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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황금 우상 시대 (출 32: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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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이 말씀을 준비히면서 최근 시중에서 발행되고 있는 20여 종의 월간지,주간지,일간지들을 살펴보았습니다.그 이유는 언론이 보고 있는 세태의 흐름을 파악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놀란 것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소위 “과소비”라는 것이 우리 사회의 엄청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강남 어느 아파트에서는 시집간 신부가 신랑한테 두들겨 맞아 갈비뼈가 두 개나 부러졌는데,그 이유가 결혼 혼수품이 적고 지참금이 적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강남 어느 동네에서는 새댁이 목매어 자살을 했습니다.결혼 예단 때문에 신랑한테 구박받다가 견딜 수 없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1989년 9월 30일자 한국일보의 기획 기사인 “과소비……너무하다”의 난을 보면,“몇 억이 보통.호화 혼수 끝이 없다”,“돈으로 자기 과시.부동산 졸부들에게 많아”,“열쇠 3개 기본.수억 지참도”,“반지 2천만원대.시계 천만원대”,“모재벌 손녀 웨딩드레스는 천만원”이라는 큰 글자가 박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소비 기사는 각 신문 지면 마다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호화 사우나 한 해 7천 곳 늘어”,“뱀 지렁이도 수입”,“재벌이 수입 앞장”이라는 기사가 있는가 하면,“마시고 즐기는데 연 4조원”이라는 믿어지지 않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먹고 마시고 놀자 판인가”,“유흥업소 서울만 11만곳.9년 사이 2배로 껑충”,“당국 규제.단속 손길 뒷짐”이라는 비판성 기사도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 시대는 황금 우상이 판을 치는 시대입니다.세계 어느 나라를 돌아다녀 보아도 우리네처럼 향락에 들떠 있는 나라가 없습니다.

외지(外誌)에 한국은 너무 빨리 샴페인을 터트렸다는 기사가 나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만,정말 이럴 때가 아닙니다.

솔직하게 말하면,이것은 허리띠를 졸라 매고 구공탄을 낱개로 사다가 불을 피는 어렵게 사는 사람들과는 상관이 없는 문제입니다.

문제는 소위 가졌다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내 돈 가지고 내 멋대로 쓰는데 무슨 시비냐라는 썩은 가치관을 가지고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기독교인의 삶은 단독적인 삶이 아닙니다.이웃과 함께하는 삶입니다.고통을 함께 나누고 기쁨도 함께하는 것이 삶의 윤리의 기본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인이라면,속물이라고 지탄받는 그런 부류의 사람의 삶을 따르거나 부러워해서는 안됩니다.

기독교인의 가치 있는 삶은 나를 위해서는 구두쇠가 되고 남을 위해서는 손 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근검 절약하고 남을 위해서는 풍성한 사람이 되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의 자세입니다.

황금 우상이 판을 치는 때일수록 교회의 책임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지난 주간 짧은 기간이긴 합니다만 구라파에 있는 스웨덴,스위스,영국을 다녀왔습니다.특히,스웨덴에 있는 임마누엘 교회의 담임 목사인 오께 목사님과 만나 선교에 관한 제반 문제를 함께 협의하고 양국 교회의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했습니다.

그 분은 저에게 구라파의 교회를 어떻게 보는가라는 어려운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구라파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그러나 물질 문명 앞에 정신 문명이 무릎을 꿇어 버렸기 때문에 구라파의 교회는 힘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오께 목사님 역시 바로 그 점이 구라파 교회의 쇠퇴 원인이며 문제점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황금 우상의 세력을 막아 낼 마지막 댐은 교회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잘먹고 잘쓰고 떵떵거리며 살고 싶은 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갖는 마음입니다.그러나 그 마음을 통제하고 절제하는 힘으로는 기독교 정신보다 더 강한 것이 없기 때문에 교회가 무너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출애굽기 32장에서 황금 우상을 섬기다가 하나님의 호된 징계를 받았던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때는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이 시내 산 지경에 이르렀고 모세가 율법을 받기 위해 시내 산에 올라갔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산에서 더디 내려온다는 이유 때문에 모세의 형 아론이 중심이 되어 황금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숭배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1.그들은 금으로 황금 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32:2-4을 보면 부녀자들이 귀고리를 빼어 아론에게 갖다 주자 아론은 그것을 부어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본래 이스라엘에는 귀고리를 하는 풍습이 없었습니다.이는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배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할 때 그것들을 그냥 달고 나왔으며,이제 그 귀고리들을 빼어 황금 송아지를 만든 것입니다.

송아지는 애굽의 신입니다.그러니까 그들은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송아지보다 더 귀한 신을 만들기 위해 금으로 송아지를 만든 것입니다.

돈이나 금은 필요합니다.그러나 그것이 숭배의 대상이나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돈은 때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도 하고 편안함과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만,그러나 돈을 위해 살아서는 안됩니다.

 2.금송아지를 신이라고 했습니다.

32:4을 보면 이스라엘은 송아지를 가리켜 이것은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낸 신이라고 했고,32:5-6을 보면 아론도 뒤질세라 단을 쌓고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라고 공포했습니다.그리하여 다음날 축제가 벌어졌고,먹고 마시고 춤추었습니다.

순식간에 금송아지가 하나님으로 둔갑하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구주가 되었는가 하면 송아지 앞에 쌓은 단 주변은 축제의 마당이 되고 말았습니다.

애굽의 신 가운데는 오리시스(Orisis)라는 신이 있는데,그 신은 사람의 몸에 송아지 머리를 가진 형상을 하고 있었습니다.그러니까 그 신은 잡탕 신인 셈입니다.

이스라엘은 유일 신을 섬기는 백성입니다.그리고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자존 선언이며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것이 하나님의 존재 증명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그것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애굽을 탈출해 가나안 땅으로 가고 있던 광야 노정에서 애굽의 우상을 만들어 놓고 이것이 우리의 신이라면서 그 앞에 절하고 먹고 마시고 춤을 추었으니 반역도 이만저만한 반역이 아닙니다.

우상을 섬기면 우상과 함께 망합니다.이 세상을 사랑하면 이 세상이 불탈 때 함께 타 버립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을 섬기면 영원히 살게 됩니다.

황금에 눈이 어두웠던 어느 나라 임금 이야기가 생각납니다.그의 평생 소원은 무엇이든지 손으로 만지는 것은 다 황금이 됐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자나 깨나 그는 그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어느 날 그 소원이 성취되었습니다.그의 손이 닿는 것은 모조리 황금으로 변했습니다.숟가락,젓가락,지팡이,밥그릇,빵,의자,책상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황금이 됐습니다.그리고 심지어 딸과 부인까지도 황금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황금을 제일 많이 가진 임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잘 먹고 잘 살았겠습니까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는 법입니다.그래서 적당한 선에서 절제하고 통제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돈이나 권력은 신이 아닙니다.

물질 문명은 무너져도 다시 재건하기가 쉽습니다.그러나 정신 문명은 한 번 무너지면 재건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린 하루 빨리 우리의 정신과 삶 속에서 황금 우상 숭배의 죄악을 추방해야 합니다.특히 지도 계층과 가진 사람들은 깊이 반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여보시오 내 동포여 재물만 취하다 이 세상 물질 불탈 때 너도 타겠구나”라는 찬송가 가사를 음미해야 합니다.

 3.책임 부재가 있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모세가 아론에게 물었습니다.

“왜 이런 죄를 범했습니까” 그러자 아론은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어 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 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라고 32:22-24에서 대답했습니다.

이 대답에 대해 주경가 베이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이 얼마나 유치한 책임 전가인가! 얼마나 지리 멸렬하고 어리석은 변명인가! 우리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자연이나 사회 탓으로 돌리려고 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우리들 역시 어떤 문제가 터지면 남의 탓으로 돌리기에 급급합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된 것은 어떤 누구의 탓이기 전에 내 탓이고 우리 탓입니다.내가 아론이고 내가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4.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27-29절을 보면,그날 그 죄에 가담했던 사람들 가운데 3천여명이 처형되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결과가 33:3에 나타납니다.“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중로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우린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극대했던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뿐입니까 모세는 십계명 돌판을 던져서 깨트려 버렸고,금송아지는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든 다음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했습니다.

처참한 징계와 비극의 현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도 예외가 아닙니다.황금 우상을 섬기는 역사와 문화는 몰락합니다.

우상을 신이라고 가르치고 숭배하는 교육은 무너집니다.

사람을 신으로 섬기고,깎아 만들고 부어 만든 것을 신으로 섬기는 종교는 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을 섬기는 종교는 영원합니다.

 5.모세의 기도를 생각합시다.

31-32절을 보면 “슬프도소이다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아론이 회피하고 백성이 내팽개쳐 버린 죄의 책임을 모세가 걸머멘 채 땅바닥에 엎드려 “죄을 사해 주십시오.아니면 제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내가 가야 할 길이 있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무엇입니까 비기독교인보다 나은 게 있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과 하는 일이 달라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뿐입니까 황금 우상을 섬기다가 죽어 가는 이 백성을 위해 모세처럼 땅바닥에 엎드려야 합니다.

누가 진정한 애국자입니까 누가 진정한 의의 사도입니까 죄 지은 이스라엘의 잘못을 대신 뒤집어 쓰고 땅바닥에 엎드려 “용서해 주십시오.제 이름을 지워 버리십시오”라고 기도했던 모세가 진정한 애국자입니다.

모세 같은 대통령이 요청됩니다.모세 같은 국무총리,장관,국회의원,공무원,법관,군인,경찰,교수,학생이 필요합니다.

모세 같은 목사,장로,신자 그리고 교회가 필요합니다.

누가 오늘의 모세가 되어야 합니까 내가 되고 우리가 됩시다.

주여,우리가 모두 모세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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