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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의 표준 (막 12: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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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떠한 표준을 정할 때 객관성 있는 올바른 표준을 세운다는 것 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이가 공통적으로 유익을 누 릴 수 있는 표준을 세운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표준중에는 여러가지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도 각 나라가 공통으로 사용하기로 한 표준중에 미터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길이를 잴 때는 Km, m, cm 등으로 표시를 하는 일이나, 무게를 잴 때는 t, Kg, g 등으로 표시를 합니다. 표준시계라는 것도 있습니다. 영 국 그리니치 천문대의 시계에 맞추어서 세계 모든 나라들이 공통으로 사용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달력도 년, 월, 일을 표시 하여 모든 나라가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이와같이 누구나가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하여 공통으로 만들어 놓은 표준들이 우리의 주변에 는 상당히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어느 누구도 공통으로 표준을 세울 수 없어 서로 이해가 얽히고, 패권 다툼을 할 수 밖에 없는 것들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고 적음, 크고 작 음, 부자와 가난한 자, 지식인과 무식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과 미련한 사 람 등등. 이와같은 표준은 실제로 정확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우리가 믿 음을 가지고 사는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누구의 믿음이 크냐 작으냐, 누가 더 봉사를 잘하느냐 아니냐 하는 경우들은 우리의 생각만으로는 도저 히 판단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주님께서 말씀하신 헌금의 액수에 대한 표준은 우리의 생각만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판단 기준이요,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표준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표준은 우 리의 기준에 맞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시는 하나님의 표준 에 우리가 맞추어야지, 우리가 정해놓은 표준에 하나님께 맞추어 달라고 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교회들은 하나님의 표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표준에 하나님이 맞추어야 한다고 떼를 쓰는 많은 교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일년을 살아오면서 하나님께 서 지켜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오늘의 감사도 우리가 생각할 때 우리의 표준에다 맞추어 넘치게 감사하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하 나님이 보실 때 하나님의 표준에다 맞추어 넘치게 감사하고 있다는 칭찬을 들으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 오늘 우리들의 많고 적음에 대한 표준을 어디에다 두고 있을까요 (1) 오늘의 본문 말씀에는 부자들이 많은 헌금을 드리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깨를 쫙 펴고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있게 기분 이 좋아서 크고 무거운 돈 뭉치를 털썩 연보궤에 넣었습니다. 그들이 낸 헌금은 금방 표가 나게 마련입니다. 누가 얼마를 했는가도 대개는 밝혀집 니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상을 받습니다. 다 그렇다는 것 은 아니나 많은 교회들은 주보 한 면에다가 `헌금 잘 받았음.'이라고 하는 "헌금 영수기"를 발행합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누구가 더 많은 헌금 을 냈는가를 은근히 표시를 하기 위하여 액수를 발표하는 경우도 있고 헌 금 많이 낸 순서대로 주보에 그 이름을 기록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마태복음 6장 1절에서 2절 사이에 말씀한대로 하나님 앞에 가서 받을 칭찬과 상급이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2) 가난한 과부는 미안한 마음으로 감히 앞서지도 못하고 맨 뒤에서 기도 펴지 못한 채 살며시 소리나지 않게 동전 두 개를 연보궤에 넣었습니 다. `두 렙돈'의 봉헌은 이스라엘의 동전 중 가장 작은 액면이며, 최소액 으로 드린 극히 적은 헌금이었습니다. 작은 헌금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누 가 얼마를 했는지도 잘 밝혀지지 않고 또 밝히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사 람들에게 숨겨진 헌금은 은밀한 중에 보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칭찬하시고 갚아주실 봉헌된 예물입니다. 우리의 판단 기준에 맞춘다면 이 가난한 과 부의 한 일은 작고 무가치하나 위선자들의 바친 것은 크고 값이 많아 보일 것입니다.

 2. 이제 우리의 판단 기준이 아닌 주님의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성경말씀 속에서 알아 보겠습니다.

(1)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 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주 님은 결코 다량의 헌금이 하나님 앞에 많은 것이 되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신의 넉넉한 가운데 바친 일부분과 부족한 재산의 전부를 드린 것과는 사랑의 정도가 다르며 희생제물로서의 의미가 판이하다는 것 을 깨닫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렇다고해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헌금의 액수 가 그만큼 적어져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2) 하나님의 판단 기준은 얼마의 헌금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떠 한 마음의 자세로 드리느냐를 보신다는 말입니다. 십일조의 예를 들어도 우리는 이 말씀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100원에서 십일조는 10원입니 다. 10원이라는 적은 돈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100만원에서 십일조는 10만원입니다. 10만원이라는 돈은 그 액수 가 커서 선뜻 하나님께 드려지겠느냐고 생각할 때 생각해 봐야하고 내게 닥쳐봐야 알겠다고 대답을 하는게 편할 것입니다. 1000만원에 100만원의 십일조는 어떻겠읍니까 1억짜리 복권이 당첨이 되었다고해서 선뜻 하나님 께 1000만원의 십일조를 드릴 수 있겠읍니까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분 이 몇분이나 되겠읍니까 마찬가지로 생각할 때 감사헌금은 더욱 어려울 것 입니다. 십일조 헌금은 정확하게 십분의 일을 떼어서 드리면 하겠지만 감 사헌금은 드리는 이의 마음속에서 감동이 되어 하나님께 바쳐져야 할 것인 데 어느 정도가 기준이 되겠다고 말씀하실 수 있겠읍니까 여기에는 기준 이 따로 없습니다. 내가, 또는 내 가정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많다고 깨 닫는 사람은 많이 하게 될 것이요,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연히 적게 헌금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차이입니다. 자신의 믿음 이 부족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서 불평과 원망과 시비를 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깨달으시는만큼 감사 의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 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곧 오늘 우리들의 처지일 수도 있습니다.

(1) 이름 모르는 한 과부, 그 여인은 성전이나 제사장들이 필요로하는 것 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 여인을 돌보아 주는 사람이 있었는지 나이는 몇살쯤 되는지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과부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한 여인이 살기에는 무척이나 어려운 세상이라고 볼 때, 또 주님께서 아시는대로 구차한 중에 살던 여인이라고 표현하신 것만 보아 도 이러한 사람에게는 약간의 여유가 있는 생활을 하는 사람과도 남에게 꾸지않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과도 큰 차이가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그 여인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보잘것 없는 "두 렙돈"의 돈이 생활 비 전부인 돈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이제 아무것도 없는 여인이 되고 말 았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에게는 앞으로 생활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할 것 인가를 염려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을 드려 감사했다는 은혜가 물결처럼 그녀의 가슴에 넘쳐났을 것입니 다. 이 여인의 헌신이야말로 기독교인의 봉헌의 모형이며, 목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의 드린 헌금은 자신의 생명과 피를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믿음의 결실이었습니다.

 4. 가장 큰 봉헌, 그것은 부유한 중에서 마땅한 소득을 드리는 것 보다, 삶 전체를 드린 봉헌이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봉헌 자세는 어떠해야 하겠 읍니까 (1) 자발적으로 봉헌해야 합니다. 작정헌금도 아니요, 심방헌금도 아닙니 다. 적어 이만큼씩은 드리겠습니다고 하나님과 약속하고서도 드리지 못하는 것도 문제요 심방을 통해서 내 가정에 필요한 하나님의 양식이 풍성한 가운 데서 내리는데도 감사한 마음을 나타내지 않는것도 문제이지만 하나님 께서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은 작정한 예물보다도, 심방했다고 드리는 예 물보다도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봉헌하는 예물이 더욱 귀 한 것입니다.

(2) 기쁨으로 드리는 봉헌이어야 합니다. 과부는 아무런 불평이 없었습니 다. 억지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일일을 염려하지 않는 그래서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실 하나님께 기쁜 마음을 다해 드리는 예물이 되어 야 합니다.

(3) 믿음의 표현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희생으로서의 봉헌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마음을 보시고 그 동기와 사랑과 거기 포함된 희생으 로 바치는 물질을 평가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것입니다. 예수님은 물 질보다 정신을, 양보다 질을, 그 액수보다는 비율을 보십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은 바로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감사함으로 바쳐 지므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예물,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로 드 려지는 예물이 되어 하나님의 놀라웁고 풍성한 귀한 은혜가 여러분의 심 령과 가정위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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