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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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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즉, 예수님에 대한 객관적인 견해를 물으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예수님에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물으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제자들은 서슴치 않고 사람들의 반응을 말씀드립니다.
그것은 더러는 침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반인들의 대답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습니다.
침례요한은 당시에 가장 존경받던 백성의 지도자로 허무하게 죽음으로 다시 태어나리라는 기대를 가졌던 인물이며, 엘리야와 예레미야는 최고의 예언자로 메시야의 오심을 준비하는 위대한 선지자이며 다시오리라고 예언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백성들의 말은 당시 예수님의 인기도를 측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 당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고 존경받는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신 질문의 요지는 이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다음에 이렇게 물으셨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지금까지는 예수님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들에 대하여 객관적인 견해들을 생각해봤지만 이제는 너희들의 생각을 말해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무어라 하더라도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는 주관적인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다른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바로 나의 생각을 물으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아는 예수”
바로 이것을 물으신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 단순히 예수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생각을 물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관계, 예수님은 과연 나에게 어떤분이신가하는 물으심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질문은 과거 2000년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단순한 질문이 아닙니다.
이 질문은 과거 2000년 동안 살아온 모든 사람들, 그리고 오늘날 모든 사람들과 미래에 모든 인류에게 던지신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질문은 단순히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던지신 질문이 아니라 개인 개인 한사람 한사람에게 물으시는 질문인 것입니다.
즉 지금 이시간 나에게도 던지시는 질문인 것입니다.
오늘 이시간도 이 말씀을 통해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하시는 질문인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우리는 다시한번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고 진지하게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대답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어떤분이신지,
나와는 어떤 관계에 있으신 분인지,
내가 어떻게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솔직하고 순수한 고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질문과 고백은 단 한번만의 사건은 아닙니다.
시간시간, 어떤 상황, 어떤경우, 어떤자리에서도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망설이는 제자들에 앞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베드로의 고백은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세상 모든 죄인들을 죄에서 구원하실 구세주이십
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떠나 문제와 저주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구
원하실 메시야이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뿐만 아니라 영원히 살아계셔서 우리를 구원하
실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수천년전부터 예언된 오실 구주 그리스도 바로 그분
입니다.

여러분 이 베드로의 대답은 예수님의 마음을 한없이 기쁘게 해드렸습니다.
이제 마지막 고난의 길을 가셔야할 고통의 때를 앞두고, 이제 당신의 일을 맡기셔야할 제자들에게 참 당신을 알도록 해야하는 그시점에서 이런 베드로의 고백은 예수님께 아주 고무적인 대답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의 고백은 새로운 시작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구원의 고백의 시작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영접하는 자, 시인하는 자는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롬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

또한 교회의 시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베드로의 고백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

또한 이 베드로의 고백은 사명의 시작입니다.
(갈4: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

뿐만 아니라 이 베드로의 고백은 축복의 시작입니다.
(마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늘문이 열리고, 기도의 응답이 약속되는 축복의 시작인 것입니다.

결국 이 베드로의 고백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하나님께 돌아가서 잃었던 신분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된 삶을 살아가는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베드로처럼 이런 분명한 신앙고백을 가진다면 새로운 삶의 시작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저 필요할 때만 찾는 그런 예수님이 아니라 내 인생속에서 나의 모든 문제와 나의 삶에 함께 역사하시는 그런 예수님입니다.
악세사리처럼 예수믿는 모양과 냄새만 풍기는 것이 아니라 그 생활속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그런 모습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런 감격적인 고백속에 새로운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로, 부활의 증인으로, 사도중의 사도로, 존경받는 교회의 아버지로 값진 삶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실패도 있었습니다.
부끄러움도 있었습니다.
낭패한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반석과 같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변함이 없었고 베드로의 인생을 새롭게 세롭게 항상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도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이 있어야 겠습니다.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언제 물어도, 어디서 물으셔도 변함없이 대답할 수 있는 그런 고백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런 감격적인 고백이 항상 계속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작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로운 인생입니다.
교회부흥과 사명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축복의 근원이되어 나누는 삶의 시작입니다.
언제나 계속되는 이 귀한 신앙고백으로 항상 새로운 삶, 새로운 인생을 맛보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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