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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완전케 하시는 주님 (신 10:16, 마 05: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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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것에 있는 법칙

얼마 전 친구가 제게와서 큰일났다는 하소연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용인즉 입학할 때 작은 서류를 학교에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어려운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에 사정을 했지만 규칙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해서 눈물을 머금고 다시 시험을 보아야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곳에는 이러한 규칙이 있어서 그런 규칙에 의거해서 모든 것이 움직여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쉽게 우리의 생활을 생각해 보아도 밤 10시쯤이 되면 잠자리에 들게 되고 6시쯤이면 일어나서 식사를 하고 학교에 가고 주일이면 교회를 오고 시간이 되면 학원에가는 등 규칙에 따라 사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학교나 가정, 그리고 사회에서도 규칙에 따라 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규칙을 어긴 사람들은 가정에서는 매를 맞거나 학교에서는 학교를 잠시 못다니게 되거나 사회에서는 감옥과 같은 곳에 따로 수용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게 우리의 몸을 보아도 마음은 생각을 하고 거기에 따라 몸은 움직이며 음식을 먹으면 소화기관을 통해 음식이 살로 피로 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다니는 학교에도 교칙이 있어서 몇시까지 등교를 해야 되고 국어 수업을 받아야 하며 미술수업을 받아야하고 체육수업을 받아야 되며 3년간의 과정을 마쳐야 된다는 규칙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매일 다니는 거리에도 일정한 규칙이 있으며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또한 규칙에 의해 움직이는 것을 알수 있으며 나아가 우주 또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일정한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을 해 보면 이러한 규칙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계속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사람들은 그 때 그 때마다 필요한 규칙들을 만들어왔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좋으니까 일찍 일어나는 것이고 3끼 식사를 하는 것이 건강에 좋으니까 3끼 식사를 하는 것이며 3년 정도 수업을 받는 것이 적당하고 횡단보도를 통해서 길을 건너는 것이 교통에 편리하니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규칙을 철저하게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옛날에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사형을 달게 받았던 것을 알 수 있으며 칸트라는 철학자는 사람들이 그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시간을 맞출 정도로 정확하게 규칙에 따라 사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반대로 모든 규칙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즉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규칙이 사람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무것도 지키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이러한 규칙에 대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고 더 좋은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모든 규칙은 없어져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2. 규칙을 완성시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살던 당시에도 그리고 구약시대에도 이러한 문제는 있어왔던 것을 오늘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런 문제로 고민하며 갈등을 격었던 구약시대의 사람들과 신약시대의 사람들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구약시대에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에 할례를 받으라는 말은 무조건 규칙만 잘지키라는 말이 아니라 왜 그런 규칙을 주었는지 마음으로 깨달으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즉 몸 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깨끗해져야 한다. 즉 좀더 완전한 사람 좀더 바람직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규칙을 지킨다고 하면서 왜 그러한 규칙을 지키라고 했는지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겉으로만 규칙을 지키는 체하지 말고 참 마음으로 알고 그러한 규칙을 지키라는 말씀이며 신약의 예수님의 말씀 또한 내가 너희들에게 규칙을 준 것은 너희들을 괴롭히거나 너희를 잘되게 하기 위해서 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신 규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규칙을 감히 어기면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욕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선 내가 온 것은 그러한 법칙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온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하나의 규칙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횡단보도로 건너야 된다는 규칙이 있다고 합시다. 그것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지 그 횡단보도만이 건널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이 났거나 사람이 다쳤는 데도 반드시 그곳으로 건너서 가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은 36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라는 규칙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이 36도라는 것은 평상시에 온도를 말하는 것이며 운동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할 때는 더 높아질 수도 있고 낮아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의 몸이 36도라고 했으면 36도가 되지 않는 사람은 모두 비정상이라고 따돌렸다는 것입니다. 즉 안식일에는 900미터 이상을 걷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안식일에는 그 많큼 먼 곳을 가지 말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으로 사용해라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무조건 900미터만 가지 않으면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으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마치 몸의 온도가 36도라고 해서 운동을 해도 추운날씨를 만나도 무조건 36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처럼 36도가 정상이지 환경이 변할 때는 변한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 않는 사람과 같은 말을햇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하나님께서는 과거 모세를 통하여 그리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우리들에게 주어진 규칙의 참 의미들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3. 완전케 하시는 주님

오늘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말씀을 통해서 율법을 완성시키시고자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무조건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이 올바른 사람으로 알고 무조건 규칙을 잘 지키고 보자는 친구들이 있고 때로는 예수님께서 규칙을 지키지 않았는데 나도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무슨 규칙이 이렇게 많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규칙을 지키지 않고 대충 살아가는 친구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생각을 하는 우리들에게 너희는 내가 규칙을 완전히 없애버리거나 부수어 버리는 사람과 같이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부조건 규칙을 따르는 것도 무조건 무시하는 것도 아니라, 그러한 규칙을 완전하게 만들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완전한 규칙 즉 완전케 하신다는 의미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마치 사람이 점점 자라나면서 완전한 사람의 모양을 갖게 되는 것과 같이 좀더 바람직한 모습 좀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시며 나가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완전한 규칙은 없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규칙이 없는 것은 완전한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며 규칙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고정되어 있는 마치 무생물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해 줄 횡단보도가 있을 수 없고 모든 학생들을 만족하게 해주는 입시제도가 없고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해 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상황을 다 만족시켜 줄 규칙은 없다는 것입니다. 조금전에 제가 말했던 것과 같이 분면히 그런 규칙은 잘못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보아야 되는 것이기 때문인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이러한 규칙이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완전한 것으로 변화시켜 주시고자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사랑의 규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규칙이 없는 가운데서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규칙, '하지 말아라' '해라'는 의무없이 스스로 책임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규칙을 지키는 사랑의 규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많은 규칙을 주신것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책임을 지고 살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의무를 주었던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많은 규칙들을 주시지 않았을 거입니다. 즉 안식일을 지키라는 등 살인을 하지 말라는 등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등 도적질을 하지 말라는 등 많은 규칙을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책임을 지지 않았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나의 규칙에 또 몇 십개의 규칙을 덧붙여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복잡한 규칙속에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신 하나님의 규칙을 따라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몸이 우리의 상태에 따라 온도가 변하되 튼튼한 몸은 36도를 유지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생활 또한 우리에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전해 내려오는 규칙을 따르되 못박아버리고 절대로 변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몸 바람직한 몸 튼튼한 몸 36도를 향해 노력하는 것과 같이 우리들 또한 건강한 마음 모든 가족이 만족하는 사랑의 가정 모든 친구들이 만족하게 된 사랑의 학교, 사람들이 만족하게 되는 사랑의 법칙이 규칙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향해 우리에게 주어진 규칙들을 변화시켜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4. 온전케 하는 생활

먼저 나의 생활을 살펴보면서 나의 생활이 어떻게 하면 가장 바람직한 모습으로 변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나의 생활규칙을 날마다 바꾸어 나가는 생활을 해야겠으며 또한 어떻게 하면 우리의 가정이 사랑의 법칙이 있는 가정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내려간 온도와 너무 올라간 온도라면 조정을 할 줄 아는 모든 생활 속에서 사랑의 법칙을 적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사랑의 법칙이 지배하는 교회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일가를 생각하며 스스로 교회의 규칙들을 지킬 줄 아는 예배 시간이 늦었다고 예배를 포기해 보리거나 포기해버리는 것이 아닌 사람으로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이 지배하는 사회로 만들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같이 무조건 주어진 규칙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죽어도 안되라고 못박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좀더 완전한 나의 생활의 규칙, 좀더 완전한 학교의 규칙, 좀더 완전한 교회와 사회의 사랑의 규칙을 향해 매일 나의 생활의 규칙을 바꾸어 나가며 주님과 같이 완성시켜 나가는 친구들의 삶이 되기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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