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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역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감사하라 (시 7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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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세상을 힘들게 살아가는 성도의 신앙생활에 감사가 없으면 사는 것이 허무해지기가 쉬운데 감사절기에 우리의 구원받음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을 찬양하여 우리의 삶이 늘 하나님의 목전(目前)에 있음을 기억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추수감사절 이후로 성탄감사를 기다리게 됨으로 년중 끝에서 지난 1년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요 감사의 기회입니다.

우리는 지난 1년동안의 무엇을 감사할 것입니까
오늘 본문의 저자인 아삽이 고통과 역경중에서 감사하게 된 경우가 이 땅에 사는 모든 성도들과 같은 처지일 것입니다.
본문에 시인은 번영하고 번창하여 감사드린 것이 아니라,막을 수 없는 극심한 재난이밀려왔을 때에 도저히 헤어 날 길이 없어서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구원하심을 감사하였습니다. 이 성도가 세상의 악인들 처럼 태평하고 평탄하게 산 것이 아닙니다. 어렵게 사는 연약한 자이나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성도였습니다. 세상적 표준과 판단으로 볼 때에는 전혀 감사가 나올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난 1년동안 감사 할 것으로 가득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배상을 청구해야 할 것으로 가득합니까

본문에 시인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공의로우신 통치를 믿었습니다. 이 확신에 찬 서두를 1절에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선하고 의로우신 분으로 드러내셨고악은 필히 벌하시고,선은 반드시 보상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으로 자기를 증거하셨습니다. 그러나 곧 2절에 하나님의 그 섭리(攝理)와 통치를 이해 할 수 없었음을 시인은 솔직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에 의인과 경건한 자가 복을 받고 번성해야 당연한 법인데 오히려 악인들과 오만(傲慢)한 자들이 번창하고,그들은 넘어짐도 없고,고통도 없고,재산 증가는 돈에 돈을 더하여 소원보다 더 넘치게 되었고,도도하고,교만하고,강포를 행하기를 즐겨하고 있습니다(3-9). 그런데 의로운 시인은 날마다 재앙의 연속이요,징게를 맛보고 있으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죄를 짓거나 불의한 일을 행하였으면 그 값이라 하겠지만 늘 무죄하게 사는데도 이런 일이 계속되니 자기 지혜로는 도저히 해답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인은 이 역경의 삶이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13절에 이럴바에야 의롭게 사는것이 다 헛된 것이라고 낙망하여 외치고 있습니다.
늘 악인과 함께 길을 걷지 않으려고,죄악의 자리에 함께 앉지 않으려고 조심하였고,누명을 썼으나 복수하지 않고 거룩하게 살아왔는데도 당하는 것은 종일 재앙과 징계와 책망 뿐이었으니 하나님의 공의가 이런 것인가 하나님이 세상의 왕이 아닌 것이 아닌가 세상을 안 다스리는가 날 사랑 안하시는가 시인은 낙망하였고,시험에 빠졌습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이를 고민하다가 17절에 성전에 나아가 하나님의 인자와 가르침을 받고서야 그 해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해답은 악인보다 넘치는 축복을 받아 재산이 늘어나고, 건강을 찾고, 만사가 형통하여 짐으로 만족과 위로를 받은 것이 아니라 다음 세상과 영원한 관점에서 이 세상에로 미끄러질뻔한 시험의 해결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악인의 결국과 의인의 결국이었습니다. 악인은 현세에서 번창,풍성,행복하여도 종말에는 파멸과 황폐와 전멸로 운명을 마치게 될 것을 본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종말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되고 현세에서는 하나님의 교훈을 따라 살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인은 이것이 의인이 받는 영원한 축복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해답은 실로 신앙적이었고,미래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그리하여 27-28에는 이제부터 늘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니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 1년간 주의 은혜를 감사하려고 시은소로 모였습니다. 우리도 물질의 축복과 번영과 건강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역경과 시련속에서도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려고 모였습니다. 그러니 성도의 감사는 역경속의 감사입니다.
그렇다고 기쁨과 소원성취가 전혀 없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올 한 해가 큰 행운의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혼,승진,득남,득녀,성공,등등)그러나 이런 것은 우리 인생길이 슬픔과 수고 뿐이라는 진리에 비추어 보면 그리 중요한 것이 못되는것 같습니다. 반면에 이별과 슬픔,실패,질병,가난,배신모함,오해 등으로 잊을 수 없는 악몽의 한 해일 수도 있습니다.
행 16장에 아시아에서 전도를 하다가 유럽으로 건너간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성에서 귀신들린 점장이를 고쳤는데 이것이 화근이되어 사실 심리도 못한채 재판을 받아 매질을 당하고 착고에 묶여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살이 터지고 찢어져서 심한 고통이 왔습니다. 인간의 본성대로 하면 미움과 분노와 복수심에 불타야 하지만 바울은 실라와 함께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양하였습니다. 옥중에 갇힘과 억울함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구원과 생명의 기쁨 때문에 감사와 찬미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성도들은 거의 다 고통과 역경속에서 하나님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성도의 길은 고난의 연속이요,고난의 길입니다. (시90;9-10,창47;9)
그러나 이 의로운 성도들이 받는 복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고,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아삽이 이 진리를 깨달은 후 세상에 현혹되어 신앙적 사고를 하지 못한 것을 뉘우치고 회개 하였습니다. 그는 신앙심(信仰心)이란 조금도 없이 좁은 마음과 짧은 안목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기 처지를 한탄한 것을 회개 하였습니다.
21-22에 보면 자기의 우매(愚昧)함과 무지(無知)하였음이 짐승처럼 되었었고,이 죄악을 심장이 찔리는 큰 고통으로 회개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의 법은 악인이 번창하고 의인은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을 의인이 바라 볼 때에 굉장히 부러워 보입니다. 아! 나도 저렇게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3절에 아삽도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 하였다고 토설(吐設 숨겼던 사실을 비로소 밝히 말함)하였습니다. 여기서 “질시”란 질투하고,샘을 낸다는 의미입니다. 한국 속담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시인도 오만한 자를 보고 샘을 내었다고 하였으니 악인이 목에 힘주고 거드렁거리는 모습을 보고는 배탈이 났던 것 같습니다.
아! 나도 저렇게 하면서 다녀 봤으면!
호의 호식하고,권세를 휘두르고,경쟁자와 원수들의 코를 좀 납짝하게 해 주고,명절날 집안의 형제와 친척들이 다 모이면 기 안죽고 목에 힘주고 다닐텐데,특히 욕심 많은 큰집(한국형) 식구들에게 자랑을 좀 할 것인데
아삽이 이런 사고방식에 빠져들어 그 정신이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붙드시는 은혜로(23절) 미끄러지지 않고 하나님 신앙과 충성으로 돌아 설 수 있었습니다. 시인은 바로 이 은혜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영광의 자리로 자기를 이끄실 것을 바라보고 더욱 더 성도의 올바른 자세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의 성도들도 아삽처럼 미혹되어 세상식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이용하여 악인보다 더욱 더 잘되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번성하고 부자가 되는 비결을 가르치는 교회와,드린 헌금액수와 봉사한 양(量)에
비례하여 억만배의 축복을 판매하는 교회에는 사람들이 가득 가득 모여듭니다. 이처럼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적 방식으로 부유하고,번창하려고 합니다.
힘껏 일하고,수고하여,고통과 땀의 결실을 얻기 위하여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지 않고도 남의 돈을 거저 가져가려는 도둑질 법을 가르치고,그런 방식으로 살아 가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악인이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가지 마십시오. 그들이 가는 길은 의인이 갈 길이 아닙니다. 이 세상과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욕심을 품지 마십시오.넓은 안목으로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세계관(世界觀)을 가지십시오. 이생의 유혹을 받지 마십시오. 시 1편에 악인의 최후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으리라”는 진리를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의인들에게 역경의 역사로 섭리(攝理)하시는가
첫번째 이유는 하나님에게만 붙어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도들이 평안하고 잘되기만 하면 마음이 타락하여 곧 주를 멀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은 역경이 있어야만 주님께 매달리게 됩니다. 계속 순풍만 불면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사모하는 열심이 식어지고 감사와 겸손이 없어지고 나 때문에 잘 된 것인양 자고(自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려움이 계속될 때에야만 하나님께 간구하고 신뢰(信賴)하여 항상 붙어있게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28절에 하나님의 합당한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잘 되기만 하면 죄를 지으려고 합니다. 잘 되기만 하면 죄를 지어도 되는 줄로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잘 되기만 하면 열심을 안내다가 역경을 만나면 그때서야 겸손해 지고,악을 버리고,열심을 내게 됩니다. 그러니 고난이 오면 빨리 회개하고 정신을차리십시오. 빨리 하나님을 순종 하십시오.
이처럼 고난은 신자를 신자되게 하는 훈련장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되게 하는 수련장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늘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가십니다. 이것이 자기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攝理)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오면 낙심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십시오. 육체가 병들고 마음이 쇠잔하여도(26절) 낙심하지 마십시오.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의인이 사모할 자는 주님 밖에 없습니다. 의인에게 영원한 분깃은 하나님 자신이라고 26절에 시인은 찬양 하였습니다. 그러니 의인의 부요함은 무엇입니까 시 16편에도 보면 하나님이라고 노래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심이,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이 든든한 반석이요,요새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 이것을 보배로 삼고,고통과 사망의 길에서도 항상 이 진리를 묵상하여 감사와 찬양으로 영광을 돌려 드리는 의인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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