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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체르노빌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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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소련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핵의 가공할 위험성을 깨우쳐 준 일로 지금도 인류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사고 당시와 그후에 벌어진 사건의 진실이 온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은 용기 있는 한 사진기자 덕분이었다.
소련 국영 노보스티 통신사의 특약 카메라맨인 이고르 코스틴은 사고가 터진 지 불과 11시간 남짓 지나서 현장에 도착하여 촬영을 시작했다. 현장에 출동한 군인들도 납으로 된 복장을 갖추고 1회에 한해서40초 동안만 작업하고 철수했으나 그는 처음엔 잠바 차림으로 사진을 찍었다. 당연히 그의 몸에는 다량의 방사능이 침투되어 정도가 심한 피폭자가 되고 말았다.
이 때문에 그는 지금까지 1개월 가량씩 다섯 차례나 입원과 퇴원을 거듭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체르노빌을 취해하고 있다. 사고현장에서 수십 km나 떨어진 곳에서 엉덩이 사이에 길이 10cm 이상의 큰 혹덩어리가 달린 아이, 다리가 8개 달린 망아지, 입이 없는 강아지가 잇따라 태어나는 등 체르노빌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날은 위험성을 모른 채 현장에 차더라도 그 다음날엔 왜 갔을까?
그는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사람은 각자 해야 할 일이 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세상에 진실을 알리는 것이다'라는 양심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조국이나 당이나 정부를 위해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을 위해서였습니다.
그 때 그 일을 회피했더라면 나는 내 자신을 지금까지, 아니 영원히 용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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