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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헌금의 생활화1 (고후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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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교인들이 신앙 생활 하는 것을 가만히 관찰해 보니까, 헌금 생활 하는 데서 신앙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 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물질을 이웃을 위해서 또 하나님을 위해서 바치는 것도 신앙의 성장과 많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장에서는 바치는 생활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신앙 성장을 도모해 보 려고 합니다.

 헌금은 반드시 해야 하는가? 먼저 헌금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물질을 남을 위해 쓰면서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한번 해 봅시다. 그런 데 사실상 이 질문은 별로 해 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헌 금한다는 것은 상식이요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극장에 가도 돈을 내고 음악회에 가도 돈을 냅니다. 또 추석이나 성탄 때에 이웃과 친척을 위해서 선물을 주기도 합니다. 이런 것은 상식 아닙니까? 안 믿는 사람도 교회에 처음 오면 으레 헌금할 줄 알 고 헌금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수해가 났을 때나 재난이 있을 때 어쩌다가 성 금을 하는데, 믿는 사람들은 참 다행스럽게도 정기적으로 매주 한 번 내지 두 번은 하나님께 물질을 바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그분께 드리면서 사는 삶이 참 멋지지 않습니까? 예수 믿 지 않을 때에는 주고 싶어도 어디에다 줄지를 몰랐고, 어쩌다가 한 번씩 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정기적으로 늘 줄 수 있는 생 활을 한다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멋입니다.

 물질을 바친다는 것은 옛날부터 인류가 늘 해 오던 것입니다. 벌 써 창세기 4장에서 가인과 아벨이 예물을 드리는 것이 나오지 않 습니까? 양 한 마리, 소 한 마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그런데 그런 것을 정기적으로 하나님께 바치며 사는 것이 고대로부 터 내려온 인류의 종교적인 관습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섬 기는 사람 뿐만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사람마저도 헌금과 제물을 우상 앞에 바쳤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헌금을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는 별로 큰 논란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어떻게 바칠 것인가? 문제는 어떻게 바칠 것인가입니다. 헌금을 하는 태도와 정신이 결 정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은 헌금을 할 때 아까워합 니다. 또 하나님이 하라고 했다 해서 의무감에서 하는 사람도 있 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헌금을 하되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 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기쁘고 즐겁게 합니다. 성경에 보면 헌 금과 관계해서 willingly(자진해서, 기꺼이)라는 단어 가 여러 번 나옵니다(출애굽기 35:5,21,22,29). 물론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합니다.

얼마를 해야 하는가? 제가 미국에서 목회 생활을 하면서 보니까, 어떤 분은 십 년 전 에 5불을 했는데 십 년 후에도 5불을 합니다. 그동안에 수입이 많이 늘었는데도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의 값이 올라가 도 헌금하는 액수는 그대로인 것을 보고 어떻게 하면 저렇게 상식 이하의 삶을 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에서 교회 회계부에 계신 분들이 회계부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험에 들기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십 년 전에 5불 헌금한 사람이 십 년 후에도 5불을 하는데, 그 가 집사 직분을 맡고 있으며 제직회에서 제일 말을 많이 하는 사 람이더라는 것이었습니다. 회계부에서 일하던 사람이 말하기를, 자 신이 회계부원 안 할 때에는 시험에 안 들었는데, 교회에서 두드 러지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인색하게 헌금하는 것을 보고는 시험에 들어서 회계부원을 하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 가 헌금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니까, 집사님은 집사님이 헌금할 것만 하시면 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남의 것까지 간섭할 필요 는 없지만, 시험에 빠지게 할 소지가 있는 행동인 것 같습니다.

 얼마를 헌금해야 하는가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다릅니다. 구약성 경에 보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 어떤 사람은 비둘기를 바치 고, 어떤 사람은 양을 바치고, 어떤 사람은 염소를 바치고, 어 떤 사람은 황소를 바칩니다. 헌금도 자기 능력에 따라서 바치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만약에 염소를 바칠 수 있는 능력을 받 은 사람이 양을 바치면 그것은 적합하지 않은 것입니다. 황소를 바칠 수 있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 비둘기를 바치는 것 역시 적합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혜대로 헌금하게 되어 있습니다. 참으 로 공평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지만 나 자신이 압니다. 당신의 가정에 황소의 은혜를 주셨는지 염소 의 은혜를 주셨는지 양의 은혜를 주셨는지 비둘기의 은혜를 주셨는 지 당신 자신에게 정직하게 물어 보십시오.

 예수님은 비둘기의 은혜를 주신 가정에서 자라났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아버지가 예물을 바칠 때 비둘기를 가져갔습니다. 제일 작 은 헌금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는 비둘기를 바칠 사람이 비둘기를 바칠 때 100% 은혜 받은 자로 여기십니다. 황소를 바칠 수 있는 사람이 황소를 바칠 때에 그것을 온당하게 여기십니다. 헌금의 액수는 우리 모두의 능력에 따라서 결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사랑과 헌신의 정도에 따라서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판단해서 헌금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헌금에 대한 성경의 지침 성경에는 헌금에 대한 지침이 있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우리 수 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모델이 있습니다.

 창세기 14장 20절에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 제사장에게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바쳤습니다. 이것은 4천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28장 22절에 보면, 야곱이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에서 10분의 1을 바치겠다고 벧엘에서 결정하고 약속한 내용이 나옵 니다.

레위기 27장 30-33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십일조 에 대한 규례를 모세로부터 가르침받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예수님 의 제자들도 유대인이기 때문에 십일조를 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으레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했습니다.

말라기 3장 8-10절에 보면, 십일조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 어 떻게 축복을 해 주시는지 시험해 보라고 말씀합니다. 창고에 쌓을 곳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는지 아닌지 시험해 보라고까 지 하셨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나님은 십분의 일을 헌금하는 것을 모델로 보여 주시면서 권고하셨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벧엘 교회 목회를 시작할 때 처음 믿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처음에는 십일조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믿는 사람들은 신앙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십일조 이야기를 하면 금방 시험에 들기가 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약한 사람들 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천천히 제직들에게 이 야기하고 당회원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신앙의 성장과 헌금이 똑같 이 갑니다.

 그 후 몇년이 지났을 때, 제가 눈물을 흘리면서 크게 회개한 적 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최소한 십분의 일을 헌 금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지름길이라고 했습니다. 창고에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까지 하신 하나님의 크신 축복의 길이었는데, 저는 교인들이 혹시나 다치지 않을까 싶어서 그 이야기를 소극적으로 했던 것입니다. 교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크신 축복의 길을 교인들 에게 가르쳐 주지 않은 것 때문에 우리 교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것을 생각하니까, 너무나 안타깝고 양심에 가책이 되 었습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교인들 앞에서 회개했습니다.

여러분 나를 용서해 주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사 람이, 하나님이 축복하신 길이 분명히 있는데도 여러분을 생각해 준다고 그동안 말하지 않은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것은 율법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의 모델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 가운데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 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맨몸으로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입는 옷, 우리의 지식, 우리의 안경, 우리의 자동차, 우리의 가족, 우리의 건강, 어느 하나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 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은혜에 감사해서 선교사를 위해서 ,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수재당한 이웃을 위해서, 내 가진 것을 과감하게 내놓으면서 산다는 것은 신앙인의 정상적인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얼마를 바칠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들 스스로가 결 정해야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주일날 헌금 시간에 호주 머니에 있는 돈을 꺼내서 드리는 것은 적절한 신앙 생활의 표현 방법이 아닙니다. 가족 가운데에서 십일조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에 대해서 논란이 있는 것을 제가 잘 압니다. 그러나 누가 그 이야기를 꺼내든지, 십일조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으면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을 도와서 당신의 가정에 헌금 생활이 정상화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이 정상적인 헌금 생활을 하고 헌금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 를 생각하면 우리의 경제 생활이 정돈됩니다. 하나님 앞에 10분 의 1을 바침으로써 10분의 9를 가지고 가정 생활을 해야 하니 까 생각 없이 함부로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하는 사람들은 경제 생활에 계획성이 생기고 가정 생활에 질서가 잡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가 그 가정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십일조를 하는 가정은 절 대로 모자람이 없습니다. 내 욕심을 채우지 못하지만, 경제 생활 이 정돈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 마음과 삶 속에 나타나기 때문입 니다.

 헌금은 으레 하는 것이므로 거기에 대한 논란은 없습니다. 헌금할 수 있는 기회만 오면 언제나 특권으로 생각하고 즐겁게 하십시오 . 헌금은 자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하라고 해서 하 는 것이 아닙니다. 인색함으로 하지 아니하고, 생각 없이 하지 아니하고, 율법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으로 하되 성경에서 가르쳐 준 하나의 모델을 놓고 우리들 스스로가 헌금해야 합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즐 거운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가 당신의 가정에 넘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헌금하는 것을 은혜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헌금이 결정됩니다. 바치는 생활, 헌금하는 생활이 당신의 신앙 성장에 꼭 도움이 되기를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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