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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신앙을 갖는 비결 (눅 24: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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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수께서 사망권세와 사탄의 권세를 이기시고 죽었다가 3일만에 부활하신 부활주일입니다.
이세상의 모든 종교의 창시자는 다 죽었으며 지금도 그들이 묻혀있는 무덤들을 찾아 볼수 있지만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으로 남아 있고, 기독교만이 죽었다가 다시 사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으며 또 그를 믿는 신자들이 다시 생명의 부활로 다시 산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읍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여러 갈래길이 있어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방황할때 그 앞에 두사람이 있었읍니다.
그런데 그 한사람은 죽은 사람이요, 또 다른 한사람은 산사람이었다고 한다면 그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에게 길을 물었겠읍니까
그러면 여러분이라면 어떤 사람에게 길을 물었겠읍니까
죽은 사람에게 길을 묻겠읍니까
물론 산사람에게 물을 것 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나 세상 종교나 다 같은 수준에 놓고 비슷한 종교의 하나로 생각 합니다.
그러나 가독교는 부활의 종교요, 생명의 종교요, 참된 구원의 종교 입니다.
예수님이 만약 십자가에 죽으시기만 하고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오늘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며 어처구니 없는 바보 짓일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죄에서 구원 받을 수 도 없을 것이며 천국에도 갈수 없을 것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아니 우리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이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고 쉽게 받아 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러는 있읍니다.
아니 예수님 당시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도 쉽게 받아 들이지 못했읍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누누히 인자는 죽었다가 다시 산다.
고 말씀해 주셨는데도 막상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나니까 어느 제자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부활을 믿거나 기대하는 사람이 없었읍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무덤에 향유를 바르러 갔던 여인들이 부활하신 에수님을 만나 보았다고 증거하는 데도 수제자 베드로를 비롯해서 11제자 모두가 믿지 못하고 확인하러 달려 갔으며 도마같은 제자는 그런 웃기는 소리는 하지도 말라. 는 식으로 말하며 예수님의 옆구리의 창자국과 손에 못자국을 만져 보고서야 나의주 나의 하나님이여 ! 라고 신앙고백을 하였읍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자가 더 복 되도다. 고 말씀해 주셨읍니다.
자 이렇게 3년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한솥의 밥을 먹고 여러가지 기사와 이적을 보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것을 직접 본 제자들도 다 믿지 못한것을 보면 오늘 우리 신자들 중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조금 의심한다고 해도 어느정도 위로는 얻을 수 있는 것 같읍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엠마오로 가던 두제자도 예수님이신줄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의 부활의 소문이 헛소문인양 믿지 않는 마치 남의
얘기하듯 말하고 있는 것을 볼수 있읍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대화를 하고 떡을 나누고 하는 동안에 예수님이 그들의 눈을 밝혀 주신 후에야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믿었던 것을 찾아 볼수가 있는 것 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부활신앙을 가질수 있는지 그 비결을 찾아 볼수 있는 것입니다.

제일먼저 이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수 있었고 부활신앙을 가지게 된 것은 성경말씀을 잘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고 슬픈 마음을 가지고 엠마오로 두 제자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더디 믿는 자들이여 라는 예수님의 책망과 말씀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에 영의 눈이 밝아 지면서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 보았읍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사라지신후에 성경을 풀어주실때 우리 마음이 뜨겁지 아니 하더냐 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체험담을 말하였읍니다.
성경말씀을 잘읽고 듣지 않고는 믿음이 생길수도 없고 부활의 신앙도 가질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0:17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고 하였읍니다.
부활신앙은 변증적인 연설이나 훌륭한 강연을 듣는 것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일때 생겨나는 것 입니다.
믿음은 영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영에 속한 말씀을 잘 읽고 들을때 믿음이 생기고 돈독해 지는 것입니다.
요6:63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니라. 고 말씀하셨입니다.

두번째로 그들은 주님과의 대화속에서 부활신앙을 가질수 있었읍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예수님과 이야기를 주고 받았읍니다.
그러다가 부활의 주님을 알아 보았읍니다.
오늘날도 부활의 주님을 참으로 믿고 체험하려면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과 대화를 해야 합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무릎꿇고 진지하게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부활의 신앙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영에 속한 것인데 주님과 영적인 교제를 하지 않고 주님을 알 수도 확신을 가질 수도 없읍니다.
우리는 다른 어느때 보다도 우리의 무릎을 꿇을 때 천국에 가장 가까이 갈 수가 있읍니다.
세상것이 다 없어졌을 때에라야 주님의 얼굴을 똑똑이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 모든 것을 잊어 버릴때 영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그들이 부활신앙을 갖게 된 것은 간절히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28절에 보니까 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때가 저물어 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면서 예수님을 강권해서 모시고 들어간 것을 볼 수가 있읍니다.
이 강권했다는 말에서 그들이 얼마나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가 있읍니다.
성경 여러곳에 보면 예수님은 강권하고 강청하라는 말씀을 하셨읍니다.
즉 진리를 사모하고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렘29:12-13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진심으로 나를 찾고 찾ㅇ면 나를 만나리라 라고 했읍니다. 주님은 사모하는 자에게 나타나 주시고 사모하는 자를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사모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뜻이오, 귀중히 여긴다는 뜻이요,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부부간에도 사모하는 마음이 없으면 큰일이 나기 쉬운 것입니다.
시42:1 하나님이며 사슴이 시냇물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고 했고 사45:22 땅끝까지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고 하셨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그들이 부활신앙을 갖게 된 이유는 영안이 밝아졌기 때문입니다.
30절에 보니까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매 저희 눈이 밝아 그인줄 알아 보더니 라고 했읍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과 대화하고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떼어 줄 때 저들의 영안이 밝아지면서 예수님을 알아 보았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성령께서 우리의 영안을 밝혀 주셔야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되고 부활의 주님을 만나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때에 우리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 하더냐. 한 것을 보면 이미 성령의 뜨거운 역사로 그들의 영안이 밝아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엡1:17절 이하에서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고 사도 바울도 기도했읍니다.
고전2:9에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리라.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 했읍니다.
저는 우리 횡성제일교회에 발을 들여 놓는 자마다 말씀과 성령으로 영의 눈이 밝아져서 부활의 주님과 만나고 확실한 신앙을 가지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특히 부활의 신앙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어느분이 무척 유명한 말을 하였읍니다.
예수님이 어제 죽었다가 오늘 다시 사시고 내일 다시 오실것 처럼 살아라 고 했읍니다.
부활신앙은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도, 전도도, 소망도, 모두 헛것이 되고 맙니다.
그렇기 대문에 부활은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들도 영생을 얻고 예수님과 같이 생명의 부활로 부활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역사상의 어떤 사건보다도 가장 중요하고 멋진 사건인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인생의 가장 큰 원수요, 공포의 대상인 죽음을 정복하고 우리들로 하여금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가두었던 무덤의 돌문이 옮겨진 것은 곧 우리 성도들의 죽음의 돌문을 영원히 옮기신 것입니다.
이제 부터는 죽음의 감옥은 문이 없어져서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을 가둘수가 없게 되었읍니다.
죽음은 영생으로 들어가는 관문일 뿐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승리를 보장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소망을 주셨읍니다.
이렇게 귀하고 값진 부활신앙을 주신 우리 주님께 감사하면서
죽음을 이기고,
악의 세력을 이기고,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고,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면서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 나가시는
여러분이 다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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