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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마틴 루터 킹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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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5일은 말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제창하고 의회가 승인하여 이 날을 국가 공휴일로 제정한 것은 (86년부터 시행) 킹의 위치를 높이 평가한 결과이다. 개인의 생일이 국가 공휴일로 제정된 것은 워싱톤과 링컨 다음가는 일이다.
킹이 암살되던 1968년 4월 4일은 미국이 떠들썩 했었다. 이날 125개 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났고 46명이 죽었으며 21, 270명이 체포되고 폭동 진압을 위하여 연방군과 방위대 5만5천명이 출동했었다.
39세에 암살될 때까지 15회 감옥에 갇혔다. 흑인을 위한 민권운동과 가난과 평화를 위한 그의 투쟁이 인정되어 6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는데 최연소 평화상 수상의 기록을 깼다 (35세). 63년에는 타임즈지가 이 해의 인물로 선정했었다. 킹을 혹평한 것은 FBI 후버 국장 정도일 것이다. 후버는 킹을 나라에 으뜸가는 거짓말장이라고 공격했었다.
킹은 데모에 나갈 때 즐겨 복음성가인 우리는 극복하리라를 노래했다. 확실한 기약은 없어도 언젠가는 인종차별과 굶주림과 전쟁이 없어질 것을 그는 믿었으며 현재의 고통과 부조리를 극복할 것을 호소했다. 그의 집에서 폭탄이 터져 대 파괴었을 대 이웃과 동지들을 무장하고 복수에 나서려 했다. 킹은 그들에게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용서해야 한다고 역설했던 것이다.
킹의 모든 사상은 예수의 박애사상에 의한 비폭력 무저항의 방법이었다. 그의 신조는 이러했다. '모든 인간은 형제요 자매이다. 내가 내 형제를 해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을 해하는 것이다.'
63년 워싱톤 대행진 때 '나는 꿈을 갖는다'는 유명한 연설을 남겼다. 킹은 꿈의 인물이었다. 아무리 뿌리 깊은 미국의 인종차별주의도 킹의 꿈을 막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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