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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다리다 지친 사래 (창 16: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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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약속을 기다리다가 지친 아브람이 마음이 조급해져서 애굽 여자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이스마엘은 아랍 자손의 조상으로 중동 분쟁의 큰 불씨가 되었습니다.
본문을 통하여 아브람의 실수가 무엇이며 이런 아브람의 허물과 약점을 감당하시며 가정을 수습해 주시며 계속 아브람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아브람의 가정 문제(1-6)

15장에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약속을 받은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식을 주겠다(15:4)는 것입니다. 하늘의 별처럼, 땅의 티끌같이, 해변의 모래알 같이 많은 자손을 주겠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땅입니다.(15:7) 이런 약속을 하나님이 세 번을 이미 하셨습니다.(12:7, 13:15,16, 15:4)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자식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셨지만 언제 주실 지 그 기간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방법으로 주실 지도 말씀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아브람에게 있어서 답답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15:4절에 보면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고자 하는 아브람에게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라야 네 상속자가 되리라” 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10년이 되도록 아브람은 자식을 낳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이 휘청한 것입니다.
이 때 사래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사래는 나이가 많아지니까 마음이 초조하고 조급해졌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래는 자기가 더 이상 임신 할 수 없는 것과 또 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믿음은 인내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분명히 히11:1절 기다리는 것인데 이 기다림이 오래여서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아브람은 10년을 꾹 참고 기다렸습니다. 10년이 지나면서 흔들린 것입니다. 사래의 나이가 많고 자기도 나이가 많다는 것에 흔들린 것입니다.

아브람 당시 팔레스틴의 풍속으로 본처에게 자식이 없을 때에는 여종(노예)이나 다른 여자를 남편에게 주어 자기를 대신하여 자식을 얻게 하는 일이 흔했습니다.(창29:15-30, 30:1-9)
그래서 사래도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이 나에게 자식을 허락지 않으시니 혹시 나의 몸종인 이 하갈을 통해서 자식을 줄 것이라 생각을 하고 남편에게 여종과 동침하라고 합니다.
여기에 하갈은 누구냐 하면, 이는 애굽 여인으로서 아브람이 기근으로 인해 애굽에 내려갔을 때 바로가 사래를 자기 아내로 취하면서 많은 양과 소와 암수 나귀, 약대, 그리고 노비를 결혼 예물로 아브람에게 주었습니다. 이 때 노비가 올라왔는데 이 노비가 하갈이라고 합니다.(12:16)
당시 노비는 주인의 재산에 속했습니다. 노비는 사고 팔고, 예물로 주기도 하였습니다. 노비는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재산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니까 예컨대 소나 나귀가 새끼를 낳으면 주인의 재산이 되듯이 이 하갈이 새끼를 낳으면 주인 사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방법으로 사래가 자녀를 얻고자 하니까 2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사래의 말을 들었습니다. 이 사래의 말을 들은 것이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했는데, 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왜곡되게 생각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생각하고 받아 드렸습니다.
누가 보아도 그럴듯합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보편화되었습니다. 또, 누가 물으면 분명히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도 내 자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그 방법도, 일을 이루는 과정도, 목적도, 결과도 다 좋아야 합니다. 결과만 좋다고 해서 과정이 잘못되면 그것도 하나님의 방법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시작도, 과정도, 결과도 다 선해야 하고 좋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 15:4절에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했습니다. 그러면 아브람은 “예”하고 그 말씀을 믿고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받을 당시는 믿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기간이 흐르자 왜곡되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혹시 이런 방법으로 주시지 않을까 씨만 아브람 씨면 안되겠느냐 하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아브람은 언약의 말씀에 굳건히 서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사래의 말을 들었습니다.
이 사래의 말을 듣고 하갈을 첩으로 취한 때는 가나안 땅에 거한지 1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 때 아브람은 85세였습니다.

여기서 아브람이 실수한 것은 사래의 말을 들은 것입니다.
시조 아담이 그 아내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처럼 아브람도 그 아내 사래의 말을 듣고 애굽 여자 하갈을 받아 드리고 동침한 것입니다. 언제나 시험은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 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소리 보다 사람의 소리를 듣고 하갈을 취했습니다. 사래는 인간의 방법 , 불신앙적 방법을 취하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시험은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통해서 오기 때문에 결혼을 잘 해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과 해야 합니다.
사래는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못 들었다 치더라도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들었으므로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형편을 생각하고 자기 때에 맞추려 했습니다. 여기에 아브람의 실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때가 되면 가장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성취시킬 것입니다.
그 말씀 하시는 대로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의 때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사람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 때, 아브람의 가정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하갈이 아브람과 동침을 하고 난 후 자기에게 태기가 있음을 알게 되자 그만 교만하여 자기 여주인 사래를 멸시하고 무시했습니다. 사래를 업신여겼습니다.
당시에 여자가 임신하지 못하면 치욕으로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산(多産)은 신의 은총으로 생각했습니다.(21:6, 24:60) 이런 때에 하갈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래는 하나님께 범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임신하지 못하게 하고, 자기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자식을 주신다고 생각하고 또 자기가 자식을 낳으면 사래의 지위는 상실되리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주인 사래를 멸시했습니다.
한 편 사래는 노비인 이 하갈을 재산으로 약대나 양이나 소 같이 생각을 했는데(사고, 팔고, 죽이기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이 하갈이 태기가 있고 부터는 사래를 밀어내고 자기가 안방 마님 노릇을 하려고 했습니다. 사래는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래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이제는 여종으로부터 천대와 멸시를 받게 되었으니 얼마나 분통이 터졌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래의 불신을 징계하신 것입니다.
조금만 칭찬을 하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해지는 하갈을 통해서 신앙 훈련을 거신 것입니다.

잠언 30:21-23절 세상을 진동(震動)시키며 세상을 견딜 수 없게 하는 것이 서넛이 있는데 ① 종이 임금 된 것 ② 미련한 자가 배부른 것 ③ 꺼림을 받는 계집이 시집 간 것 ④ 계집 종이 주모된 것이라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세상이 진동을 하고 세상이 그 모양을 못 봐줘서 견딜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 하갈이 종으로 있다가 태기가 있다고 해서 경거망동을 하니까 그 모양을 못 봐주는 것입니다. 하갈은 종의 천박성을 그대로 들어냈습니다.
여기에 견디지 못한 사래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불신과 잘못된 방법을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이 책임이 아브람에게 있다고 뒤집어씌우고 불평을 하고 가정에 큰 불화를 일으켰습니다. 사라는 아브람에게 “나의 받는 욕은 당신이 대신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는 심한 가정 불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아브람은 사래에게 말하기를 “그대의 여종은 그대의 수중에 있으니 그대의 눈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당신의 여종을 다스릴 권한이 당신에게 있으니 당신의 좋은 대로 하시오(6) 하는 것입니다.
이 때 부터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습니다. 학대를 받은 하갈은 견디지 못하여서 교만한 것을 회개하지 않고 사래 앞에서 도망을 하였습니다.
아브람은 이 일로 말미암아 많은 괴로움을 당해야 했습니다. 평화스러워야 할 가정에 큰 태풍이 휘몰아 친 것입니다. 쫓겨나고 쫓고, 아기를 가져서 배는 부른데 서로 미워하며 결국은 쫓아낼 때 그 아픔이 얼마나 했겠습니까

그럼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정하신 때에 반듯이 그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21:2) 그러므로 하나님께 때를 맡기고 그 약속을 이루기까지 인내함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믿음이란 바라는 것이요(히11:1)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것입니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면 참으로 기다려야 합니다.(롬8;25)
사도 바울은 말세가 되면 사람들의 마음이 조급해진다고 했습니다.(딤후3:4) 이 말은 인내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밥도 뜸이 푹 들어야 제 맛이 나는 법입니다.
세계적으로 한국 사람을 가장 쉽게 알아 볼 수 있는 곳이 공항이라고 합니다. 어느 나라에서든 “빨리 빨리” 라고 하면 “Korea!”라고 한답니다.
세계적으로 통하는 말입니다. 조급합니다. 이 조급함으로 믿음의 비밀을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아브람에게 자식을 금방 주시지 않고 많은 뜸을 드렸습니까 이것은 아브람의 믿음을 연단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브람은 이러한 시련을 통해서 인내를 배우고 믿음의 뿌리가 내려지며 믿음의 조상으로 자라간 것입니다.

Ⅱ.가정 문제를 수습해 주신 하나님(7-16)

당시 사회의 관습에 따르면 하갈을 종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사래의 정당한 권한이었습니다. 하갈을 다시 종으로 환원시켜도 좋다고 한 아브람의 허락과 동시에 하갈은 첩의 신분에서 다시 종의 신분으로 전락되어 학대를 받고 쫓겨났습니다. 하갈은 애굽 여인으로 애굽에서 왔으므로 애굽으로 쫓겨가는 길입니다. 이렇게 쫓겨 갈 때 하나님의 사자가 술로 가는 길 옆 광야 샘 곁에서 하갈을 만나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 하십니다.
이는 그 근본을 물으신 것입니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본래 애굽에서 왔으나 아브람의 노예입니다. 메인 몸인데 어디로 가느냐는 것입니다. 하갈은 임신을 했습니다. 임신을 해도 종의 자식은 제 자식이 아니오 주인의 자식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천사는 다시 하갈에게 말씀합니다.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했습니다. 주인 곁으로 돌아가서 고생을 참고 견디면서 너의 본 위치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하갈의 교만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종의 미덕은 겸손입니다. 하갈의 문제는 교만입니다. 노예들은 노예의 근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칭찬을 해주면 금방 교만해지고, 없다가 있어지면 오만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여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받도록 도와 주셨습니다.(9) 그리고 하나님은 하갈을 돌아보셨습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잉태 하였은 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낮고 비천한 한 여종의 고통까지도 들어주시는 긍휼과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하갈은 자기 주인에게는 버림을 받았으나 하나님께서는 친히 돌아보아 주셨습니다. 하갈은 하나님을 뵈옵고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하갈을 친히 만나 아들을 낳게 될 것과 그 아들이 동방에서 살게 될 것과 이름까지 이스마엘이라고 지어 주시고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다고 전하니 하갈은 매우 기뻤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사자를 만난 곳을 “브엘라헤로이”(Beerlahai-roi)라 했습니다.(14) 이는 “나를 감찰하시는 우물” “나를 돌아보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아마 하갈은 일생 동안 이 하나님을 만난 터(곳) 우물을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갈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돌아와서 아이를 낳아 이스마엘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 아브람의 나이는 86세로 가나안 땅에 나온지 11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이 상에서 볼 때 하나님은 아브람의 치명적인 약점을 감당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릇된 판단과 정욕적인 생각에 빠져 큰 죄를 저지르고 죄의 씨앗을 잉태 하였는데도 그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가끔 휘청휘청해도, 싹수가 노란 자, 쓸모 없는 자, 은혜를 모르는 자라고 몰아 부치지 않으셨습니다. 부모와 같은 심정으로 돌아보셨습니다. 친히 가정 문제를 수습해 주시고, 아브람의 약점을 묻어 가시며 아브람을 키워 가십니다. 어떻게 하든지 부족하고 휘청휘청하는 아브람에게 기대를 거시고 당신의 말씀하신 대로 복의 근원으로 믿음의 조상으로 키우시고자 하셨습니다.
이 사랑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찬양 받으실 하나님을 길이 길이 섬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입니다.

1996.

3. 10.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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