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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 때문에 (요일 04:19-21; 창 0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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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제3의 시대를 바라보고 있읍니다. 제1의 시대는 요단강을 중심한 유대주으적 기독교의 시대로서 배타적 성격을 띄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제2의 시대는 티버강을 중심으로한 헬라, 로마적 유럽문화가 세계를 지배하였읍니다. 이 제2의 시대의 특징은 정복적이고 선교적 이라는데 있읍니다. 그러나 2천년대는 제3의시대입니다. 이 시대의 특징은 간지스 강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의 문화 그중에서도 한자문화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는점입니다. 앞으로 세계의 중심은 바로 중국이고 일본과 한국, 싱가포르 등이 세계의 정치, 경제와 종교와 사상을 주름잡게 됩니다. 이 시대의 주제는 화해와 공존, 통일이 그 중심과제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이런 제3의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 성도들은 과연 어떤 자세로 임하여야 하는가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세계 교회의 중심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한국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신앙적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더구나 대전은 내년에 직할시가 되면서 한국의 허리가 되고 그렇다면 대전에서 제일 큰 교회인 우리 중앙교회의 사명은 대단히 중차대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제3의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그것은 바로 [예수님 중심사상]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예수님 때문에]라는 자세로 생각하고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라면서 함께 하나님의말씀을 기다려 보려고 합니다.
참 사람이란 이상하게도 항상 핑계대기를 좋아합니다. 저는 그저께와 어제적성검사를 받지못해서 자동차 면허증이 만료된 것을 다시 갱신하기 위하여 벌금을내고 신체검사와 안전교육을 받았읍니다. 그렇다고 무면허 운전을 할 수도 없고 차는 교회 차고에 넣고 택시와 버스를 타면서 왔다갔다 하자니 얼마나 불편한지 말할수 없었읍니다. 한 20년가 차를 운전하다가 벼란간 없으니 더욱 힘이 듭니다. 그러나 길에서 어떤 때는 30분간이나 택시를 기다리다가 우리 교인들중에 차가 없는 사람들이 많은데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도 가져 보았읍니다.
왜 이런 귀찮은 일이 생겼을까 하고 생각하니 대전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일이 없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났읍니다. 그러나 결국 이것은 핑계라는 것을깨달았읍니다. 참 사람은 이상합니다. 모든 잘못된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기를 좋아합니다. 예를 들어서 자동차 사고난 곳에 가보면 소리를 지르고 싸우고 난리입니다. 법적으로 해결하면 그만인데 서로 소리를 지릅니다. 알고보니 큰 소리 치는 사이 이긴다나요. 그런데 싸우는 내용을 보면 [너 때문에] 사고가 났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길가는 사람을 치고도 안죽을려면 피해야지 하면서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핑계를 댑니다. 그러나 이 핑계를 대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읍니다. 이것은바로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아담때 부터 내려운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조금전에 읽은 말씀에 보니 함께 선악과을 따먹고는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핑계를 댄 것을 볼 수 있읍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물었을 때 아담은 하나님이 주신 그 여자가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라고 핑계를 하와에게 돌렸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번에는 하와에게 물었읍니다. 그러자 하와는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면서 뱀에게 그 원인을돌렸읍니다. 세상에는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도 있읍니다만 모두가 잘못된 원인울 남에게 돌립니다. 5공비리와 광주항쟁 청문회를 하는 것을 보니 모두가 그 비리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것을 보았읍니다. 왜 그런 많은 뇌물을 갔다주었냐고 물으니 편안하게 살려면 그 길에 길이 없어서요. 권력자에게 그 핑계를 대었읍니다.
이번에는 5공화국 때 권력을 잡은 사람들에게 물었읍니다. 왜 압력을 넣어 돈을 걷어서 일해 재단을 만들었는냐 갔다주어서 받은 것뿐입니다. 바로 문제는 여기에있읍니다. 안되는 것은 다 남에게 원인이 있고 잘되는 것은 다 나 때문이라는 사고방식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5공비리의 주범이 바로 [나] 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됩니다. 내가 소금과 빛의 생활을 하였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바로 서고 우리 교단이 어용화되지 않았다면 이런 비리가 백일하에 저질러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핑계를 남에게 돌립니다. 이것이 바로 아담 때부터 내려오는 우리 인간의 죄적 본질입니다. 안되는 집안을 보세요. 며느리는 시어머니 때문에 가정의 분위기가 나쁘다고 주장하고 시어머니는며느리가 나빠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못사는 가정을 보면 남편은 아내가 살림을 못해서 그렇다고 말하고, 아내는 남편이 돈을 못벌어서, 남편이 수단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잘 되는 가정을 보면 잘못한 것은 제가 부족해서요 하고 내가하고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고 잘되는 이유만 남에게 돌립니다. 우리 며느아기가 살림을 잘하거든요. 우리 시어머니가 애기를 봐주고 살림을 해주어요 하고 말합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잘 안되는 교회는 목사는 장로에게 핑계를 대고장로는 목사에게 모든 핑계를 댑니다. 집사는 장로에게 핑계를 대고 장로는 집사들에게 핑계를 댑니다. 이것은 불신앙적 사고방식입니다. 우리는 잘 되는 것은 남에게, 안되는 것은 나에게서 그 이유를 찾아야 일이 제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러면 참으로 바른 신앙적 자세는 어떤 것입니까 [예수님 중심]의 사고와예수님 중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저는 세가지 측면에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과거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인간이 가진 과거의 문제점은 바로 죄인데 이것은 다른 아무 것으로도 해결 이 아됩니다. 오직 예수님과 믿음밖에는 없읍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내 과거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셨다고 믿어야 합니다. 즉 예수님 때문에 과거의 죄가 다용서받았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감사하고 예수님 때문에 찬양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누구 때문에 내 과거가 어두웠고, 너 때문에 지금 내가 비참하다고 남에게 핑계를 대고 있읍니다. 환경때문에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읍니다. 해결의 비결은 나에게서 그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오늘의 나의 불행은 바로 나 때문이지 너 때문이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멸망된 것은 모든 핑계를 남에게 돌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아직도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고 있는 것은 모든 책임을 지도자에게만 돌리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주체는 국민입니다. 그렇다면 국민 한사람 한 사람이 책임의식을 가져야지 어떻게 지도자에게만 모든 것을 맡깁니까 따라서 왜 5공비리가 다 전두환 때문입니까 우리 때문은 아닙니까 그러므로 정의의 사회를 구현하려면 먼저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보고 뺀 후에 남의 눈 속에있는티를 보고 빼어주어야 순서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과거의 문제중 가장 괴로운 것은 서로 미워하고 서로 욕하면서 맺어진 불편한 관계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도 주님이 십자가의 보혈로 다 해결해 주시니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과거 문제로 괴로워 할 필요가 없읍니다.
이 사랑의 주님께 다 맡기고 마치 과거가 없는 사람처럼 다 잊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해결해주시고 용서해주신 것을 우리가 용서하지 않고 믿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때문에 과거는 용서하고 예수님 때문에 서로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분나쁜것 있읍니까 예수님 때문에 참으세요. 다툰 것 있읍니까 예수님 때문에 양보하세요. 이것이 바로 신앙적 자세입니다.

2. 다음은 현재에 대한 참 신앙적 자세를 살펴보겠읍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 때문에 서로 사랑하고 예수님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저도 그릇이 적어서 그런지, 아직 절이 덜 나서 그런지 싫은 사람이 있읍니다. 안만났으면좋은 사람이 없지않아 있읍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신앙적 자세입니다. 가끔 저를 동정하는 분들이 목사님 누구 누구 때문에 목회하시기 힘드시지요 하고 묻습니다. 이것은 신앙적 자세가 아닙니다. 이 때 저는 아직 제가 모든 사람들을 포옹하지 못해서 그렇지요 하고 진심으로 말합니다. 환자가 없다면 의사가필요 없듯이 병든 교인, 문제있는 교인이 없으면 목사도 필요 없읍니다. 그러므로목회가 누구 누구 대문에 안되는 법은 없읍니다. 있다면 바로 나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속해있는 부서가 잘 안됩니까 누구 때문에 안된다고 생각하는것은 불신앙적 자세입니다. 다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자기부터 회개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혹 우리 가운데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읍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큰 착각입니다. 여러분들은 다 행복합니다. 아리구 목사님, 저는 직장이 없는데요, 저는 돈이 없구요,저는 부모님이 안계시구요 등등 여러가지의 이유를 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다 핑계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주님을 믿는다고 한다면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행복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행복합니다. 믿습니까 다만 그렇게 안믿는 것이 문제 입니다. 왜요 예수님이 우리의 친구가 되시고,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예수님이 인도해주시니 어떻게 불행할 수가 있읍니까 한번 따라 합시다. [나는 예수님 때문에 행복합니다.][나는 예수님 때문에 형제와 자매를 사랑합니다.] [나는 예수님 때문에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나는 예수님 때문에 우리 장로님들을 존경합니다.] [나는 예수님 때문에 권사님들을 존경합니다.]

3. 이제 우리의 미래에 대한 신앙적 자세를 살펴보겠읍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을 드렸읍니다만 우리는 다 미래에 대해서는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소망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말씀했읍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미28:20)그런데 왜 우리는 불안해하고 그런데 왜 우리는 괴로워하고 있읍니까 근심 걱정하지 마세요. 예수님 때문에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사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는 꼴을 보면 딱 망하게 되어있읍니다. 서로 미워하고 서로 불신하고, 요즘 정치계를 보고 교회를 보면 꼭 망할 일만 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도 자꾸 성장합니다. 홍콩 신문에 한국은 지금 이대로가면 네 용에서 떠나 버리지가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했읍니다. 그러나 앞으로우리나라는 희망이 있읍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예수님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부족하지만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우리 인간들의 약점이 보완되고 그래서교회는 성장하고 있읍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 때문에 앞으로 소망이 있읍니다. 믿으시면 한번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89년도에대해 불안한 분 있읍니까 미래란 현재의 연장이란 점에서본다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실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현재의 입장이 무엇이든지 간에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이 다 잘되리라고 믿습니다.
이제 설교를 맺을려고 합니다. 우리의 과거의 문제도 예수님 때문에 다 해결되니 믿고 감사하시고,현재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이 함께 하시니 예수님 때문에행복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싫은 사람도 서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또 미래에 대해서는 불안하지 마세요. 능력의 주님이 함께 하실 것이니 예수님때문에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상주시겠다고 약속한 예수님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모든 교인들은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고, 예수님 때문에 행복해하고 예수님 때문에 사랑하고 참기도 하고 예수님 때문에 소망을가지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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