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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때가 되면 (창 16:1-16, 갈 06: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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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브라함을 완전한 신앙의 표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사 실 그에게도 불완전한 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가 처음에 하나님의 부 르심을 받고 기업으로 물려받을 땅과 한 민족의 형성을 약속 받았을 때 그 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따라 하란을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서 나그네로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기를 꾸준히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10년을 기다렸으나 약속이 성취될 기미는 조금 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민족의 형성을 위해서는 아들이 태어나야 할텐 데 80세가 넘도록 아들이 태어나지 아니한 것입니다.

이제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도저히 인간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지경 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다급해진 것은 부인 사라쪽이었습니다. 자기가 생산 못하므로 아브라함과 하나님께 큰 죄를 짓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10년 동안 행여나 하고 눈이 빠지게 기다려 보았지만 이제는 도저히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한 사라는 자기의 몸종인 하갈을 아브람의 첩으로 주어서 아들을 낳아 자기의 책임을 면하고 그 아들로 아 브람을 승계시키려고 생각했다.

사라가 아브람에게 이 제의를 하자 아브람도 두말 않고 순순히 받아 들였습니다. 사실 그가 생각해도 별다른 길이 없었고 사라의 제안이 가장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되어서 사라의 말을 따라 여종 하갈을 첩으로 맞아 동침하여 잉태케하였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아브람이 끝까지 약속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초조한 나머지 인간적인 수단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키려고 한 것입니 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런 방법은 그에게 아무 도움이 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많은 문제를 야기시키고 말았습니다.

아브람이 여종 하갈을 첩으로 취한 일은 당시 사회 풍습으로는 하등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약속을 좀더 끈기있게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썼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신앙의 길을 버리고 인 간적인 수단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는 어둠의 쇠사슬에 얽매 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이야기에서 배우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 이루어질지 라도 꾸준한 인내로써 기다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사건 이 후 14년이나 더 기다려서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절망적인 때에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약속의 때가 이와 같이 멀리 느껴지는 까닭은 결국의 우리의 신앙이 굳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불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을 불러들이고, 그러므로 하나 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거슬러 인간의 불신앙의 역사를 이룩 해 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불신앙의 역사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흐름 을 거스르기 때문에 거기에서 소용돌이와 거센 파도를 만나게 되고, 방향 을 모른채 나가기 때문에 언제나 제자리에서 맴돌다 파선되기 일쑤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흐름 으로 돌아올 때만 그들은 방향을 찾게 되고 순풍에 돛단배처럼 순탄한 길 을 따라 목표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 구원의 역사의 흐름을 파악할 때 약속의 때를 기다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도착하여 모세가 율법을 받으려고 시내 산에 올라갔을 때 그들은 40일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 어 놓고 그 앞에서 춤추며 그것을 하나님으로 섬기려고 하였습니다. 여기 서도 하나님의 지시와 그 뜻을 알기에 앞서 인간편에서 문제 해결을 시도 하고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우매하고 어리석은 짓이었습니 다.

이스라엘 백성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기다려야 했는데 어리석게도 인 간의 지혜와 금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 로 그들은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향해 나갈 때 그들은 광야에서 40년동안 그 때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 때를 기다리다 못한 고라의 무리들이 반역 을 시도했습니다. 그들이 모세를 향하여 말하였습니다.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 지 아니하겠노라"(민 16:14).

이들은 하나님이 주시기로 약속한 땅 가나안을 믿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멋대로 바꾸려 했던 것입니다. 그 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용서하시지 않았습니다. 특히 구원의 계획을 좌절시 키려는 무리들을 가만히 두실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땅이 갈라지 면서 그 가운데로 빠져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구약성서를 통하여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이룩하시는 역사에 대한 이해입니다. 특히 출애굽의 역사는 하나님이 이룩하시는 역사 의 표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애굽에서의 고난과 바로의 무서운 박해와 탄압 그리고 마침내 그곳에서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거쳐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이것은 그대로 전 세 계 역사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전 세계의 역사는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구원을 향하여 나가는 역사입니다. 약속의 때를 기다린다는 말은 바로 구원의 시간을 기 다림이요,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계가 악으로 가득 찬 것 같고, 불의가 행세하고 인권이 탄압당한다 하더라도 반 드시 이 역사의 종말에는 모든 악이 물러가고 진리와 의의 세계가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확실하게 보증되었고, 성령을 통하여 분명하게 인쳐진 사실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용기를 가지고 약속의 때를 끈질기게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6:9의 말씀은 바로 우리를 향한 권면의 말씀입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꾸준히 하노라면 거둘 때가 올 것입니 다." 여기서 선을 행한다는 것은 성령을 따라 행함을 말합니다. 즉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구원의 은총을 확신하면서 그 구원이 완성되 는 약속의 때를 향하여 전진하여 가는 것을 말합니다. 가는 길이 비록 피 곤하고 고난이 앞을 가로 막는다 하여도 쉬임없이 전진해 나가는 것, 이것 이 바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가는 길이 피곤하고 멀다하여서 고라의 무 리들처럼 반역의 길로 나가거나 타협의 길로 나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 많은 사람들이 이 역사에 대한 신념을 버리 고 현실과 타협하여 불의와 야합하고 정의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리 광야 생활이 고달파도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거나 그 광야 에 주저앉을 수 없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는 현실과 타협하여 잠시의 안일 을 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약속의 때를 향하여 나가야만 됩니다. 결코 이 길을 혼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이 구원의 역사에 동참한 사람들을 붙 들어 주시고 힘을 주시며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꾸준히 하노라면 거둘때가 올 것입니다. 거둘 때란 추수 때를 말함이요, 이 때는 심판의 때 입니다. 심판의 때란 우리에게 있어선 축복의 시간입니다. 약속이 성취되 는 시간입니다. 다만 악을 행한 자들에게는 공포의 시간이며 죽음의 시간 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비록 의를 행하여도 빛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핍박과 박 해를 받지만 그러나 낙심하여서는 안됩니다. 때가 되면 의를 위하여 심은 것들은 반드시 그 몇 십배 몇 백배로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의 역사에 동참한 자들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확실한 구원의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자유가 약속 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구원의 역사에 적극적으로 참 여하여 나가면 마침내 우리는 승리의 아침을 맞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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