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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 아래의 체험 (행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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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믿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믿음에 대한 정의는 다 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에 대한 올바른 정의 없이는 바른 신앙생 활이 불가능합니다. 그러한 믿음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어디로부터 온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능력 은 다름아닌 자신의 부인에서 시작됩니다. 자신을 비우는 그 공간으로 부터 하나님의 가능성의 세계가 열립니다. 그 부인을 스스로 날마다 확인하애 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 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고난으로 우리의 눈 앞이 가리워질 때에도 자신이 부인됨으로써만이 하나님의 가능성을 충 일해집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자신을 진실로 미워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사랑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나 자신이 부인되어야 하나님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 부각되면 하나님이 사라집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사울이 어떻게 자신을 부인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 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 베냐민 지파로 로마의 시민권을 가졌고 대단 히 능력있는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교육을 받았습니다. 산헤드린공 회원의 한 사람으로 율법 전통과 권력과 지식에 있어서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자기 긍지와 자기확신에 차있던 바울이 다메섹도 상에서 깨어집니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고백 하게 됩니다.

 바울의 화려한 지위와 명예도 그가 말 위에서 고꾸라져 말 아래로 떨 어졌을 때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은 것입니다. 말 위에서는 모든 인간 적 가능성으로 무장하게 되지만 말 아래에서는 자신을 완전히 배제하 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말 아래의 체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바울에게는 눈은 떴으나 보지 못하고 3일간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커 다란 충격이었습니다. 그 계기는 오직 하늘에서 홀연히 비치는 그리가 도의 빛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의 빛이어야 말 아래의 체험을 가 능케 하며 새 피조물로서의 경험을 하게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인간적 범주에 머물러 있으므로 하나님의 가능성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인 간적 가능성 위에 섰기 때문에 역사가 일어나지 못합니다. 온전한 믿 음으로 설 때에야 제한된 가능성은 사라지고 무한한 가능성이 열리게 됩니다.

 마음 속의 미움과 증오로 고통할 때 지식이나 철학, 사람의 언변으로 미움은 제압되지 않습니다. 가진 것도 없어 용기가 없어질때 절망과 좌절에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오직 말 아래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가능성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왜 힘이 없고 감격과 기쁨이 없습니 까영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말 아래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가능성만을 바라볼 때 놀라운 지평이 열립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 스도의 십자가만을 바라볼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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