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태아살인

첨부 1


우리 옛 선조들은 동해 먼 바다 건너에 여인국이 있다고 알았다. 이 나라에는 여인들만 산다. 섬 복판에 샘이 있어 그 샘만 들어다보면 아이를 배느니, 불어오는 남풍 앞에 가랑이를 벌리고만 있으면 아이를 배느니, 고기 잡는 어부를 잡아다가 아이를 배게 하고 없애버린다고도 한다.
이렇게 하여 딸을 낳으면 애지중지 기르고, 아들을 낳으면 궤짝 속에 넣어 바다에 띄워버린다. 후에 신라의 임금님이 되는 석탈해(石脫解)도 적녀국(積女國)이라는 여인국에서 궤짝 속에 담겨 버림받은 기아(棄兒)다. 남성상위 사회의 횡포가 너무 지긋지긋하여 우리 옛 여인들이 상상 속에 세운 반항적 이상향인 것이다.
우리 역사의 어느 한 시기, 어느 한 지방에 아들을 낳으면 거세하거나 생매장하는 여인국이 없지는 않았다.
두만강 유역의 변경(邊境)지역에선 아들을 낳으면 다 자라서 병역을 치르게 될 때까지 병역유예세랄 군보포(軍保布)를 바쳐야 했다. 그래서 아들을 낳으면 베 50필을 빼앗기고 딸을 낳으면 베 50필로 팔 수 있다 하여 딸을 낳으면 경사났다하고 아들을 낳으면 통곡을 하며 고추를 자르고 생매장하는 관례가 유계(兪棨)의 '시남집(市南集)' 등 관북지방에 유배당했던 분들의 문집들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환상 속의 여인국이건, 실제 있었던 여인국이건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비정사(非情史)가 아닐 수 없다. 한데 현대에 이 같은 비정사가 벌어지고 있다면 곧이들리지 않을 것이다. 남녀라는 성별이 바뀌었을 뿐이요, 그 비정행위가 태어난 후에 저질러지던 것이 태어나기 전에 저질러진다는 차이가 있을 뿐 엄연히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양수검사(羊水檢査)나 초음파검사(超音波檢査)로 태아의 성별을 미리 감식, 사내아이만을 가려 낳는 태아살인이 그것인 것이다.
동남지나 해상에 '파라'라는 섬이 있는데 이 섬의 추장은 무척 여성공포증의 컴플렉스를 가졌던지 주력(呪力)과 약을 써 여자들의 시기, 질투, 앙칼이며 희비애로(喜悲哀怒)의 감정, 애정, 정욕까지 모조리 증발시켜버렸다. 무성인간(無性人間)으로 만들어 남자가 그에 홀리지 않게 한 것이다. 그렇게 해놓자 남자들끼리 치고 패고 싸워 그 종족이 자멸해버렸다는 전설의 섬이다.
영국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이 전설을 바탕으로 '파라'라는 이상향소설을 지어 유명하다. 남녀가 1대 1의 비율로 태어나게끔 된 천기(天機)를 어기면 파멸의 화가 미친다는 건 자명한 일이다. 우리나라 산부인과 의사들이 태아 성별검사를 하지 않기로 자율규제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것은 천기에 순응하는 일일 뿐 아니라 한국인간사에 도표(道標)를 세우는 장한 일이랄 수가 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