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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첫번 추수 감사절 (창 12:1, 골 07: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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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운동이란, 16세기 중반에서 17세기 초에 걸쳐 영국에서 크게 일 어났던 신앙운동이다. 이 운동이 갖는 교회사적 의미도 중요하지만 한편 으로 영국역사와 미국개척사에 끼친 영향도 지대한 것이었다. 이 운동은 분명히 교회 개혁운동이었고 보다 성서적인 신앙과 예배의식과 교회정치 에 대한 열망에서 출발했으며 신학적인 주장에 기초한 정신을 갖고 또한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에 대해 정당한 시각을 나타내준 운동이었다.

 영국 국교회를 정화시키고자 했던 개혁자들은 1563년 갠터베리교구의 교직회의를 통하여 전국교회에 청교도 운동을 실시하려 했으나 실패하게 되었다. 드디어 이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어 1567년에 급진적인 청교도 의 지도자들이 대거 체포 투옥당하였으며, 1593년 엘리자베트여왕은 회의 를 통하여 '반청교도령'을 가결시켰다. 이로써 청교도들은 국외로 망명

다음페이지(리턴키) 목록열람(L) 연속출력(NS) 기타(Z) > ns 2혹은 추방당하게 되었다. 1620년 순례자들은 메이풀라워호를 타고 대서양 을 건너 그해 12월 21일 미국땅 플리머드에 상륙한후 아메리카에 정착하 였다. 청교도 운동의 주장의 근본적인 기초는 언제나 신약성서였다. 성직 임명, 교회제도, 설교와 성례전, 교회정치 등 모든 문제에 대하여 청교도 들은 신약성서가 가르쳐 주는 초대교회의 원형을 배우고자 했다. 청교도 들의 신앙과 생활은 바른 신앙과 바른 신학이기를 추구함과 동시에 참으 로 인간사회제도와 정치 경제 문제에 대하여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이념을 제시하여 주었다면 오늘 한국교회는 개혁의 물결 속에서 이들로부터 무엇 을 얻을 것이며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를 재조명해야 할 것이다.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1620년 미국을 향해 떠난 용기있는 결 단과 그후의 극심한 시련을 신앙으로 극복한 인내와 그 속에서도 하나님 께 향한 감사의 생활을 우리는 크게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생명을 내어 놓으라고 요청하신 것이며 아브라함은 이 에 순종하여 고향 화란을 떠남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미지의 세계 어쩌면 죽음에 직면할지도모를 미국을 향하여 대서양을 건너던 청교도들 의 모습을 연상하면서 참된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나의 가진 모든 소유와 목숨까지도 내어놓고 환란과 질고 원망과 좌절을 딛고 감사와 전진을 계 속할 수 있는 용기가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에게 있을까 추수감사절을 맞 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점이 두가지있다. 하나는 사색이요 둘째는 감사이 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요, 감사할 줄 아는 동물이다. 고로 인간의 존엄성은 감사에 있다. 성서는 감사의 생활을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자연 과의 삼각관계의 가장높은 관계상황을 하나님의 역사적 행위로써 표현하 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본다. 인간이 하나님께 대할 태도는 감사 뿐이며 그 감사는 모든 자연을 하나님에게서 선물로 받아 산다는 데서 나온 예배 행위이다. 고로 감사는 인간의 성숙성을 의미한다. 자식이 부모님의 은혜를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부모가 되었을 때이며 제자 가 스승의 은혜를 감사함도 그가 스승의 자리에 앉게 될 때 비로서 깨닫 는다. 인간이 하나님, 인간,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은 감사란 말 뿐이다. 고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망명 한 청교도들은 첫번 추수감사절에서 무엇보다 먼저 자유를 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했고 또 자연의 추수물의 축복을 감사했다. 그리고 그 축복을 이웃과 더불어 나누었다. 청교도들은 최고의 감사를 예배로 표현했다. 고 로 그들의 생활과 문화는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바쳤던 예배의 예술품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경건과 감사는 근대 의 휴머니스트들의 반동으로 금이가고 깨지고 말았다.

 하나님 대신 인간을 찬미하고 예배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자녀의 위 치에서 동물의 위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비극적인 결과로 하나님의 평화는 사라지고, 하나님 없는 동물의 지옥을 만들었다.

추수감사절의 참의미는 첫번 추수감사절 청교도들의 순전한 감사에 기 인되어야 한다. 고로 감사절의 참의미는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서 그 에게 예배로 감사를 표시하게 하는 일이다. 또한 우리는 자연과 문화의 유산에서 감사의 의미를 찾는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자연과 문화와의 부단한 교섭이다. 자연이나 문화 없이 인간은 생존할 수 없다. 우리는 매일같이 공기를 마시며 푸른 하늘 을 바라보는 행복과 산과 물과 아름답게 핀 꽃과 나무와 새의 노래를 들 을 수 있는 행복에 대하여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현대인은 이 은혜에 대한 감사를 망각해 버렸다. 또 우리는 자연에서 뿐만아니라 문화 의 유산에서 감사의 뜻을 찾아야 한다. 현대인은 문명의 온갖 이기를 이 용하면서도 그것에 대한 깊은 감사를 하지 않는다. 우리가 야만생활에서 문명생활로 한 걸음 더듬어 올라가 문화사의 자취를 살핀다면 거치른 자 연을 소재로한 이념의 승리를 하나의 감격으로만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피와 땀으로 엮어진 드높은 마음들의 희생이기 때문이다. 청교도 들이 추수물의 축복을 감사했듯이 우리들도 물질적인 축복에 대하여 감사 해야 한다. 또 한가지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같이 받아야 할 나의 이웃 과의 윤리적인 관계에서 감사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감사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동정의 표시이다. 우리는 날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노상에서 사람들을 대하면서 산다. 인간이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사람을 떠나서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다. 우리는 불우한 이웃에 대해서 사 랑과 동정을 실천한 미담을 300년전 청교도와 본토 원주민 인디안 사이의 교제에서 찾아야 한다. 인종도 언어도 풍속도 생김도 전혀 다른 낯설은 침입자 청교도와 원주민 사이에 벌어진 사랑과 동정은 결국 인류역사에 있어서 유례가 없는 모든 인종과 문화의 전통이 한데 모여 한가족을 이룬 북미합중국이라는 공동사회의 축복이 실현되었고 또 그들이 일찌기 밟았 던 강변에 U.N 본부가 우뚝 솟은 것은 청교도들과 그 이웃사이에서 표시 된 감사의 결과이다. 이러한 이웃과의 사랑과 감사로 엮어진 공동사회는 오늘날 분열되고 피흘리고 싸우는 모든 민족과 지역에도 똑같이 이루어져 야 한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가난한 이웃에게 옷 한 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나누어 줄 수 있는 동정과 사랑이 있다면 이 사 회는 보다 밝아질 것이며 인간들의 입에서는 감사의 표현이 넘쳐 흐를 것 을 믿는다. 이것은 첫번 추수감사절의 감사의 의미이다.

올해도 감사의 계절이 찾아왔다. 교회의 큰 절기중의 하나가 추수감사 절이고 이는 청교도의 신앙과 생활에서 그 뿌리를 찾게 된다. 진정한 청 교도의 개혁정신과 그들의 신앙적 삶을 오늘의 우리 삶의 현장에서 구현 해 감으로 1993년도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뜻깊게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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