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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장 뛰어난 이름 (엡 03: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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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라고 하여 한세상 살면서 무언가 보람된 일을 하고 죽는 것이 사람다움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미 우리 주위에서는 사라져 가고 있지만 가정마다 그 가정을 대표하는 가장의 문 패가 대문에 붙어있었다.그런대 지금은 다세대 주택이 밀집되면서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인간성까지도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다웁게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어제 신문에는 며느리의 학대를 고발하는 진정서를 가슴에 품고 5층에서 투신한 권완근 할아버지에 관한 기사가 우리의 마음을 괴롭게 했다. 억울하 다며 몸부림 치는 며느리와 변명하기에 급급한 아들,그리고 그러한 자식의 모습을 보며 비통함과 분노에 치를 떠는 모친..주께서 예언하신 말씀대로 말세의 증상으로 만 덮어버려야 할 문제인가 전혀 구제 불가능의 문제인가 혹시 주님을 따르기에 이것을 핑계삼아 내 부보에게도 이러-한 소외감과 고통을 안겨 주고 있지는 않는가 살펴보자. 그래서 성도라는 가장 귀한 이름의 사람들다웁게 이 시대를 전환시켜 나 가는 능력의 사람이 되어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BC와AD의 전환점이라고 한다면 본문 12절과 13절에는또 다른 분 깃 점이 제시되고 있다.첫째는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성령의 사역에로의 전환이요,둘 째 는 '우리'의 개념에서 '너희'의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그러므로 교회 역시 성령 께서 역사하시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그래서 '나'라는 개인적인 감정에서 '우 리'라는 집단적인 신앙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며 나아가서는 우리끼리라는 동료의식 에서 더 큰 차원의 '너희'라는 개념으로 바꿔져야 할 것이다.

13-14 그 안에서 =23절 교회는 그의 몸이니,우리는 그의 지체이다.그 안에서 우 리가 얻어야 하는 3가지는

1. 진리의 말씀(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 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그러면 말씀에 귀 기울이어 듣는 자 는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1)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약1:19).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어떤 것이든지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라는 것이다.베뢰아 사람들은 간 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믿는 사람이 많았다(행17:11).그러므로 진리를 알수록 말 수가 적어진다. 그리고 모든 일 에 절재하며 인내하는 모습을 보인다.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덕이다.아무리 산을 옮길 만한 능력이 있고 40일 금식을 잘해도 열매가 없다.열매는 내가 맺는 것이 아니다.

밭을 일구고 씨를 뿌려준 사람,거름을 주는 사람,가꾸고 돌봐준 사람,그리고 자라도 록 하시는 하나님 모두의 도움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혹시 나는 나의 열 매를 내가 따먹기 위해 열매를 만들어 가고 있지는 않은가 한 나무에서 내 가지에 만 열매를 맺기를 원한다면 과연 그 모습이 아름다울까 생각해 보라.

 2) 듣고 잊어 버리는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이다(약1:25):잊었다는 것은 마음에 명심하여 담지 않았다는 것이요,듣는 일에 잘못된 습관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 므로 나쁜 습관은 속히 버려야한다.

 <예화>예수님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를 받아들고 축복하신 다음, 사람 에게 나누어 주셨을 때 모든 사람들이 먹고도 남을 만큼 풍족하였다.이러한 기적은 곧 '받아들임'에서 비롯된 것이다. 배고픈 사람들과의 일체감에서부터 먹을 것이 생 겨나는 것이며, 자비심이 구제를 가능 케 하며, 아끼고 염려하는 마음이 곧완전한 치유를 가져온다.이웃에게 좋은 일을 하겠다는 집념에만 사로잡혀 고통받는 사 람의 절실한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의 도움이란 머 리와 손 사이의 중간 지 점에만 머물게 될 뿐 가슴속까지 들어가지는 못한다. 그러나 홀로 고독에 잠겨 있 을 때 우리 마음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경계망을 서서히 끊어버리면 우리 마음 은 넓고 깊게 자라서 인간과 관계되는 모든 것을 정답게 받아들이게 된다.

 2.그안에서 또한 믿어(본문13 ):그러면 왜 아멘으로 받지를 못하는가

이는 말씀 을 증거하는 자와 한 믿음으로 화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히4:2).

그러므로 말씀을 듣는 자는 예수 안에서 먼저 증거하는 자와 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말씀과 우리의 양심의 거울을 통해 항상 올바로 보지 못하 면 이장림씨 개인의 사악한 성품을 진짜인양 믿게 되는 것이다.

 3.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위에서 열거한 말씀대로 듣고,믿으면 그의자 녀된 증거를 주신다.

 이를 보증하신다고 하셨다.보증이란 '아라본'이란 상업적인 용어로서 물건을 사 는 사람이 물건값을 모두 지불할 때까지 맡기는 담보물을 의미한다. "성령으로 아니 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전12:3)". 그래서 성령님을 보내시어 이 사실을 믿게하고 따르도록 하는 마음을 내게 주신 것이다.

 왜 이러한 단계를 통해 보증해 주시는가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도록 하시려 고(14). 이러한 하나님의 영 광이 온 교회에 넘칠 때에 우리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무엇일까요

1.좋은 소식을 듣게 한다15절):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의 신앙은 행19장에서 아데 미 여신을 숭배하는 무리들의 소요와 핍박으로 인해 고난을 당했으나 오히려 그로인 해 성장했다.그리고 성도들 간에 더욱 결속한다.소식을 듣고 바울은 감사하며 더욱 감사의 기도와 관심을 쏟고 있다.이러한 은혜는 바로 나를 선택하시어 구속하시므로 영광을 찬미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전재되어 있기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15절 '이를 인하여'),너희를 인하여(16)-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기초로 하 여 살되 생활 속에서 그것이 능력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본문은 자신의 내면에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두가 지는 항상 함께 사역한다.믿음은 뿌리와 같고 사랑은 열매와 같은 것이다.

 2. 하나님을 알게하신다(17):하나님을 아는데는 여러가지의 방법이 있다. 그 첫째 가 지혜와 계시의 영을 통한 것이다.지혜란 일반적인 이해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 신을 나타내시는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며 이것은 성령님의 은혜 를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이다.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인간들은 신비한 자연의 현상을 보며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그러나 그것들의 신비가 하나씩 벗겨지자 인간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자신들을 위한 신을 창조해 낸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은 이미 오 래전부터 이를 감추었다가 선지자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 려고 계시를 좇아 알게하시는 복음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롬16:25-27). 그 러므로 이 계시는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아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고전2:12).

 3.마음의 눈을 밝히신다(18-19):어떻게 하면 마음의 눈이 밝아질수 있을까 첫째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 를 빼 리라(마7:5)".이 말씀은 아랍인들 사이에 전해오던 속담이다. 들보(도콘)는 집을 받 쳐 주는 큰 통나무이며 '티'는 가시나 나무 조각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도덕 적인 판단력이 없는 자가 자기의 판단기준에 의거하여 남의 가벼운 실수를 지적하는 행위를,혹은 자신에게는 관대하면서 타인에게는 냉혹한 마음을 가진자, 자신의 신앙 은 완벽한 줄로 여기나 도리어 자신이 더 비난의 대상임을 모르는 자를 가르킨다.

둘째 말씀과 희생에서 눈이 열린다(눅24:30-32):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의 마음 을 뜨겁게 한 것은 말씀이었다.이러한 내적인 충동이 그날밤 음식을 같이 나눌때에 눈이 열린 근원이 된 것이다.어떤이는 떡을 받는 순간에 주님의 손에 있는 못 자국 을 보았다고 하기도 하며 또는 기도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도 한다. 마음 눈이 열릴 때 에 세가지가 보였다.'나를 왜 부르셨는가,그리고 성도의 기업의 영광의 중요 함, 또한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힘의 근본을 알게 된다(18,19).

 <결론>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의 힘으로 지배되어야 하는 집단이다.

왜냐하면 모든 권세와 능력과,그리고 현재와 미래에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가 계 시는 곳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이 교회가 교회로서의 구실을 못하기 때문에 이 사회 에 병리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그러면 그것이 반드시 교회에게만 문제가 있는가 아니다. 사회와 교회와 나 자신 속에 숨어있는 인간의 사악한 죄된 속성이 주님의 몸으로의 교회가 되지 못하도록 하고 있으며 충만하여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 고 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그러므로 이제 우리 교회는 교회의 구성원되는 나 하나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재 거듭나서 하나님의 힘의 역사하심을 따라 성 숙해 가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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