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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영상 (히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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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 헨리 듀낭이라는 은행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오래 전부터 나폴레옹을 만 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은행장으로서 세계적 거목이었던 나폴레옹을 만나고 싶어했었고 또한 프랑스와 스위스의 경제 협력의 기회를 가져 보기원했습니 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한번 말로만 듣던 나폴레옹 황제를 만나 보고 싶어했 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드디어 프랑스로 나폴레옹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마침 전 쟁터로 출정을 나가고 파리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듀낭은 거기에서 실망하지 않고 자기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전쟁터까지 나폴레옹을 만나러 쫓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도 그는 황제를 만나지 못하고 오히려 전쟁터의 아수라장과 치열한 전투와 그리고 죽어 가는 부상병들만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을 만나 경제적인 부와 명성을 얻어 보겠다고 하는 꿈은 사라졌으나 그 는 전쟁터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새로운 꿈 하나를 간직합니다. 그것은 평화에 대한 꿈이었습니다. 또한 전쟁 등으로 부상당하여 고통 하는 자들을 돕기 위한 무엇 을 만들어야겠다고 하는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저 유명한 적십자사이고, 결국 그는 첫 번째의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한 인간이 가진 꿈이 마침내 실현되어서 적십자가 탄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 서남북을 바라 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창13:14-15) 아직 그 땅에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거주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땅을 보라고 하십니다. 앞으로 이 땅에서 네 자손들이 살게 될 것이 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이제는 그가 바라 본 땅에서 자손들이 편만하게 사는 모습 을 꿈꾸며 영상으로 그리면서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리 보여주시고 말씀 해 주신 것입니다. 믿음의 영상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이름을 열국의 아비라는 뜻인 아브라함이라고 고쳐 주셨 습니다. 그리고 사래의 이름도 열국의 어미라는 뜻의 사라로 고쳐 주셨습니다. 이름 을 이렇게 고쳐 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직 열국의 아비와 어미는 되지 않았지만, 지금 현재는 자식도 없고 나이는 거의 백세가 가까워지고 경수도 끊어졌지만 장차 열국의 아비와 열국의 어미가 된다는 믿음의 꿈을 그리면서 살라고 그렇게 이름을 바꾸어 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밤중에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그리고는 밤하늘의 별들을 세어 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밤하늘에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을 보면서 자기의 후손들도 이와 같이 번창할 것을 마음속에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영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이었습니다.

 하란으로 도망가는 야곱이 들판에서 돌 베개를 베고 잠을 자는데 그에게 꿈에 하 늘에 맞닿아 있는 사닥다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 영상을 야곱은 늘 간직하면서 그 의 믿음을 키워 갈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어렸을 때에 꿈을 꾸었습니다.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이 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영상을 요셉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요셉은 그때 이 후로 마음속에 늘 영상을 간직하면서 살았습니다. 결국 그 영상은 나중에 현실로 이 루어집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에게도 그 당시에 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조국 이 로마로부터 해방되는 꿈이었습니다. 그 당시 로마 제국 아래서 짓밟히고 신음하 고 있었던 유대 민족에게 이보다 더 절실한 꿈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때에 유대 땅에는 나사렛 예수가 등장했고 민중들은 그 분에게 정치적 기대를 걸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들이 처음에 꿈꾸던 바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쳤습니다. 이 땅의 나라가 아닌 장 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꿈을 제자들에게 심어 주셨습니다. 예수님 부활 후 그들은 성령을 받고 하나님 나라의 영상을 그리며 달려가는 위대한 초대 교회 사도들이 되 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이러한 꿈을 심어 주신 것입니다.

 시몬을 데려다가 예수님께서 이름을 고쳐 주십니다. "너는 게바라 하리라. 너는 반석이다. 내가 네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이같은 말을 들은 베드로는 그날 이후로 늘 그 말씀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때문에 교회가 세워질 것을 마음 에 기대하면서 영상으로 그리면서 살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같은 어부들을 베려다가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내가 너희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날 이후로 그들은 마음속에 사람을 낚아 건져 올리는 그러한 생각과 그러한 영상을 늘 그리면서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을 주님께서 만나셔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로 이방인의 사도로 세 웠느니라." 그날 이후로 바울의 생각 속에는 자기가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서 복음 을 전파하게 되는 그러한 꿈과 영상을 늘 그려보며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인간들에게 꿈을 주십니다. 미래의 비전을 주십니다. 미래의 어 떤 영상을 주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신약 히브리서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보십시다. 오늘 본문은 소위 믿음의 장이라고 일컬어지는 히브리서 11장의 제일 첫 부분입니다. 이곳에서 믿음은 한마디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 (히11:1)라고 정의되어지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바로 바라는 것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실 상이요 증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소원하고 바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서 우리 눈에는 현재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이런 바라는 것들 의 실상, 즉 실제 영상이라는 말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이러한 바라는 것들이 실제 영상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들, 아직 보지 못하는 것들이 실제 영상같이 보이게 하는 것이 믿음이라 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음의 영상, 믿음의 실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직 우리 남편이 예수를 믿지 않고 교회에도 출석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 내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꼭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남편이 교회에 나오지 않고 있으나 믿음이 있는 아내의 눈에는 바라고 있는 것이 실제 영상처럼 그려져서 마치 남편이 성경책을 가지고 교회에 나 가서 머리 숙여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 늘 마음속에 그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벌써 그의 마음에는 미 래의 남편이 교회 열심히 다니는 모습이 영상으로 그려진다는 것입니다.

 비록 현재는 안 다니지만 그래서 육신의 눈에는 안 다니는 것만 보이지만 영적인 눈, 믿음의 눈에는 남편이 교회에 잘 다니는 것이 영상으로 보이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절망하지 않습니다.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참을 수 있습니다. 기다릴 수 있게 됩니다.

 정말 믿음이 있다는 말은 장래에 어떤 것이 이루어질 영상을 이미 그리고 있다는 말도 됩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인해서 마음속에 그려지는 영상입니다. 하나님이 허 락해서 우리에게 심어 주시는 영상입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상상해서, 생각해서 그 려지는 영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과 뜻 가운데서 이 땅의 사람들에게 영상을 심어 주십니다.

믿음을 심어 주십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미래의 영상, 꿈을 심어 주 십니다.

왜 이렇게 영상을 꿈을 주십니까 그것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입니 다. 믿음으로 아직 보이지 않는 것들을 영상으로 바라보면서 살기 위해서 입니다.

미래의 꿈을 내다보며 살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야 그 사람의 인생이 흐트러 짐이 없습니다.

 운동장에 눈이 내렸습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려고 반 아이 들을 운동장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이 눈 위를 똑바로 걸어갈 수 있겠니" 그러자 한 아이가 손을 들었습니다. 그 아이는 똑바로 걷기 위해서 자기 발만 쳐다보면서 걸어갔습니다. 한참을 걸어간 후 뒤를 돌아 보니 발자국은 삐뚤빼뚤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다른 아이가 또 손을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똑바로 걷기 위해서 눈을 꼭 감고 걸 어갔습니다. 역시 발자국은 삐뚤어지게 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아이가 손 을 들었습니다. 이 아이는 운동장 끝에 있는 나무를 바라보면서 걸어갔습니다. 그러 자 발자국은 눈 위에 똑바로 그려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발자국을 똑바로 만들기 위 해서는 한 지점만 바라보고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꿈 중에는 헛된 꿈도 참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늘 생각합니다. 상상을 합 니다. 미래의 계획을 세웁니다. 미래의 청사진을 세웁니다. 그랬다가는 또 지워 버리 고 또 지워 버리고 합니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갖가지 상상과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러한 것도 상상을 해 봅니다. 저러한 것도 상상을 해 봅니다.

 내가 어떤 사장이 되어서 회사를 경영하는 꿈을 그려봅니다. 그러다가는 금방 그 꿈을 지워 버립니다. 그 영상을 지워 버립니다. 곧 지워질 꿈, 곧 없어질 영상, 부질 없는 꿈입니다. 뜬구름과 같은 꿈입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 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1:6-8)라고 말합니 다. 나의 모든 일에 정함이 없으면 이렇게 됩니다.

 오늘은 이러한 마음의 영상을 그려보고 내일은 저러한 마음의 영상을 그려보고, 오늘은 이러한 생각을 하고 내일은 저러한 생각을 합니다. 두마음이 아니라 세 마 음, 열 마음, 스무 마음을 품는 사람은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주께 얻기를 생각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 니다.

오직 한가지 마음에 정함을 가지고 자나깨나 늘 그 영상을 마음속에 그려보면서 달려가는 사람만이 마음에 정함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믿음 의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믿음의 실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됩니다. 이러한 사람이 무슨 일을 이루어도 이루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이 주님께 무엇을 얻게 됩니 다.

이제 우리는 정해야 합니다. 믿음의 영상을 확실히 그려야 합니다. 금방 떠올렸다 가 지워 버리는 그러한 백일몽과 같은 부질없는 꿈이 아니라 늘 내 영상 속에 그려 져 있는 지워지지 않는 실상을 우리는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 아니니라." 즉 보이는 것은 보 이지 않는 것들로 인해서 되어진 것입니다. 지금 현재 보이는 물질의 세계는 안 보 이는 어떤 세계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직 안 보이는 것들이 결국은 효과를 발휘해서 영향력을 발휘해서 드디어 나타나게 되고 보여지는 것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보이지 않는 세계에 의해서 현재 보이는 세계는 좌우됩니다.

 현재 보이는 세계를 우리는 3차원의 세계라고 합니다. 일차원은 점들의 세계입니 다. 이차원은 이 점들이 모인 면을 말합니다. 삼차원은 면들이 만들어 낸 입체 공간 입니다.

일차원은 이차원에 속해 있고 이차원 면은 3차원 입체에 속해 있습니다. 마찬가지 로 3차원은 그 위의 4차원의 세계에 의해서 지배되어진다는 것입니다. 4차원의 세계 에 그려 놓은 영상은 이제 3차원의 세계에 영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믿음의 세계는 영적인 세계입니다. 영적인 세계에 그려지는 4차원의 세계에 그려 지는 믿음의 영상은 3차원의 세계에 영향을 주어서 결국은 나타나게 됩니다.

믿음 생활이란 믿음으로 인해서 보여지는 영상, 꿈을 계속 바라보면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기다리고 그것만 바라보며 사는 것이 믿 음 생활입니다.

 어떤 젊은 재상이 왕에게 와서 어떻게 하면 시험에 들지 않고 맡은 일을 잘 감당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왕은 기름이 가득한 잔을 주면서 한 시간 안에 지시 하는 거리를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기름을 쏟거나 시간이 늦으면 엄벌에 처한다고 하여 칼든 군인을 뒤따르게 했습니다. 젊은 재상은 땀을 흘리며 기름을 쏟지 않고 제 시간 안에 도착했습니다.

 왕은 만족하다는 듯이 웃으며 칭찬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모퉁이의 구둣 가게를 보았는가"하고 물었습니다. "못 보았습니다.그럼 쌀가게는" "못 보았습니 다." "그럼 가구점은" "죄송합니다. 기름을 쏟지 않으려고 정신을 거기에다가만 집 중하느라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못 보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 생활입니다. 믿음으로 보여지는 내 앞의 영상 그것만을 바라보 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본 즉 먹음직하기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지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렇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의 다른 것은 바라보 아서는 안됩니다. 믿음의 실상 영상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세계에 그려진 꿈과 영상은 이 땅에 실현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사람의 믿음을 통하여서 이 땅에 실현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생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올 한해는 우리에게 성령으로 보여 주시는 믿음의 영상, 지울 수 없는 꿈을 찾아 내시고 세상의 다른 것으로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 이 주신 믿음의 영상만을 바라보며 똑바로 걸어가시는 한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 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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