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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3일에 일어나라 (호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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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조리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 에 못박히시고, 무덤에 묻히신지 사흘만에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 다. 그리하여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가리켜서 `부 활의 종료'라고 말합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기독교도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자연종교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생명의 종교가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7절이하에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가 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금생뿐이면 모든 사람가운데 우리가 어더욱 불쌍 한 자리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못했다면, 기독교 신 앙도 헛것이고, 우리가 죄의 사함을 받을 수도 없고 구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예 수믿고 죽은 사람들도 죽는 것으로 끝나버리고 말 것입니다. 예수믿는다고 핍박을 받고 욕을 먹고, 고난을 당하는 것도 헛된 잎에 불과할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 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말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은 확실한 것이요, 우리의 소망도 분명한 것이며,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이름 을 받는 박해와 핍박은 다 상급으로 보상받기 되는 것을 믿습니다.

이제 본문 말씀을 상고 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2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르 살리시며 제3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말씀은 세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병든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의 길을 제시하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을 배반함을 찢김을 받았습니다.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께 매를 맞아 치심을 받은 것입니다.

호세아선지자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선지자로서 여호보암 2세때에 활동했떤 선지자 였는데, 그 기간은 남왕국 유다에 있어서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등 4대왕이 통치하던 기간이었습니다. 호세아서 1장 으로부터 3장을 상고해 보면 이 스라엘민족은 본남편이 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음녀, `고멜'과 같이 남자를 사 랑하게 되었습니다. 바알신을 사랑학 아세라목상을 사랑하고 다곤 신을 사랑하고, 또 몰록신니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그 음녀와 같은 이스라 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회개하고 돌앙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선지자를 통해서도 그들의 잘못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본남편이 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이라고 하는 간부(간부), 딴 남자를 찾아가서 살고 있는 고멜을은 버리지 아니하고 속전을 주어서 그 고멜을 속량했습니다. 그와같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버리고 음녀같은 우상을 섬기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값 을 지불하고 대속해 내신 것입니다.

호세아 4장 10절에 보면 "저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행음하여도 수효가 더하지 못하니 이는 여호와 좇기를 그쳤음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좇 지 아니하고, 한마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도리어 바알이라고 하는 간부를 사랑하 고 거짓 선지자를 찾아가서 예언기도나 받고, 달콤한 말로 위로 하는 삯군 목자의 위로하는 말을 들어 보고, 능력받았다는 거짓 목사의 안수기도를 받아보는 등 별 으별 영적 간음죄를 범했덤 것입니다. 그들이 그런 짓들을 다 해보았지만, 털끝 만큼도 만족이 없었습니다. 수효가 늘어갔느냐하면 오히려 수효가 줄어들 뿐이었 습니다. 영적 간음죄를 지으면 잘되기는 커녕, 오히려, 어려움만 부딪져 올 뿐입 니다. 그제사 그들은 그들의 잘못을 뉘우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본남편이신 하나님을 좇지 아니하고, 다른 남편인 이 간부간은 마귀를 좇고 , 우상을 좇고, 죄를 범하고, 괘락을 추구함으로 결국 우리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하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본남편이 되신 하나 님께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제사야 그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찢으셨지만 도로 싸매어 주시고, 치셨으나, 도로 낫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 신 것입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범 한 지를 용서해 주시고 크신 긍휼로 싸매어 주시겠다고 하는 약속이 바로 본문에 기록된 내용의 말씀인 것입니다.

 두번째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고 제3절에 우리를 일으키시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 하는 말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매를 맞은 일이요, 또 찢김을 받은 사건이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예언하면 서 '그가 찔림을 받으실 것이다', '그가 상함을 입을 것이다', '그가 징계를 받은 것이다', `그가 채찍에 맞을 것이다'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사건을 가장 잔인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라틴으로 크룩스 라고 하는데 고문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이 만든 형벌가운데 가장 잔 인하고 참혹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 형벌은 고대 여러 민족들사이에 통용된 사용 법이었습니다. 알렉산더대앙도 그가 점령한 지역에서 반기를 드는 사람들에게 십 자가형에 처했습니다. 그는 두로 사람 천명이상을 십자가에 매달어 죽인 것입니 다. 로마제국에 이르러서도 노예만을 십자가에 처형하였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로 마시민권을 가진 사람도 중죄를 범하였을 경우에는 십자가형에 처했습니다. 십자 가형은 너무도 잔인하고 참혹한 형벌이었기 때문에 로마 본토에서는 가급적 집행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콘스탄틴(Constantino)대제때에 십자가 형벌을 중지시 켰습니다. 그후 이 사형법이 자취를 감추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6시간을 매달려있는 동안에 그 찢겨진 못자국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 습니다. 한방울 남김없이 다 쏟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운명을 하시게 되 었스니다.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은 "내가 목마르다"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이 목마음은 단순 히 예수님이 당하신 육체적인 고통으로 인하여 목마름을 느끼신 것 뿐만이 아니 라, 온 인류의 목마름을 느끼시면서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엘 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다 까" 예수님은 흠도 점도 없으신 분이었지만 우리 인간이 범한 죄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는 것, 그 보다도 쓰리고 아프고 고통스러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렇게 절규하신 것입니 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려 찔림을 받으시고, 찢김을 당하시고, 상함을 입으시고, 매를 맞으시고,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운명 하신 다음에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그런데 무덤에 묻히실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 라, 묻히신지 사흘만에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선지자 호세아를 통하여 예 언된 말씀이 그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살아계십니다. 성도들 심령속에 살아계십니다. 거듭나게 해주십 니다. 기쁨과 평강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소망이 넘치게 해주십니다. 십자가지고 갈 수 있는 능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시련과 환란과 핍박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부 활하신 예수님을 모시고 사시길 바랍니다.

기독교를 박해했던 사울이라는 청년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 그 심령이 부활되어져서 부활의 복음을 부활하신 예수님을 담대하게 증나 하는 '바울'이 되어졌습니다. 수도사 마틴 루터가 형식적인 신앙을 가졌는데, 어 느날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고 변화되어져서 썩고 부패한 구교를 개혁하여 개 신교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죽은 신앙을 가졌던 요한 웨슬레가 부활하신 예수님 을 체험한 다음에 영국에 살아계신 주님을 증거함으로 영국 사회를 변화시켰습니 다. 부활의 신앙을 가졌던 아브라함 링컨이 45십만 흑인 노예를 해방시켰습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졌던 리빙스톤이 부귀영화를 초개와 같이 버리고, 아프리카 검은 당에 건너가서 노예를 해방하고 복음화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지난 2월에 제가 아프리카 말라위(Malawi)에 가니까 리빙스톤(Livingstone)을 은 인으로 생각하고 놀랍게 존경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리빙스톤이 아프리카 로 건너갈 당시, 포르투갈 사람들, 스페인 사람들, 독일 사람들이 그곳으로 건너 가서 흑인을 잡아다가 노예로 팔아 먹었습니다. 따라서 남편하고 아내가 헤어져야 만 했고, 부모하고 자식이 헤어져야만 했으니, 얼마나 끔찍한 일이요, 가슴 아팠 겠습니까 그렇게 흑인들이 고통당하고 있을 즈음에 리빙스톤이라는 목사님이 아 프리카로 건너가서 영국군대를 이끌어 이 노예상들을 모조리 다 쫓아내버리고 흑 인들을 해방시켜준 것입니다. 그러니 이 흑인들이 리빙스톤을 존경할 수 밖에 없 는 것이죠, 그래서 말라위의 옛 수도인 '불란타이어(Blantyre)라고 하는 수도 이 름까지도 리빙스톤이 태어난 고장의 이름을 따 가지고 그렇게 명명을 하게 된 것 입니다. 오늘날 여러분과 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살면 십자가지 고 갈 수 있는 능력이 공급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을 모심 으로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정욕을 이기고, 또 십자가지고 날마다 몸된 교 회를 받들어 충성하며 , 주님의 복음을 담대하게 증거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 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세번째로 이 본문 말씀은 성도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의 삶을 '사 흘길 되는 삶'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우리 인생은 사흘길쯤되는 삶을 살아가 고 있습니다. 제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려보아도 억만장자가 되어도, 영웅 열사 호 걸이 된다 할지라도 결국 조용히 눈을 감고 인생, 즉 지상 생애의 막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요새 공직자들의 재산 공개를 하는 것을 보면 수십만평 많은 땅을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만 그런 사람이라할지라도 사흘길되는 인생길을 마 감하고 그 모든 많은 땅들을 고스란히 이 세상에 놔두고 빈손들고 인생의 막을 내 리게 될 것입니다.

그 누구도 죽음을 대항하거나 물리칠 수 있는 용사는 없습니다. 중국의 진시환이 영생불사하는 '불로초'를 구하기 위하여 독남독녀 오백명씩을 동방으로 보냈습니 다마는, 불사약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중국의 한 무제는 아침마다 은쟁반에 감로 수를 받아먹고 죽음의 장벽을 뛰어 넘고자 했으나, 그도 결국 죽음을 물리치지는 못했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억조창생들이 이 죽음의 사흘길에서 방황하고 고민하 며 두려워 떨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진시황의 후예들이, 한 무제의 후예들이, 불사약을 구하려고 몸부림치고 있고 감로수를 구하려고 몸부림 을 치고 있습니다. 오래 살기 위해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지령이를 잠아먹고 뱀 을 잡아먹고 궁뱅이를 잡아 먹고 사슴의 피를 마시며 십전대보탕을 불사약인 것으 로 착각해서 마구잡이로 먹고 있습니다. 무공해 쌀, 무공해 야채, 오염되지 않은 생수등이 하늘엣 내려온 감로수인줄로 착각하고, 불로초인줄로 알고 구해다가 먹 지마는 결국 사흘길을 마감하고 인생종착역에 다다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찬송가 230장에 보면 저 뵈는 본향집 날마다 가까와 내 갈길 멀지 않으니 저보다 가깝다. 더 가깝고 더 가깝다 하룻길되는 내 본향 가까운 곳일세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삶은 하룻길입니다. 사흘길에 불과한 겁니다. 잠깐후면 인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데 '사흘'이란 '최후 승리의 날'을 의밑 랍니다. 예수님께서 이틀동안은 무덤에 머물러 계셨으나 제3일에 부활하셨습니다.

이틀동안이란 죽음의 세력'을 뜻한다면 제3일이라 '부활의 새 아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리아산에 올라가 아브라함에게서 이 사흘길의 의미를 분명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는 백세에 얻은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려고 사흘길을 걸어 서 모리아산에 이르렀습니다. 그 사흘길이 어떤 길이었습니까 인간적으로는 너무 도 쓰리고 아픈 길이었습니다. 괴롭고 답답한 길이었습니다. 이 사흘길은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죽기위해서 한걸음씩 걸어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러했기에 사흘길 동안 한마디의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침묵하며 걸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준비되었지만 왜, 제물은 준비하지 않으셨습니까 " 아브라함은 차마 "너를 제물로 바치러가는 길이다"라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답하기를 "하나님께서 예비하시리라"라고 대답을 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사흘길의 여정을 끝낸다음 아들의 죽음을 면하고 영 원한 생명과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사람의 현장에서 인생 사흘길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덤속에 있는 것과 같이 소망의 문이 보이지 아니하는 삶을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잠시후에 이틀동안의 무덤의 삶을 끝내고, 무덤문 이 열리는 날, 소망의 날에 부활의 영광이 여러분에게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 다. 그러므로 제아무리 답답하고 괴로운 일이 만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이틀에 불 과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잠까동안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반드시 소망의 새 아침, 부활의 새 아침이 다가올 것을 확신하고 우리에게 다가올 모든 고난, 환란, 역경을 믿음으로 극복하며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육체는 쇠퇴하고 낡아진다 할지라도, 이땅에는 불로초가 없고 불사약이 없 다 할지라도, 예수 그스도만이 영생불사의 불로초가 되시고 불사약이 되시는 것을 확신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불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으니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여러분과 저도 우리의 영혼이 부활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정이 부활될 것이요, 우리의 삶이 부 활될 것이요, 또 우리의 육체가 죽는다 할지라도 장차 우리 주님의 부활의 권능 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부활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이 사실을 확신하고 부 활하신 주님을 여러분 심령속에 모셔들이는 복된 이 아침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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