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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예수님 (눅 18: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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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두 종류의 소경이 나옵니다. 하나는 영적 소경(31-34)이요, 다른 하나는 육적인 소경이겠습니다.(35-43)
예수님께서 이런 두 소경 된 자들에게 눈을 뜨게 하신 예수님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을 따르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Ⅰ.영적인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예수님(31-34)

사람이 용감함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무런 경고도 없이 갑자기 위급한 어떤 사태나 위기에 봉착하면 아무런 생각 없이 주저하지 않고 무모하게 그 위기에 뛰어 드는 사람이 용감한 사람이요,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다른 하나는 앞에 있는 어떤 사건이 희미하게나마 무서운 상황을 직시하고서도 그것을 피할 수가 없음을 알고도 확고하고 꿋꿋하게 나아가는 사람이 참으로 용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이들 중에 어느 것이 더 높은 차원의 용기냐 하는 문제는 논의할 여지가 없습니다. 대체로 순간적인 자극에 영웅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충동을 받는 동안에는 굉장한 용기로 나가지만, 여러 날이 걸리게 되면 고개를 돌리고 거기서 몸을 빼고 맙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자기에게 어떠한 일이 닥쳐 올 것인지 그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나아갑니다. 예루살렘에서 어떠한 수치와 고통의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음을 아시면서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예루살렘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이것이 진정한 용기요 참다운 용감입니다.
어떤 책자에서 “순교는 어렵지만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랜 긴 세월 동안 산 생애를 하나님께 드리는 일은 더 어려운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산 순교다”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살아서 오랜 세월 동안 삶의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 가시면서 영적 소경인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비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수난 예고는 이번이 세 번째이겠습니다.

① 먼저는 9:22절 “예루살렘에서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림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② 둘째는 9:44절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 우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서 두번의 내용은 간략하지만 이번 세 번째 수난의 내용은 상세합니다
31절을 보십시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나니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고난을 당하시는 것은 우연이나 실패에 의한 것이 아니고 이미 선지자들에게 의해 자주자주(사53장) 예언된 것인데 이 예언된 모든 것이 성경대로 예수님에게 응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언의 성취를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받으실 고난을 상세하게 32-33절에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기워 희롱을 받고 능욕을 받고 침 뱉음을 받겠으며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이방인들에게 넘기 우고 희롱을 당하시고 침 뱉음을 받으실 것입니다. 또, 이방인들이 채찍질하고 죽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다시 한번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므로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동시에 영적인 눈을 뜨도록 주시는 말씀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당하실 일과 받으실 고난을 말씀하셔도 제자들은 하나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는 그 말씀이 그들에게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지금 눈으로 예수님을 보고 귀로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므로 장님 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의 눈을 뜨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 때 제자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만 올라가시면 왕이 되시고 자기들은 예수님의 좌우 편에 앉을 것을 생각하고 자리 다툼을 하였습니다.(막10:40-41)
또,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쫓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19:28)한 말씀이 기억나서인지 자기의 꿈과 이상에 사로잡혀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생각이 많은 사람은 복음을 받아 들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부인이란 “자기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축복을 주시옵소서, 잘되게 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또, 내 뜻이 관철되고 내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여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벧후3:9) 이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입니다.
축복을 받고 잘 되는 것은 나의 바램이고 나의 원이지만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무도 멸망당하지 않기 위해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리시며 다 회개하여 구원을 받게 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사는 것이 신앙 인의 삶입니다. 제자들은 자기 생각 자기 뜻이 많으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들어오질 않았고, 귀가 있어도 듣지를 못하고 예수님을 보고도 예수님을 모르는 영적 장님들이었습니다.

Ⅱ.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예수님(35-43)

여리고에서 예루살렘까지는 30km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시기 위해 이제 이 여리고를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랍비가 교수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 중에 하나가 걸어가면서 강론하는 것입니다. 걸어가면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런 태도를 취하시었고 많은 순례자들은 이틈에 끼어 예수님의 말씀을 놓이지 않고 들으려고 바싹 걸음을 걷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순례자들의 무리들이 읍(邑)이나 마을을 지나 갈 때면 제일(祭日)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순례자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기 위하여 가는 길에 축복이 있기를 빌기 위하여 연도에 줄을 이어 서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행렬이 여리고 가까이 왔을 때, 길가에 앉아 구걸을 하던 소경 거지 하나가 있었습니다. 마가는 그의 이름이 바디메오라고 했습니다.(막10:46)

이 바디메오는 오늘도 구걸을 하기 위해 연도에 앉아 있다가 와글와글 거리는 소리를 듣자 무슨 일이냐 묻고는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대답에 즉시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의 도움을 간절히 소리쳐 구하자 모든 사람들은 그를 잠잠케 하려고 했습니다.
예수의 주위에 둘러선 수많은 사람들은 이 소경이 외치는 소란스런 소리 때문에 예수님이 강론하시는 말씀을 하나도 듣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좀 조용 하라고 꾸짖고 만류를 했습니다. 좀 조용 하라고 예수님의 말씀을 좀 듣자고 저지를 했습니다. 그러나 거지 바디메오는 돈을 얻기 위해 끈질기게 호소하는 거지의 근성으로서 인지 끈질기게 메말렸습니다.

장님 바디메오가 외치며 사용한 말이 38절과 39절에 나오는데 그 말이 전혀 다릅니다. 38절에는 사람들의 주위를 끌기 위하여 보통 큰 소리로 외친 말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나 39절에는 사람들이 잠잠 하라고 꾸짖고 저지하니까 저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했습니다.
이 소경 거지 바디메오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 예수님이 자기의 눈을 뜨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심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길에서 구걸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는 중에 예수님이 나면서부터 소경 된 자의 눈을 뜨게 해준 사건이라든지, 중풍 병자를 일으킨 사건이라든지 많은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또, 그는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신다는 말씀과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 오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이 나사렛 예수님이 바로 그 그리스도 메시아이심을 확신한 것 같습니다. 그는 주님의 긍휼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런데 그에게 어떤 장애물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는데 장애물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에 시끄러우니까 잠잠 하라는 꾸짖음이었습니다. 또, 당시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자는 자기의 죄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하여 천벌로 소경이 되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대단히 무시를 당했습니다. 죄인시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긍휼을 바랄 자격도 없는 놈이라고 잠잠 하라는 꾸짖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때 이 소경 거지는 그렇다 하며 소경 된 자신을 자학하며 뒤로 물러 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경 거지는 이런 장애물, 이런 장벽을 극복하며 더욱, 심히 소리질렀습니다.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그는 이 때를 놓일세라 끈질기게 소리소리 쳤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고자 하는 소원, 이 바디메오의 소원이 성도 여러분의 소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데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나의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내가 예수께 나아가는데 장애물이 되는 것, 그것을 극복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나가기만 하면 나의 눈을 뜨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가장 답답한 것이 소경입니다.
병 중에 이 병이 가장 큰 병입니다. 보고픈 것도 볼 수 없고, 가고픈 곳에 갈 수 없고, 이리 빠지고 저리 걸려 넘어지기도 합니다. 이리 받치고 생명이 위험한 곳인데 모르고 보이지 않으니까 들어섭니다. 물론 이것은 육신의 눈이 어두운 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도 어두울 때 우리는 앞을 볼 수 없습니다. 내일 일도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무엇이 죄인지도 모르고 빠지고 실패합니다. 이런 자기의 소경 됨을 알고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라고 소리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본문에 거지 바디메오 소경은 비록 육신으로는 눈이 멀고, 구걸을 하는 거지였지만 예수님을 향한 영적인 눈이 뜨인 자였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알고 간절히 부르짖었을 때, 예수께서 해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4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그를 데려 오라고 하셨습니다.
저가 가까이 오자 그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하여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입니다. 또 길을 가시면서 옹위한 사람들에게 말씀을 강론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양이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가던 발걸음을 ①멈춰 서시고 ②서서 그를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③그리고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41) 고 하셨습니다.

군중은 그를 소외시키고 꾸짖고 멸시를 해도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어 서서 불러오라고 하시며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그의 소원을 들어주시기 위해서 멈추어 서시고 또, 소원을 물으시는 자비하신 주님이십니다.
당신 자신은 죽음을 향해 나아 가시면서도 양 떼의 소원을 물으시며 그 기도의 제목을 물으신 자비하신 주님이십니다.
제가 마가복음 두 번째 강해 설교집을 내면서 그 책의 제목으로 “네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로 하였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 제목을 들어주시려고 물으신 것입니다.
소경 바디메오는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대답을 합니다.
소경은 분명한 기도 제목이 있었습니다. 그는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처럼 돈을 구하지 않았습니다.(행3:2) 오직 그의 소원, 기도 제목은 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향하여 “보아라 네 마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쫓으니 백성들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소망, 나의 희망,
예수님은 나의 빛이시며, 나의 영광이십니다.

이 주님은 지금도 나의 곁에 다가와서 “네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시는 주님이십니다.
ㅇㅇㅇ야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시는 주님께 우리의 기도 제목을 똑바로 아뢰어 눈을 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재물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입니다.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입니다.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잃는 것은 영생을 잃는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을 얻기 바랍니다.

199

5.

4.

2.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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