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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드린자가 받는 축복 (삼상 02: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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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라고 로마서 12:1에 말씀하고 있읍니다.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이란 곧 하나님께 드리는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챤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무엇인가를 하나님께 드리려고 힘쓰며, 드리고 드리고 또 드려도 더 드리고 싶은 갈망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드리기를 힘쓰는 사람은 또한 거기에 부응하는 축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드린 자가 받는 축복”이란 제목으로 오늘 말씀 드리겠읍니다.

1. 드린 자가 길이길이 흡족함을 얻는다.

오늘 성경말씀속에 한나의 신앙길은 경건한 여인으로서 남편도 잘 만났고 살림살이도 부요하고 집안도 평안해서 남부러울 것이 별로 없었는데 한가지 불행한 것은 그는 아기를 낳지 못하는 석녀였읍니다.
여인에게 있어서 불임증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밖에 버려진 증거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그 당시 사회의 통념이었읍니다.

그래서 한나는 그가 단순히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슬픔보다는 하나님의 은총권 밖에 있다는 슬픔 때문에 창자가 끊어질 듯하는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삼상1:11에 “여호와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한나의 이 기도응답으로 얻은 아들이 사무엘(기도하여 얻은 아들이란뜻)이며 한나는 그의 서원기도 그대로 사무엘의 젖뗄 때를 기다려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그대로 이행했읍니다. 그 결과 그는 마음에 흡족함을 경험할 수가 있었읍니다. 낮이나 밤이나 집에 있을 때나 종종 아들 사무엘을 찾아가 만날 때나 그냥 흡족하기만 했읍니다. 이것이 바로 드린 자가 받는 축복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무엇엔가 쫒기는 사람처럼 불안과 초조와 긴장 속에서 살고 있읍니다. 왜 이처럼 현대를 불안시대라고 조바심을 갖고 있읍니까
이는 서원을 이행치 않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선출을 받을 때, 혹은 직분을 받을 때, 주일 성수와 공공예배참석, 헌금생활을 서약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쁘다는 핑계로 주일도 자주자주 범하고 가난하다, 넉넉치 않다, 여유가 없다라는 구실로 헌금도 십일조도 형편따라 도용하고 이행치 않고 보니 기름진 음식을 먹고 나서도 목에 가시가 걸린것 처럼 불안하기만 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한나처럼 바쁘더라도 주일 지키는 서원을 이행하고 어렵더라도 드릴 헌금만은 아깝더라도 드려보자는 것입니다.
반드시 한나처럼 흡족함을 길이길이 얻게 될 것입니다.

2. 드린자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습니다.

서양의 한 식물학자가 똑같은 날 같은 종류의 사과나무 두 그루를 같은 땅에 같은 조건으로 심었읍니다. 그런데 이 식물학자는 똑같은 조건으로 사과나무를 심으면서 한 나무는 축복을 하면서 심고, 한 나무는 저주를 하면서 심었읍니다. 겨롸로 한 나무는 축복한대로 무성하게 잘 자라 최고의 사과를 결실하였는데, 한 나무는 저주한대로 빈약하게 자라나 제대로 먹을 수도 없는 돌사과 몇 개를 맺었다고 합니다.

하물며 인간은 오죽하겠읍니까
저주를 받아 좋을 것이 없읍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눈밖에 나서 될 일이 없고, 사람들과 섞여사는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저주를 받아 이로울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는 물론이요, 사람들로부터도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쓰는 자는 바로 이러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한나는 어린 사무엘을 데리고 실로로 찾아가 미리 서원한대로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를 잘 가르쳐 주기를 제사장에게 부탁하고 맡겼을 때 제사장 엘리는 한나에게 부탁받지 아니한 축복까지 해 주었읍니다.(20절)
서원을 그대로 이행하는 한나의 신실함이 갸륵하고 하나뿐인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그 정성과 신앙이 감동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생활은 넉넉한데도 헌금에는 인색하고, 몸은 건강하면서도 예배출석은 게을리하며, 시간은 남아도는데도 교회 일에는 꾀를 사리고, 배운것은 많은데 충성 봉사는 회피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은 물론 교인들로부터도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가난한 형편에도 헌금에는 항상 앞장서며, 병들고 약한 몸으로도 주일 지키며 예배 출석에 빠짐이 없고, 바쁘고 틈나지 않는데도 교회 봉사에 적극적이며, 높은 학력을 가진 자도 아닌데 교회 발전에 큰 공을 세우는 사람, 이런 사람은 하나님은 물론 교인들로부터도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드리기를 잘한 한나의 축복입니다.

3. 하나님께 드린 것은 잘됩니다.

만일 한나가 서원을 했지만은 아들 사무엘을 바치기가 아까와서 서원을 이행치 아니했더라면 사무엘이 그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무엘이 어렸을 때 홍역을 앓다가 죽었을는지, 소아마비로 불구가 되었을는지, 무사히 잘 자랐다 해도 엘리제사장의 아들들처럼 불량자가 되어 가정과 사회를 어둡게 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하나님께 드려진 사무엘을 얼마나 영광스럽고 귀하게 되었습니까 ①이스라엘의 사사로 발탁되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지대한 공로를 세운 지도자였습니다. ② 선지자로 봉사했습니다. 사사로써 선지자직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③ 이스라엘의 국부가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전환하는 중요한 시기에 1대왕 사울 왕과 2대왕 다윗 왕을 손수 기름부어 세우면서 나라를 신앙의 초석 위에 세운 이스라엘의 국부로서 역사를 이어오며 존경받는 훌륭한 인물인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은 잘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하나님께 드린 것은 드린 것보다 더 많이 받습니다.--축복입니다.
사무엘을 드리는 한나의 신앙에 감동되어 엘리 제사장은 축복을 했고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하나는 그후에 3남2녀의 자녀를 더 낳게 되었으니 본래 아기를 못 낳는 석녀가 이렇게 아기를 낳았으니 기적적인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한나가 이를 생각하고 사무엘은 드린 것이 아니라 다만 그는 서원기도로 얻은 아들을 서원대로 하나님께 드렸을 뿐입니다. 그리고 감사와 기쁨과 영광으로 가슴이 벅차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하나님께서는 한나가 드린 한 아들 대신 세 아들과 두딸을 더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레 겁을 먹고 결단을 못 내리는 수가 많습니다. 이것을 드리고 나면 나는 어쩌란 말인가 하고 망설이기만 하다가 그것마저 잃고마는 경우가 하나둘이 아닙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드릴 것을 결단하는 사람은 자신이 드린 것보다 더 많이 더 크게 받는 신비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뱃세다 광야의 한 소년은 그의 전소유인 5병2어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 행위 자체로 그의 마음은 흡족해 있었는데 그로인해 주님과 거기에 모인 무리로부터 축복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많은 사람을 배부르게 해줌으로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것보다 훨씬 값지게 쓰여졌을 뿐아니라 자신이 드린 것보다 훨씬 값지게 쓰여졌을 뿐아니라 자신이 드린 것보다 훨씬 많이 받아먹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뱃세다 소년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드리기만 한다면 여러분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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