워지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부분은 육체보다 영혼인데, 영혼을 위한 대책은 없었으며, 특히 내세는 생각하지도 않 았다는 것이 큰 잘못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오늘 여러분의 영혼과 내세를 생각하여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다면 정말 지혜로운 사람입니 다. 그러나 혹 그런 마음 없이, 이 세상의 부로 여러분의 영혼까지도 안식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본문의 부자처럼 어리석은 사람이라 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셋째로, 이 사람의 더 절대적인 어리석음은 하나님께서 오늘밤에 라도 자신의 영혼을 부르실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데 있습 니다.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신다고 했습니 다. 그런데 이 사람은 물질을 많이 쌓아 놓으면 죽는 것까지도 그 힘 으로 좌지우지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부모나, 세사의 법이나, 목사를 거역할 수 있고, 심 지어 성경과 하나님을 거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어 떤 경우에도 거절할 수 없는 것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죽음 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죽음 후에는 천국과 지옥이 영 혼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렇다면 오늘 형통했을 때 내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살다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영생을 상속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와 책임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그 책임을 그 결과를 미 리 예견하고 사는 것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고 살면 오 늘 주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자기를 위해서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 께 대해서는 부요치 못한 자가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주께서 여 러분을 보시며 '어리석은 사람아!'하고 책하시지 않을지 깊이 자신을 성찰해 보십시오.

 오늘의 그리스도 인(

3.1.절기예배) 엡2:13-18

━━━━━━━━━━━━━━━━━━━━━━━━━━━━━━━━━━ 오늘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하여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고 망국의 슬픔을 견디 어 내다 분연히 일어났던

3.1절 기념주일입니다. 우리 총회 산하에 여전도회 전 국 연합회에서는 매년 마다 이날 전국의 여신도들에게 한끼를 금식하면서 나라 를 위하여, 국군장병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전국 교회 여성들이 꼭 같은 본문과 제목을 가지고 함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의의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면 이렇게 함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됨의 공동체임을 의식하는 계기가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봅니다.

 사실 우리가 나라를 잃어버리고 일본 사람들 밑에서 인간 이하의 착취와 인 권을 유린당했던 것도 보면, 서로 하나되지 못하고 당리당쟁의 결과 였음을 인정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1919년 3월1일 맨주먹으로 '대한 독립만 세'를 외쳤던 주도적 세력은 우리 기독교인들이었음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오늘 다시 이런 뜻깊은

3.1절을 맞이하면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실정에서 어떤 형(型)의 그리스도인이 요구되는가를 성경 속에 생각해 보려고 합 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역사 속에 오셔서 우리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 하시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준 삶의 모습을 되새겨 보아야 하겠습니다.

 1. 그리스도는 참(眞)을 위하여 악한 세력들에게 저항(抵抗)하였습니다.

저항이란 말은 반항(反抗)이란 말과 좀 달리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항(對抗)이란 말과도 구별되어야 할 것입니다. 소위 '與'에 대한 '野'의 입장이 라는 그런 관념과도 달리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즉 저항이라는 말은 글자풀이 되려 보면, 반대적인 그릇된 것이 세력을 펴지 못하도록 견제(牽制)한다는 의미 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말은 어떤 기성 세력에 대하여 열등의식을 가지고 빗 나가는 반응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저항적인 모습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자라나신 곳이 나사렛입니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성경 이사야서를 읽고 말씀하신 후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나사렛 사람들이 분이 가득하여 예수를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산 낭떨어지까지 끌고 가 밀쳐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은 저들 가운데로 걸어 지나갔으나 아무도 그를 해치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항적 모습입니다. 회당에서 읽은 이사야서란 다름이 아니라 선지자가 고 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하였다는 말에 나사렛 사람들이 자기들을 지칭한다고 분이 났어 예수를 동네 밖으로 끌고 가 낭떠러지에 밀쳐 버리려고 했지만 정작 그의 당당한 모습 앞에 아무도 손을 대지 못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눅13:31-33절에 보면, 어떤 바리새인이 예수께 와서 "여기를 떠나소서, 혜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라고 일러 주었을 때, 우리 주님께서 무어라고 말했는가 하면,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라.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삼 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고...혜롯왕을 '여우'라고 칭하는 우리 주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런 것이 저항적 자 세입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거짓된 종교 지도자들과 사회악에 근원이 되었던 정 치권력자에게 저항적 자세를 취하였습니다. 거짓됨과 사악함의 세력 앞에서 분연 히 일어서는 저항이었습니다.

 오늘의 요구되는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형의 그리스도인이어야 하겠습니까 거짓됨과 사악함에 당당하게 그 가운데로 걸어나갈 수 있는 저항적 그리스도 인입니다. 그리고 모순과 악이 그 세력을 펴지 못하도록 막아서고 견제하는 저항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개개인보다는 공동체적인 의식 으로 한 몸을 이룬 교회들이 이렇게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의

3.1.

정신의 계승이란 다름 아니라 바로 이런 <저항의식>입니다. 우리 사회의 만연된 온갖 <거짓>과 <모순>에 대하여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저항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해방후 오늘까지 우리들의 모습을 자화상으로 그려본다면 그렇지 못 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멍에에서 벗어나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 와 기쁨을 여호와께 돌렸으나, 쉽게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불평불만에 쌓였던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라고 애국가는 불렀 지만, 그 기쁨도 잠시일 뿐, 한국 교회는 서로 반목하고 싸우고 분열의 분열을 거듭해 온 것이

8.1

5.이후 한국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도리어 모순과 악을 포섭 하고 있는 세력에 대하여 추파를 던지고 아부하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하여 수단 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이 교권주의자들의 오늘까지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교권을 쟁취하는 것이 교회 회의의 전부인 것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노회나 총회가 사회를 위하여 무엇을 하려는 의지 보다, 누가 이번에 총회장이 되었는가 에 더 관심을 가지는 형편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 면에서 성전을 청 결케 하셨던 우리 주님의 저항적 자세를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인의 참 모습은 반항을 위한 반항도, 대항을 위한 대항도 아닌 참을 위한 저항이 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필요한 그리스도인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2. 오늘의 필요한 그리스도인은 끊임없는 자기 혁신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위에 오셔서 죄 없으신 분이 죄인의 모습으로 항상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면서 자기를 쳐 복종시키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 우리는 주님의 처절한 자기를 포기하는 기도문을 읽게 됩니다. 그도 육신을 입은 인간이 었기에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게 하옵소서'라고 진솔한 기도를 하 였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 소서'라고 자기를 온전히 비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오늘의 필요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찾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저항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는 없습니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자기 혁신이 필요합니다. 자기 안에 있는 온갖 부정부패 의 요소들과 싸워서 자기를 지키는 노력들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사도 바울은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날마다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날마다 죽는다 는 것은 날마다 자기 혁신 속에서 산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바울은 '그리스도 안' 에서란 말을 자주 하였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고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이 자기를 스스로 지키는 일입니다.

그래서 잠언서 에는 '마음을 지키는 것이 성을 뺏는 것 보다 더 힘들다'고 하 였습니다. 정치가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처음 정권을 쥘 때는 누구나 잘해 보려 고 할 것입니다.

 5.16 혁명세력들도 처음에는 잘해 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 는 말처럼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오늘의 두 사람의 대통령이 영어의 몸으로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민정부의 대통령이 그렇게 개혁을 강조하고 부정을 막으려고 했지만 오늘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모 두 사람의 마음은 부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처럼, 내게 그렇게 하 지 않도록, 그렇게 부패하지 않도록 능력 주시는 그분 안에서만 가능할 뿐입니 다. 아무리 법을 개정하고, 제도를 바꾸어 보아도 예수의 영이 그 마음을 지배하 지 못하면 다 똑 같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섰다하는 자는 넘어질 가 조심하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4:22-24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 습을 쫓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자기혁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심령으로 새롭게 되라>고하였습니다. 어떤 제도나 법으 로 새롭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심령, 마음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 다. 그 마음이 구습을 쫓는 옛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는 도저히 새롭게 될 수 없 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이 새로워지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령의 역사로만 새로워 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만 가능합니다.

예수 믿고 새 사람된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지배를 받도록 힘쓰는 사람들이어야 합니 다. 그런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야 좀 낳을 수 있습니다. 덜 악할 수 있고, 덜 타 락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미국이, 왜 영국이, 불란서가, 독일이, 스위스가, 선진국가라고 합니까 그래도 조상때 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를 지키며, 반 성하는 사람들이 있는 나라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완전한 사람이 있겠습니 까 하지만, 그래도 날마다 자기를 반성하고, 기도하고, 말씀에 입각한 삶을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 사회는 그래도 덜 타락할 것입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어야 하겠습니다.

 3. 오늘의 필요한 그리스도인은 언행일치의 책임적 그리스도인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책임의 사 람들이어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오늘의 그리스도인의 아쉬운 모습은 연대적 책임 의식이 없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것은 언행의 책임 입니다. 말이 곧 보증서라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당신의 뜻을 펴 나가십니다.

 오늘 우리 관공서나, 무슨 허가 서를 내려고 해 보면 웬 그렇게 많은 서류와 도장치는 곳이 많은지.... 지난번 월부로 교회에서 심방용 차를 한대 구입하면서 교회 대표자인 내가 싸인 했으면 그것찵막I 믿어야지, 교회소속증명과, 교회도장 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것을 입증하는 인감증명과, 또 김이봉 목사가 가짜 목사 가 아닌지 노회의 소속증명서와, 내 도장이 정말인지 아닌지 개인 인감도장과, 그리고도 모자라 주민등록 앞뒷면 사본을 첨부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불 신 시대입니까 그 사람의 말을 믿지 못해서 종이쪽지와 도장을 믿으려하는 세 상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말의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어야 하겠습니다.

 1900년대 초기의 미국의 한 신문사장이었던 에드워드 북크는 자기의 자서전 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북크는 어렸을 때 부모 없이 화란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인데, 그가 이민 올 때 그의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늘 마음 속에 간직하였는데 할아버지가 무엇이라고 말씀하였는가 하면, "네가 어디에 있든지 네가 있음으로 그 곳이 무엇으로든지 변해지기를 바란다" 고 한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언론계에 투신하여 미국의 여론을 바르게 잡아나가려고 애썼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디에 있던지 그리스도인들이 있음으로 그 자리가 무 엇으로든지 변해져야 하겠다는 말은 참으로 우리 모두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을 세상에 태어 나게할때는 가정이나, 한 사회 의 집단 속에 일원이 되게 하는 동시에, 가족이나 민족이라는 연대성을 지니고 태어나게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성도들의 경 우에서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부터 교회라는 공 동체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나의 삶이, 나 하나로 출발하여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서로 연관된 관계 속에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만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연장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하기전, 형제와 화목하고 와서 내게 예배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한 사람이 잘못함으로 온통 교회가 다 욕을 먹게 되고, 우리 한 사람이 잘못함으로 예수 믿는 사람 전체가 다 욕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 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필요한 그리스도인은 연대책임감을 느끼고 살아가는 사 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특별히

3.1.절 기념예배를 드리면서 이제 우리는 과거를 씻어 버리고, 새 로운 각오로 다시 시작하여야 하겠습니다. 대통령의 사과성명을 들으면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 된 모두가 저러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한다면 분명히 새로운 삶 이 시작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제 거짓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저항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항상 자기혁신 의 개혁으로 성령의 사람들이 되어, 연대 책임의식을 가지고 산다면, 우리 대한 민국은 그야말로 전 세계 앞에 하나님의 택한 제사장 나라가 될 줄 분명히 믿습 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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