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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를 바라보는 자들 (창 09: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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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후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였는데, 본문에는 ‘땅을 일구는 사람’으로 되어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땅’에 관사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구절은 노아가 소유하였던 땅을 홍수로 인해 잃어버렸다가 이를 다시 회복하게 되었다는 의미를 나타내 줍니다.
여기서 포도나무 경작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포도 경작은 서아시아, 특히 시리아와 팔레스틴의 주업 이었 씁니다. 포도 농사를 짓고 포도주를 만들어 먹은 후 노아는 벌거벗었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스스로 옷을 벗어 버렸습니다.’
무절제한 폭음은 수치를 당하게 하며, 가장 존경받는 사람을 짐승의 수준으로 끌어내립니다. 아버지의 허물을 보고 한 아들은 그것을 들추어 내었고, 두 아들은 덮어주었습니다.
즉, 다른 사람들이 지은 죄를 보고 마음 속으로 즐거워하거나 이를 조롱하는 것은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대수롭지 않은 사건으로도 도덕적 본성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보다 높은 덕에는 이 세상의 악으로 인한 어려움과 혼란에 순응할 수 있는 훌륭한 천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수치를 사랑의 행위로써 숨겨주고 덮어주어 우리의 힘으로 잊혀지게 할 수 있는 데도, 이를 세상에 공포하는 것은 비천한 정신의 표시라고 하겠습니다.
사랑은 덮어주는 것입니다.
함은 아버지의 벌거벗은 모습을 덮어드리는 대신에 오히려 더욱더 드러내어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함은 아들로서 아버지에게 죄를 범한 것이며, 또한 형제로서 그의 형제들을 유혹하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6:1-3
엡06:0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 하리라”
본문은 자녀가 부모에게 대하여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은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첫’ 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1).그 중요성에 있어서 으뜸이라는 해석이고
2).십계명 두번째 돌비인 대인 관계의 계명 가운데, ‘첫번째’ 라는 해석이고,
3).십계명 가운데 약속이 붙어 있는 첫번째, 계명이라는 해석이고,
4).유대인 아이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계명이라는 뜻에서 ‘첫’ 이라는 말이 첨가 되었다는 해석 입니다.
십계명 가운데 약속이 붙어 있는 계명은 제2계명과 이것뿐인데 그것도 순수하게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는 복의 약속이 본 계명에 붙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육적인 부모를 섬길 줄 알아야 하늘 아버지도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 신앙은 부모 공경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사회의, 윤리나, 도덕이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이 이것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즉, 율법에서 가르치는 단순한 순종이 아닙니다. 성도는 부모에게 하는 것을 주께 하듯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5:23-24
마0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드리라”
율법을 완성하기 위하여 오셨다고 하는 주님의 말씀이, 본문에서는 개개의 율법을 들어 그 율법이 본래 뜻하고 있는 바를 단순한 문자적 이해에서 벗어나 확장 해석함으로써 그 의미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화목의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스스로 화목제가 되셨습니다. 이웃과의 화목, 형제와의 화목은 우리의 책임과 의무입니다.

우리의 형제와 이웃과 화목하지 아니하고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시 66:18)“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우리는 이웃과 형제에게 원망을 들을 만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화목해야 합니다. 제단에 예물을 드리고 예배를 드리는 일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화목하는 것입니다. 용서를 해 주되 끝까지 해 주고 화해하되 늘 사랑으로 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풍성한 영적인 교통을 나눌 수 있습니다.

“서론”
경북 상주군 화북면 소곡 리에는 열 살난 어린아이에 무덤과 비석이 있습니다. 1974년 1월 아버지와 함께 외갓집에 다녀오던 국민학교 4학년 정재수군의 무덤입니다. 그는 혹한의 추위에 아버지와 함께 산길을 넘어오다 험한 눈보라를 만났습니다. 만취된 아버지는 인적이 드문 산 속에서 쓰러지고 어찌할 수 없는 어린 재수군은 아버지의 몸이 식어 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옷을 다 벗어 아버지를 덮어주고 고사리 손으로 시려 운 발을 동동 구르다가 그 자리에서 얼어 죽고 말았습니다.

‘정의’ 허물을 덮는다고 하는 것은 생색을 내기 위함이나 위장된 겸손을 보이는 모습이 아닙니다. 덮는다는 것은 부분적으로, 내가 용납하고 관용할 수 있는 만큼만 덮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덮는다는 의미는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양 한 마리를 잡아서 피를 뚝뚝 흘리는 양의 껍질로 아담과 하와를 덮어주신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즉, 구속의 신비입니다.

‘동기부여’ 서로 덮어주고 감싸주어야 할 가장 작은 공동체인 가정이 참된 안식과 위로의 장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부모와 자녀간의 대화, 자녀와 자녀간의 문제, 이 관계 질서가 깨어지고 있는 이때, 혈연으로 맺어진 가정이 먼저 덮어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뿐 아니라 교회가 서로 허물을 덮어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방법론”1)허물을 덮어야 합니다.
(창9:23)“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우리는 완전한 사람도 아니고 천사도 아닙니다. 나의 허물을 다 고쳐서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자녀들은 지금까지 어머니의 치마폭에 모든 추한 허물이 감싸졌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자녀들이 부모의 허물을 덮고, 나이 들어 냄새 나는 부모를 감싸 안아야 합니다.
2).화목으로 감싸 안아야 합니다.마0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드리라”
화목하지 않고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마음의 죄악을 용납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화목입니다.

“결과” 1).아비의 허물을 드러낸 함은 저주를 받아 일평생 샘의 종들이 되어 형제를 섬겼습니다.(창9:25)“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2).아비의 허물을 덮은 샘과 야벳은 영원히 창대케 되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오고 가는 세대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3).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엡6:3)“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 하리라”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는 이 땅에서 잘 되고 축복과 장수의 축복을 보장받게 됩니다. (요일4:20)“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 하다면서 부모님께 순종치 않는 자는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 론”
오늘 우리가 부모님을 섬기고 부모님의 허물을 덮어준다고 하는 것은 우리 생명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얻어지는 결론은 우리를 존재케 한 자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일입니다. 지금도 경북 상주군 화북면 소곡리에 가보면 아비의 허물을 덮었던 정재수군이 죽은 자리에 ‘효자 고개’라는 푯말이 붙어 있습니다.

우리를 존재케 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그들의 허물을 덮고 그들의 신앙의 유업을 본받으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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