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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의 함성 (겔 3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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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역전승의 상징이다.부활은 죽음에 대한 승리이다. 죽음의 공포로부터 의 해방이다. 부활은 인류최대의 희소식이다. 이 보다 더 큰 빅뉴스가 있을 수 없다. 왜 그런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예수의 부활에 대해 관심이 없다. 믿는 사람들 조차도 부활의 승리를 감격해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이 부활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부활을 감격으로 받을 줄 모르면 그런 신앙의 감격을 모르는 사람이 다. 우리는 부활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알려고 해야 한다. 부활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죽음의 의미와 죽음이 우리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아야 한다.

죽음은 인간 세상을 전반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세력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죽음 이 후의 세계에 대한 불안이 현실에 대한 집착과 아귀다툼을 만들어 낸다.

죽고 나면 모든 것이 다 소용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제목의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젊은이들은 단말마적인 발악처럼 현실에서의 쾌락을 만끽하고자 무법한 삶을 살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죽은 사자보다 산개 가 낫다는 사고방식이 인간세상에 팽배해있다. 이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발악하는 것처럼 현실에 악착스럽게 만든다. 인간의 죄로 인하여 죽음은 불가피한 것이 되 었다고 하지만 또한 죽음과 그에 대한 공포 때문에 인간세상에서 죄는 더욱 기 승을 부리고 있다. 삶에 대한 끊임없는 염려와 걱정 역시 죽음에 대한 불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경쟁사회 속에서 인간들이 끊임없이 느끼는 긴장과 초조와 시기 와 미움과 질투와 살의 그리고 온갖 부정과 부패와 타락은 뿌리는 죽음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해결하지 않으면 인간은 죄악성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세상에 죽을 것을 염려하며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은 많 지 않다. 그러나 왁자지껄 떠들며 오락을 즐기는 가운데서도 인간의 마음 깊이에 는 죽음에 대한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사람의 공포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죽음에 대한 불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진정 죽을 것을 각오하고 죽음을 긍정적인 자세로 맞을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이 있다면 그 마음에는 정말 불안과 공포가 없고 평 안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많지 않다. 동서고금을 무론하고 죽음 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없다.

행복하게 살고 있고 자기의 원대로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진시황과 같은 사람 도, 제3자가 보기에는 삶에 아무 문제도 없고 아쉬울 것없는 상태에서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지 않을려고 삼천동자를 세상방방곡곡에 보내어 불노초를 구하려고 했다. 그와같이 지금 행복한 부부들도 가끔서로를 바라보며 '저 사람이 죽으면 나는 어떻게 살지'하는 죽음에 대한 염려를 하고 있다. 또한 귀여운 자녀들의 재 롱을 보면서도 '만일 저 아이가 일찍 죽으면 나는 어떻게 살까'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행복을 느끼는 순간에 조차 죽음에 대한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삶의 모든 순간에 죽음을 느끼고 있고 죽음은 도처에서 인간과 만나고 있고 끊임없이 인간에게 '너도 죽는 다'라는 멧세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죽음은 내 것 이 아니야' '죽음으로 인한 불행은 내 것이 될 수가 없어'라고 마음으로 끊임없 이 도리질하며 죽음을 거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예고없이 불청 객으로 사람들에게 찾아와서 사람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죽음의 이별과 고통을 가져다 준다.

동작동 국립묘지에 가면 말로 다할 수 없는 사연들이 비석에 새겨져 있다. 육 군 소령 최모씨의 묘비 뒤엔 "보고 싶어요. 당신 모습이 , 듣고 싶어요, 당신 그 목소리, 영원한 평화 속에 고이 잠드소서."라는 그 아내의 절절히 사모친 눈 물이 비문으로 묻어 있고, 김소령의 묘비엔 "여보, 아빠, 뜻하지 않은 당신 고혼 앞에 우리 모녀는 기도드립니다. 오늘도 처와 딸은 당신 앞에 왔습니다."란 슬픈 목소리가 담겨 있는가 하면 육군대위 김모씨의 묘비엔 "여보! 천지가 변하여도 살아오마던 당신, 어쩌다 한줌의 재가 되어 돌아오셨오, 여보, 우리 서로 주님 앞에서 만날 때 그 때는 영원토록 이별맙시다."라는 이런 사별의 슬픔은 정녕 그 들 만의 것이 아니고 우리 모든 인간들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가정들의 장례식전에 문상을 가서도 '이 집의 불행은 내 것이 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모두 죽음의 방문을 싫어한다. 인간은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에 대한 시간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자기들 마음대로 생명 시간표를 작성해두고 이 시간표에 예외는 없다고 거부하고 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같은 생각입니다. 진정으로 나와 여러분에게는 이런 일이 없기를 간절한 기도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이런 우 리들을 비웃으며 갑작스러운 죽음의 방문으로 당황해하며 충격을 받을 미련하고 나약한 인간들의 비참한 모습을 내다보며 즐거워 하고 있다. 끊임없이 죽음의 세 력으로 우리를 위협하며 인생의 길에 죽음의 올무를 펼쳐놓고 우리를 노리고 있 습니다.

죽음은 사탄의 쏘는 살이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 안은 사탄의 올무요, 죄악의 사슬입니다. 이 죽음을 이기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 은 불가능합니다. 이 죽음의 불안을 극복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 안 에서 믿음으로 자랄 수가 없습니다. 이 죽음의 세력을 이길 힘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죽음은 지진처럼 해일처럼 우리의 인생을 갈라놓고 파괴할 수도 있습니 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은 아십니다. 예수께서 오신 것은 죽음의 사슬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죽음의 공포로부터 우리를 자유하게 하려고 오셨습니 다.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새 삶의 길을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진정 여러분 이 참 자유하게 살려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죄악과 죽음의 사슬에게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죽음의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는 믿음을 받아가져야 합니다.

2천년전 오늘 천사들은 온 우주에 울려퍼지는 큰 함성과 같은 멧세지를 선포 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죽음을 애도하며 우리의 삼오제와 같은 의식을 행하 려고 온 여자들에게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 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에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 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하는 소식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힘차게) "예수, 다시 사셨다!"는 선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예수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뜨려 버렸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결박을 깨뜨리고 인간세상을 유린하고 있는 사탄의 세력을 물리치셨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계략은 죽음의 공포로 인간을 위협하고 죄의 사슬로 묶어 영원한 파멸의 감옥에 쳐넣는 것인데 그의 무기인 죽음을 무력화시켰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죽여도 죽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그를 위협할 수도 없고 공포의 사슬과 죽음의 감옥으로 도 그를 사로 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전 어떤 영화에서 보여준 이야기입니다. 주인공들이 멕시코와 미국 접경 의 어떤 마을을 여행하는데 범죄자 몇사람이 그 온마을을 자기들 마음대로 유린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주인공들은 동네 사람들에게 힘을 합하여 범죄 자들을 물리치고 자유롭게 살라고 말하면서 여러분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설 득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괜한 짓하다가 사람 다치고 도리어 화를 입을 뿐이라고 거절했습니다. 할 수 없이 주인공 3사람이 그 범죄자들을 물리치려고 시도합니 다. 번번히 실패하자 동네사람들은 코웃음을 치며 오히려 주인공들을 외면합니 다. 그러나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한 여자가 주인공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동참하 여 기지로써 범죄자 중의 두 사람을 따끔하게 혼내주고 물리치게 됩니다. 그러자 범죄자들은 그들의 패거리를 총동원하여 주인공들에게 보복할 뿐아니라 주인공을 도와준 한 여성 때문에 그들에게 대항하지 않은 동네 전체를 초토화시키겠다고 몰려오게 됩니다. 그 때까지 여전히 냉담하게 외면하던 동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막대기와 감추어둔 무기를 들고 주인공들과 합세함으로 마침내 범죄자들을 물리치고 그들의 손아귀로 부터 벗어난다는 이야기입니다.

2천년전 오늘, 예수께서는 인류에게 죽음의 위협을 물리치고 죄악의 사슬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7:33),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 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25,26)고 하셨습니다.

나뭇가지를 전지하는 것처럼 잘라도 잘라도 끊임없이 솟아나오는 죄악의 뿌리 인 죽음과 그것이 주는 공포와 공격으로 말미암는 온갖 고통으로 부터 우리가 해방되는 길은 죽음의 두려움을 망각하고 사는 것이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 십니다. 오히려 죽음을 향하여 담대하게 맞부딪혀 나가는 것이라고 가르치십니 다. 예수께서는 어떤 용감한 군인들처럼 생명을 초개같이 여기시는 분이 아니십 니다. 예수께서는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중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만 일 온천하를 얻고도 제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그러나 "누구든지 제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 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6,25,24)고 하 셨습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죽음을 피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죽음으로써 진정 사 는 것처럼 사는 역설적인 삶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승리를 오늘 온 세상에 보여주신 것입니다. 2천년전 오늘 새벽에 동굴 무덤 속에서 예수 의 시신을 보러 온 여자들에게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 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라고 말한 천사의 멧세지는 세상 사람들이 들을 수 없는 조용한 목소리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고 들리 지 않는 영혼의 세계에서 이 멧세지는 온우주가 무너져 내릴 듯한 함성, 함성, 거대한 함성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공중권세 잡은 어두움의 영들에게 대해 원자탄의 폭발과 같은 폭발이었습니다. 죽음이라는 사탄의 사슬 에 매인 인류의 영혼들이 해방의 소식을 듣고 함께 목청껏 기쁨의 환호를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힘찬 목소리로 선언합니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죽음 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너의 쏘 는 것은 죄였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가 너의 쏘는 그것, 죄를 삼켜 버리지 않았느냐 죽음아 너는 이제 우리를 죽일 수 없다.)" 부활은 신앙의 힘입니다. 개인과 한민족의 역사에서 죽음과 죄악의 사슬을 끌 러버리는 생명의 힘입니다. 죽음의 세력을 무시하는 부활의 사람들을 막을 수 있 는 세력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인생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민족의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활을 믿을 때 타락한 인생이 거룩한 인생으로 소생하고 절망과 좌절에 매인 인생이 희망의 인생으로 소생하고 죄에 매인 인생이 하나님의 의를 선포하는 의의 일군이 됩니 다. 부활의 사람들이 가는 곳에는 결혼의 신성함, 남녀평등, 선거권, 노동법,아 동복리법, 노예해방등이 이루어졌고 자유와 사랑과 평화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부활은 인간의 죄에 대한 승리입니다. 불의에 대한 승리입니다. 죽음에 대한 승리요, 절망을 깨뜨리고 생명과 희망의 선언입니다. 금려과 권력이 이길 수 없 습니다. 오늘 우리의 양심에 부활 신앙이 필요합니다. 죄와 어쩔 수 없다는 상식 적인 삶의 사슬을 벗어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부활을 힘있게 믿어야 합니다. 예수와 복음으로 인하여 손해보고 어려움을 겪어도 실패 하지 않고 주님의 부활로 승리할 것을 믿는 믿음이 절실합니다. 잠시 억울함과 고통을 당해도 죽지 않는다는 믿음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사회와 민족과 인 류의 미래를 위해서는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불사하는 부활신앙의 사람들이 필요 합니다. 누가 이 대열에 나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부르십니다. "우리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서 갈꼬" '오늘 너희들에게 떨어지는 불명예스러운 은 30보다는 삼일 후에 받을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나의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고 찾으십니다. 여러분이 대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 는 하나님을 믿읍시다. 죽음의 위협, 죄의 협박을 두려워 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신데 누가 감히 우리를 대항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 을 누가 감히 고발하겠습니까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누 가 우리를 죄인으로 단정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 의 오른편에서 항상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죄와 타협하지 맙시다. 불의 와 타협하지 맙시다. 적은 이익에 현혹되지 맙시다.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 해서 오늘 손해보는 십자가를 집시다. 억울함과 조롱받는 십자가를 집시다. 잠시 고통을 견디는 십자가를 집시다.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승리는 우리의 것있니 다. 주님을 위한 여러분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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