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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안에 새사람 (고후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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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와 BC는 예수의 탄생을 기점으로 해서 생겨진 용어이다. 저 골고다 언덕에 예수의 십자가 양 []에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의 인생 최후의 방향은 예수님을 두고 갈라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태양의 빛이 비춰지는 곳과 비치지 못하는 곳의 상태는 온도와 광도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보게 된다. 포도나무의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을때와 떨어져 있을때의 차이는 생과 사의 관계이다. 이렇게 예수안에서와 예수 밖에서의 인생은 정반대적인 현상임을 알수 있다. 여기서 예수안에 있는 인생과 예수밖에 있는 인생의 차이는 서로 상반된 모습의 인생을 알수 있는 것이다.

1.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하신 것처럼 외형으로는 예수를 믿는 것 같으나 내용으로는 신앙과 전혀 무관한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몸은 교회에 와 있으나 마음은 딴 곳에 가 있는 사람, 외형으로는 성경 찬송가를 들고 교회에 나오고 교회 등록을 하고 모든 의식에 참여한다해도 그 중심이 다른 상태의 사람이라면 그느 예수 밖에 있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나는 길아라고 하셨으니 예수안에 있는 자는 참 삶의 길을 걷고 있거니와 예수 밖의 인생은 길을 잃은 방황하는 인생일수 밖에 없다.
예수님은 나는 생명이라 하셨다. 예수안에 있는 자는 생명 가운데 있는 자요 예수 밖에 있는 자는 살았으나 죽은자이다. 예수님은 빛이라 하셨다. 예수 밖에 있는 인생은 어두운 가운데 있으나 예수안에 있는 자는 빛가운데 사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다. 예수안에 있는 자는 풍성한 삶을 살지만 예수밖에 있는 사람은 굶주린 인생이다.
이와 같이 예수안에서와 예수 밖에서의 인간의 상반된 인도주의 상태는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아에 있으면" 남자인든 여자이든 부자이든 가난한이든 문화인이든 미개한 인간이든 노인이든 젊은이이든 그 어떠한 처지의 사람이라도 예수그리스도안에 인생과 그 밖에 있는 인생의 차이는 두가지 일수 밖에 없다. 빛가운데 살든지 빛없는 어두움에 사는것. 생명가운데 살든지 곤고한중에 살든지 두길 밖에 없다.
예수 안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뵈올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안에서만 뵈올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내가 아버지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안에 계심을 믿으라"(요14:10,11)하셨다. "예수안에 모든 신령한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골2:3)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이 예수그리스도안에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로 선택 됨도 예수안에서 우리 죄의 속죄함도 예수의 피로 하나님의 약속된 모든 기업의 축복도 예수안에 있는 것이다. 요15:1-7까지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는 예수안에서 있는 자와 밖에 있는 자의 상태를 보여준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 위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안에 내가 저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2. 새로운 피조물

우주 삼라만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아 하나님과 교제하며 만물을 다스리며 살도록 지음받은 존재이다. 그런데 인간속에 있는 하나님은 형상이 파괴되어 산산조각이 난 상태가 되었다. 선과 진실과 거룩함과 영화로움이 다 깨져 버렸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인간부패는 만물까지 파괴되어 탄식하게 되었다. 자연파괴 생태계의 파괴가 되어 만물의 마지막이 될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인간은 허물과 죄로 죽은자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일에 무지한 자가 되었고 거룩한 삶에는 무력한 자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해하기에는 미련할수 밖에 없게 되었다. 저희의 결국은 멸망일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일찌기 내가 새일을 하리라. 크고 비밀한 일을 하리라 하셨다. 그일은 독생자를 보내사 우리의 죄를 담당케하사 저를 믿고 영접하는 자를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주시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사 새 창조의 사람을 만들게 하셨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인간은 하나님의 나라를 볼수도 없고 들어갈수도 없었으나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 죄를 대속해 주셨으므로 저를 믿는 자 곧 저를 영접하는 자는 성령으로 죽었던 영을 살리사 부패했던 성품이 신의 성품으로 소생케 하시고 모습은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도록 거듭나게 하신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은 생명이었다.
그 말씀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하셨는데 베드로는 "주께는 영생하는 말씀이 계시매 내가 뉘게로 가오리까" 고백했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서 썩고 있는데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니 살아 나왔다. 지금도 아들의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나게 된다.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말이 너희안에 거하면"하셨는데 유대인들의 마음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공백이 없었다. "내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음으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우리의 부패한 심령이 죽은 영이 신의 성품으로 거듭나야 하고 우리의 모습이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으로 거듭나야 한다. 예수안에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정상이다.

3.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다.

예수안에서 새 피조물된 거듭난 사람은 이제 그의 삶의 모습이 새로워져야 하는 것이다.
"거듭나기 이전의 우리 상태는 무지함과 고집과 교만으로 마음이 굳어져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더러운 욕심으로 행하여 살던 자들이다.
이제는 예수안에서 거듭나 새로워진 성도는 유혹의 욕심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의 습관과 생각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나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이 된것이다.
예수안에서 새 창조된 거룩한 성도는 예수의 사신 모습을 닮아 새로운 사람을 살아가게 된다. 성품이 신의 성품. 예수의 마음을 품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의 종의 몸을 입으시고 십자가의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심 같이 우리는 셤손하여 죽기까지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아멘하여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된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해 당신의 생명전체를 다 주심같이 이기주의적 생활의 이타주의적 삶으로 새로와져야 한다. 불의의 치부보다 의로운 가난을 기뻐하며 육체의 욕구충족보다 성령의 기뻐하시는 삶의 추구를 원하며 현세의 즐거움보다 영원한 세계의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된다.
모세처럼 애급의 부귀영화나 명예권세보다 동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기뻐하며 하나님을 위해 능욕받는 일을 애굽의 보화보다 더 큰 보배로 여길수 있는 심령으로 살아가게 된다.

19세기에 20세기에 올 가장 큰 위험에 대하여 예언한 있다가 예수 밖에 있는가 예수안에 있
다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 밖에서 썩어져가는 옛사람 그대로이다.

예수안에 거듭난 성도가 되었는가. 아직도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버리운 자이다.

예수를 영접한 새 사람이 되었는가. 주님 기뻐하시는 열매 맺는 삶으로 증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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