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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돌이킬 수 없는 후회 (창 25:29-34, 히 12: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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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우리는 진귀한 매매현상을 보게 됩니다. 그것도 화폐로 사고 파 는 것이 아닌 물물교환과 같은 거래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거래의 주인공들은 이삭의 아들 에서와 야곱입니다. 통속적 인 사상에 의하면 에서란 이름은 살결이 붉고 온몸에 털이 많다는 것을 의 미합니다. 야곱이란 이름은 형의 발꿈치를 움켜잡고 따라 나왔다고 해서 발 굼치를 움켜잡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야곱은 내향적이고 집념이 강했으며, 주로 집에서 살게 되었고 반면에 에서는 좀 거칠고 야생적이어서 날쌘 사냥 꾼이 되었습니다.

 어느날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와보니 야곱이 붉은 죽을 끓이고 있었는데 에 서가 야곱에게 배가 고프니 죽 한그릇만 달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형의 극 단적인 어려운 상황을 유리하게 이용을 하는데 에서에게 맏아들의 권리를 자기에게 팔면 죽을 먹게 해주겠다고 말합니다. 에서의 눈에는 다른 것이 안보이고 팥죽 한그릇에 마음이 쏠려 있었던 터라 장자권이 아무런 가치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장자권을 죽 한 그릇에 팔아 버렸습니다.

 이러한 형제들간의 진기한 사건에 대해서 창세기 저자는 어떤 도덕적인 판 단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본문 마지막에 "에서는 이와같이 맏아들 의 권리를 가볍게 여겼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에서를 일시적인 즐거움을 위해서 미래에 하나님이 그에 게 약속하신 복을 멸시해 버린 감각적인 사람의 모델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에서의 경솔한 행동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에 도달하지 못하게 만든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다고 히브리서 저자는 말씀합니다.

 옛날 히브리 사람의 전통에 의하면 맏아들의 위치는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 의 약속이 담겨진 자리입니다. 그래서 맏아들의 위치는 가문에서 아주 중요 한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당시 맏아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소유물이었습니다.

 애굽의 모든 처음난 것들을 하나님이 다 치셨지만 이스라엘의 장자는 하나 님께서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에서 맏아들은 하나님의 특별 한 은총으로 살아남은 구원의 선물이였습니다. 에서는 이 귀한 은총의 선물 을 소홀히 했습니다. 에서에게 허락된 장자권을 바로 거룩한 자체인데 에서 는 거룩함을 경홀히 여겼습니다.

 인간의 삶에서 경제적 가치를 제일 순위에 올려 놓고 있는 오늘 우리의 사 회적 기준에서 볼때 에서의 행동은 별로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에서는 오히려 현명하고 현실적 감각에 뛰어난 사람이라고 예찬할 수 있는 이물입 니다. 우리 시대에 젊은이들의 모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서에서 제일 가치 있고 소중한 곳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배설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경우에 그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눈이 떠 있지 않았을 때 그 에게 소중한 것들 긍지를 갖고 있었던 것은 그가 여드레만에 할례를 받았다 는 것,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히브리 사람이라는 것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히브리 사람 가운데서도 베냐민 사람이라는 것, 학문적으로는 그 당시 최고의 학부인 가말리엘 문하생이었다는 것 등 주로 육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아에서 그의 눈이 밝아졌을 때 그러 한 것들을 오물로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에게 진정 소중한 것은 죽 한 그릇이 아닌 장자권과 같은 거룩한 것이 더 소중하게 여겨졌다는 것이 바울의 경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하나님나라 를 소유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때때로 어리석은 사람,현실적 감각에 뒤떨어 진 사람, 지능지수가 모자라는 사람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에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사십일간 금식하신 후 사탄이 제 일 먼저 그를 찾아와서 시험한 내용은 돌로 떡을 만들라는 것이었스빈다.

사십일간 아무거도 잡수지 못한 예수님에게 그 상황에서 가장 소중한 것, 절대적인 것은 오직 먹는것도 할 수 있었고,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있는 상 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예수님은 사 람이 사는 것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떡 보다 더 소중한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떡보다 더 소중한 것을 포기하기 않으셨던 것입니다. 사십일간이나 굶은 사람에게 떡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 다고 깨닫게 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이 오신 것도 떡보다 더 소중한 것 때문에 오셨습니다. 물론 먹는 것 , 입는 것을 천시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썩을 양식을 위해서 힘쓰지 말고 영생할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사망의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세속의 잠을 깊이 자고 있을 때는 먹는 것, 입는 것 감각적인 쾌락이 가장 소중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 외 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직 그러한 것만을 위해서 불철주야 생을 걸고 수고와 땀을 흘리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발견할 때에 가진 것 모두를 팔아서 죽 한 그릇을 위해서 팔아 버렸던 그 장자권을 다시 사게 됩니다. 그것이 굉장한 복음의 변화입니다. 그때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 었을 때 보다도 더 행복하고 기쁘고 자유롭게 됩니다. 그때에는 인생이 맛 이 쾌락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평강과 희락이 그의 인생의 맛이 되는 것 입니다.

 우리 인생의 평강과 희락의 맛을 주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거룩함입니 다. 거룩함이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한 사람에게 허락되는 것입니다.

 이 거룩함은 인간이 인간 되게 하는 가장 소중한 삶의 본질입니다. 이것이 있을 때에만 삶이 확고해지고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삶의 의미와 기쁨 이 이 거룩함에서부터 나옵니다.

 거룩함을 상실할 때는 삶이 흔들리고 무의미 속에 빠지고 분열이 됩니다.

거룩함을 다 포기해 버렸을 때 허무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감각적인 쾌락에 의존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거룩함을 상실한 가운데 거의 파멸에 가 까운 삶을 살다가 예수님을 통해서 그 거룩함을 다시 회복한 한 여인이 있 습니다. 그 여인은 막달라 지방 출신인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이 여인은 그 당시 팔레스탄인 지방에 주둔하고 있던 외인부대를 상대로 자신의 몸을 팔 고 있던 이 미모의 여인의 인격은 양심의 가책과 고통에 의해서 여러 조각 으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복음서 기자는 그러한 막달라 마리아의 상태를 일곱귀신이 들렸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삶을 지탱해 주는 유일한 힘은 몸을 팔아서 얻은 식물로 끼니를 거르 지 않고 먹는 음식물, 그리고 인위적으로 꾸민 외며, 감각적인 쾌락이 그의 삶의 내용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에수님을 만난 후에 그 여인은 가장 거룩 한 삶을 살아가는 성 막달라 마리아가 되었습니다. 이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스빈다. 사람이 사는 것은 거룩함 때문에 산다고 애기할 수 있었습니다.

 거룩함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의 선 물입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외식으로 얻어지는 거룩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 입니다. 신자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바로 성 도라고 하는 신분입니다. 성도라고 하는 신분은 돈으로 산 것이 이나라 하 나님의 은총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의 대가로 내놓으시고 성도의 반 열에 있게 해주셔서 신분이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성도란 헬라 어로 '거룩함'이란 뜻입니다. 다른 것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을 천대하고 외 면하고 은둔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적극적인 관계를 맺고 살면서 도 하늘나라의 것을 팔아서 세상의 것들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데서 다르다 는 것입니다. 분열을 평화로 바꾸고 미움과 시기를 사랑으로 바꾸고 불의를 공의로 바꾸고 거짓을 진실로 바꾸어 놓는다 데서 성도의 다른 점이 있습니 다.

 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버린 에서의 행동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상징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거룩함을 포기해 갈수록 가장 동물적이 됩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보 지 못할 때 무가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리에게 향한 계획은 심판과 저주가 아닙니다. 평강과 희망입니 다. 우리는 이 희망의 약속 가운데서 성도의 거룩성을 지켜가야 합니다. 이 거룩성 속에 능력이 있고, 하나님의 현존이 있고 이 거룩성 속에 빛이 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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